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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천재보다 노력하는 내가 좋다

by 서린



남편이 가끔 이런 말을 한다.



'자기는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는 게 어렵지 않아서 좋겠다.'



그럴 때마다 천만의 말씀. 그렇지 않다고. 절대 아니었다고. 내 과거를 이야기해 줘도 믿지 않는다.


요즘은 증상에 ‘장애’를 붙이는 것을 좋아하니 요즘식으로는 ‘발표불안장애’였다고나 할까. 확실히 발표 울렁증보단 심한 증상이었다. 내 영웅담을 몇 번이나 꺼내지만 남편 귀에는 잘 들리지 않나 보다. 원래 사람은 믿고 싶은 대로 믿는 만큼 들리는 법이니.



사람들 앞에 서면 머리가 하얘지는 경험을 정말 많이 했다. 말 그대로 하얀색이 보이는 듯할 정도로 내 시야가 하얘졌었다.



첫 경험은 고등학교 때였다. 교실 앞으로 나가 반 친구들 앞에서 하는 말하기 대회 예선이었다. 그 순간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처음에 몇 마디를 시작하다가 모두의 시선이 계속 집중되었을 때 갑자기 '나는 누구고 여긴 어디지?'의 생각과 함께 온 세상이 하얘졌던 그 느낌.



그렇게 시작된 트라우마와 느낌은 그대로 대학생 때 조별발표에서 이어졌다. 신입생 시절 운 좋게 발표를 자처하는 조원을 만나지 않으면 누구나 발표는 하기 싫어했다. 나도 처음엔 마찬가지였다.



오랫동안 내 단점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 다시 생각하면 내게 큰 장점이 있다. 하나는 싫다고 잘 표현하지 못하는 내 성격과 다른 하나는 모두가 싫어하는 일을 누군가 해야 한다면 내가 그것을 해야 한다는 신념.



나는 좋으면 좋다고 싫으면 싫다고 표현을 잘 못한다. 아니 정확히는 예전에 좀 더 그랬다. 그래서 그냥 자연스레 떠밀려 뭔가를 많이 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막상 하다 보면 신기하게도 싫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생각보다 싫지 않았던 경험, 급기야는 '좋다'라는 마음으로 바뀐 경험을 아주 어려서부터 많이 했다.



한 번은 초등학생 때 조별로 앉아 수업을 들었다. 선생님이 조장을 뽑아 나와서 발표하라고 했었다. 그때 다들 서로 눈치를 보며 가만히 있다가 결국 제비 뽑기를 했다. 당첨되었던 친구가 나와 친한 친구였는데 조장이 되었다고 괴로워하며 나보고 조장을 해주면 안 되겠냐고 했다. 싫지만 거절하기 미안해 바꿔줬다.



처음엔 내가 할 수 있을까 의심이 되었다. 그런데 막상 용기를 내어 발표를 하고 선생님께 칭찬과 격려를 듣고 나니 성취감이 따라왔다. 일련의 경험이 반복되었다. 하기 싫었지만 일을 떠맡다 보면 이상하게 맡은 일을 잘 해냈을 때의 쾌감이 컸다. ‘내가 못할 줄 알았는데 그래도 했네.’ 했던 경험. 어쩌면 내가 우물쭈물거리고 상대방의 제안에 갈등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던 성격 덕분에 남들보다 경험을 많이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엄마가 내게 하기 싫은 것을 뭔가 정말 많이 시켰던 것 같기도 하고… 어쨌거나 불편했던 일을 통해 성취감을 느꼈던 경험이 나의 편견을 없애고 새로운 신념을 마음 깊이 새겨주었다.



‘막상 해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



또 사람 간의 무언의 긴장감과 불편함을 잘 못 견디는 나다. 다 싫다고 할 땐 내가 나선다. 친구들이랑 놀이터에서 놀던 때부터 아무도 술래를 하기 싫어하면 ‘야 그냥 내가 할게.’라고 말했던 버릇이 커서까지 이어졌다. 모두가 다 싫어할 땐 그래도 내가 나서서 그 일을 맡아야 한다는 책임감이었을까. 아님 생각보다 술래도 몇 번 해보니 막상 재밌어서였을까.



조별 발표를 떠맡고 나면 조원들이 나에 대한 기대감을 갖는다. 조별 프로젝트는 성적에 반영되니깐. 발표자의 역량이 점수에 영향을 미치니깐. 성적은 누구에게나 중요하니깐. 부담을 안고 연습을 한다. 연습을 하고 또 하고 또 해본다. 그래도 교실 앞에 사람들 앞에 서면 어김없이 머리가 하얘지는 경험이 또 찾아온다.



잠시 동안의 적막에 나는 고도의 불안을 경험한다. 눈앞이 새하얘지고 머리카락이 쭈뼛서는 느낌. 온 얼굴이 화끈화끈하고 숨이 잘 안 쉬어지는 느낌. ‘내가 누구고 여긴 어디지’ 상황 파악이 안 되는 느낌. 머리가 지끈지끈하고 도망치고 싶은 느낌. 그 느낌이 30초 정도 이어지고 지나면 생각이 돌아온다. 이어서 남은 발표를 마무리한다. ‘블랙아웃’은 눈앞이 캄캄해지는 현상이라고 하는데 난 머릿속이 온통 새하얘지니 ‘화이트 아웃’이라고 이름까지 붙였다.



‘화이트 아웃’ 현상은 그 뒤로도 스무 번이고 서른 번이고 사라지지 않고 반복되었다. 반복될수록 나는 더 많은 연습을 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오기가 생겼다. 내가 이것을 극복해 내리. 나서서 발표자를 역할을 자처하진 않았지만 적막이 오래도록 흐를 땐 내가 입을 뗀다. ‘발표는 제가 할게요.’ 그리고 다짐해 본다. ‘그래 이번 기회를 통해 발작 증세를 없애보자.’



그렇게 대학교 4학년이 되었다. 화이트 아웃 증상은 여전했지만 난 말하기 수업을 그것도 '영어 말하기' 수업을 수강신청했다. 이 정도가 되면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싶은 정도다. 영어 말하기는 특히 더 스트레스가 심했다. 그렇지만 영문과 전공선택 중 한 과목이기도 했고 겸사겸사 학점도 채울 겸 잘됐다 싶었다.



학기말 성적 평가를 위한 최종 발표 내용은 후원하고 싶은 재단 한 곳을 선정해서 왜 그 재단을 후원해야 하는지 청자를 설득하는 것이다. 외국에서 오래 살다 온 친구들이 많았다. 나도 영어를 못하지는 않는다 생각했고 노력하면 할 수 있다 생각했다. 영어를 모국어처럼 하는 친구들에게 상당히 주눅 들었지만 그래도 난 포기하지 않았다.



이 수업 발표준비를 위해 정말 한 백번 이상 실전 연습을 한 것 같다. 처음에는 핸드폰으로 내 모습을 찍어 계속 들여다봤고 녹화에 녹화를 거듭하여 어느 정도 자신이 생겼을 때 엄마 아빠를 소파에 앉혀두고 연습했다. 중간중간 버벅대고 잊어버렸지만 익숙해질 때까지 계속 반복하는 수밖에 없었다.



엄마 아빠 앞에서 편해지자 청중을 가장 친한 동네 친구들로 바꿨다. 같은 학교 다른 과에 재학하는 친구 한 명과 다른 학교에 다니는 친구랑 셋이 종종 모여 집에서 같이 놀았었는데 놀던 중 친구들에게 침대에 잠시 앉아보라고 하고 발표연습을 했다. 쟨 뭐 하는 애야. 하며 나를 정말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잘 들어준 친구들에게 아직도 고맙다.



쓰다 보니 내가 징하기도 하고 독하기도 해라. 불쌍하기도 하고. 이 원동력은 뭐였을까. 동네친구들을 지나 학과 친구들을 대상으로 연습이 이어졌다. 공강 때 빈 강의실에 들어가 같은 과 친한 친구들을 앉혀두고 연습했다. 강의실 앞에서 발표하는 느낌은 또 집에서 하는 것과 달라 더 긴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몇 명이나 나 때문에 고생을 한 걸까.



연습의 연습을 거듭하고 발표날이 되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은 느낌,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서는 느낌, 온몸과 손이 덜덜 떨리는 느낌은 여전했다. 그래도 적어도 머리가 하얘져서 20-30초간 말을 멈추지는 않았고 백번의 연습대로 무사히 발표를 잘 마쳤다. 그리고 덤으로 내가 발표한 재단이 가장 많은 투표를 받고 선정되었다. 한 학기 동안 학생들의 지각과 결석으로 걷힌 벌금은 그 재단에 기부되었다. 얼마나 기뻤던가!!!!!



지금은 예전만큼 머리가 하얘지는 경험이 찾아오지는 않는다. 그래도 청중에 압도되면 화이트 아웃 현상이 여전히 찾아오기는 한다. 달라진 게 있다면 그런 현상이 내게 찾아오는 것이 덜 두려워졌다. '머리가 하얘지면 어쩌지.'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는 나를 사람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면 어쩌지.' 등의 생각보단 그냥 아 어차피 잠시 찾아와도 금방 지나갈 것임을 알기에 그냥 내 숨소리에만 집중해보려고 한다.



여전한 것은 청중의 규모가 커지거나 발표의 중요도가 높아진다 한들 여전히 나의 한계를 극복해 보고자 도전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별 것 아니라고 생각되는 발표들은 그냥 웃으면서 나선다. 마치 내가 대학교 신입생 시절 웃으면서 발표를 자처했던 조원을 보며 경이롭다고 생각했던 그 모습을 떠올리며.



신기한 것은 발표를 더 많이 할수록 심장이 쿵쾅거리고 손발이 저린 떨림이 무뎌지기도 했지만 오히려 더 많은 실전연습보다도 증상을 완화시킨 것은 혼자만의 시간이다. 명상을 하며, 책을 읽으며, 글을 쓰며 나와 만나고 그저 나의 호흡에 집중하고 살아있음을 느끼며 두려움을 피하기보단 마주해보려고 한다. 내게 이런 두려움이 있구나 알아차리고 비슷한 상황이 올 때 다른 무언가로 그것을 극복했던 연습보다 아 올 것이 왔구나 하며 떨리는 심장소리를 들어본다. 그럼 이상하게도 예전보다 금방 고요가 찾아온다.



누군가는 정말 타고날 정도로 발표를 잘하는 것 같기도 하다.

남편이 내게 갖는 환상처럼 나도 누군가를 보면서 '어떻게 저렇게 말하지?' 싶기도 하다.

함께 조별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조원이 자료 준비에 거의 기여를 하지 않았는데도 완성된 발표자료만 가지고 청산유수처럼 발표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느꼈던 상대적 박탈감을 잊을 수 없다.


하지만 타고난 천재형도 부럽지만 난 노력하는 내가 좋다.



무엇보다 겉모습으로 이제는 아무 판단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

내가 그 사람의 과거를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니 현재의 모습으로는 아무런 판단도 하지 말자 싶다.

우린 그저 각자의 방식으로 더 나은 '나'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일 테니.



그러니깐 남편아 내가 발표천재형이 아닌 노력형이라는 것을 이제는 좀 알아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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