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erenity Jelly Feb 14. 2022

누군가를 처음 좋아한다는 것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



“우리는 자꾸만 누군가를 좋아한다.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할 수도 있는데 시간과 마음을 다 바치면서 우리는 왜 누군가를 좋아할까.”

“네가 문자 씹으면 난 씹히고, 네가 날 바람 맞히면 난 바람을 맞고, 네가 날 차면 난 차이면 돼. 나한테는 그게 다 로맨스야.”


드라마 ‘좋아하면 울리는’ 中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행복한 하루가 되기도, 슬픈 하루가 되기도 한다. ‘좋아하면 울리는’이라는 드라마는 고등학생들의 사랑 이야기다. 서로를 좋아하는 마음을 ‘좋아하면 울리는 알람’이라는 앱(App)을 통해 확인하고 믿어가는 사람들에 관한 내용의 드라마다. 드라마를 보면서 과하게 몰입하여 설레었다가 안타까워하는 동시에 중학생 어린이 시절 무척이나 좋아했던 한 사람이 떠올랐다.


중학교 1학년 겨울의 일이었다. 어느 정도 학교 생활에 익숙해졌고, 몇 달 후면 2학년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나를 떨리게 했다. 그 해 겨울은 추웠지만, 교복에 코트를 입고 검은색 스타킹에 검은색 구두를 신고는 학교로 향하는 내 발걸음만큼은 따뜻했다. 친구와 아침마다 만나서 함께 버스를 타던 버스정류장에 평소보다 40분은 일찍 도착했다. 오늘은 친구가 오기 전에 꼭 보고 싶은 사람이 있었으니까.


그를 처음 보게 된 것은 엄격한 담임선생님 덕분이었다. 담임선생님은 당번으로 지정이 되면 매우 이른 시간에 교실에 도착하게 하였고, 당번이 되었을 때 평소보다 매우 이른 시간에 버스정류장에 도착한 덕분이었다. 그와 나는 서로 같은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렸지만 나와는 전혀 다른 길의 버스를 타고 가는 고등학생이었다. 몇 학년인지, 이름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물론 천으로 된 명찰을 가슴팍에 붙이고 있었지만, 멀리서 훔쳐보는 나의 입장에서는 가까이 가서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또한, 나보다 항상 먼저 도착해 있는 ‘그’ 였기에 어느 방향에서 오는지 조차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같은 버스 정류장에서 아침마다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았다.


언제부터인가 나의 친구도 나를 위해 아침에 함께 일찍 등교하기 시작했다. 그가 버스를 타고 가면, 그 후에야 우리도 학교로 가는 버스를 탔다. 첫눈에 반했던 그는 연애를 하고 싶은 대상 이라기보다는 연예인 같은 존재였다. 적어도 나에게는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늦잠을 자 버렸다. 엉망이 된 머리에 교복을 부랴부랴 챙겨 입고는 버스정류장으로 뛰어갔다. 친구에게 연락을 해 볼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저 ‘지금이라도 뛰어가면 볼 수 있을지도 몰라.’라는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 찼다. 그런 내 옆을 누군가 빠르게 지나쳐 갔고 익숙한 뒷모습에 ‘그’ 인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도 늦잠을 잤는지 뒷머리가 조금 엉망이었고,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그‘가 나와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았던 것이다. 워낙에 큰 아파트 단지여서 쉽사리 마주칠 수 없는 구조였다. 새로 알게 된 그에 대한 정보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뒷모습이라도 보게 된 그 상황이 너무 즐거웠다. 꼭 친구들이 연예인의 손끝만 봐도 즐거워하던 모습처럼 말이다.


친구들이 연예인 이야기를 할 때, 나는 ‘그‘의 이야기를 했다. 어느 날, 다른 학교에 다니는 친구와 오랜만에 만나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친구의 권유로 성당에 나가게 되었다. (그 당시 성당이나 교회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던 친구를 데려오는 이벤트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운명처럼 그를 그 성당에서 만났다. 교회 오빠도 아닌 성당 오빠라니. 친구에게 고맙다고 몇 번을 말하며 열심히 성당을 다녔던 나는 그와 조금 가까워질 수 있었다. 인사를 하고 가벼운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으니 그 시절의 나는 지금의 표현으로 ‘성덕 - 성공한 덕후’가 된 것이다. 그렇게 1년을 넘게 인사하고 웃어주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하던 나는 정말 순수했고, 사춘기 소녀의 첫눈에 반한 ‘첫 좋아함’ 이였다고 표현한다.


멀리서 보아도 좋았고, 가까이 다가가 인사해도 좋았고, 웃어주는 모습도 좋았고, 그저 연예인 좋아하듯이 좋아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곧 고3이 되는 그에게 큰 고민이 있고, 그로 인해 힘들어한다는 소식을 친구의 오빠를 통해 듣게 되었다. 왜 그런 것인지 궁금했지만 그의 주위를 맴돌기만 하는 나로서는 그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중학교 3학년이 되는 해 밸런타인데이에 용기를 내어 그에게 초콜릿을 주었다. 지금 생각하면 낯 부끄러울 정도로 엉성한 포장이었지만, 그 당시의 나로서는 최선을 다 한 것이었다. 그리고 한 달 뒤 화이트 데이에 그가 나에게 사탕을 선물해 주었다. 생각지도 못한 꿈만 같은 일이었다. 인기가 많았던 그는 나뿐만 아니라 많은 여자 아이들에게 초콜릿을 받았고, 화답으로 사탕을 받은 것은 오직 나뿐이었으니까. 생각지도 못한 화답에 주변 친구들은 나보다 더 성화였다. 하지만 며칠 뒤, 그의 고민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왜 나에게 사탕을 주었는지 알게 되었다. 자신보다 3살이나 어린 소녀가 항상 주위를 맴돌며 인사만 하고 가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던 그는 나에게 만은 자신의 꿈에 대해서 말을 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나에게 자신을 좋아하지 말라고 친절하게 말하며, 자신은 신부님이 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 당시 나는 많은 눈물을 흘렸지만, 그 순간에도 그가 자신의 꿈을 꼭 이루기를 바랐다. 오로지 그를 보기 위해 열심히 갔던 성당을 나는 그 이후부터 갈 수가 없었다. 어린 시절의 나는 깊은 신앙심보다는 오로지 ‘그‘를 볼 수 있기에 열심히 갔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렇게 5년의 시간이 흐른 어느 날이었다. 오랜만에 만나기로 한 친구가 굳이 일요일 오후 1시에 예전에 다니던 성당 카페로 오라는 것이었다. 오랜만에 간 그곳은 예전과 똑같았다. 그렇게 성당에 위치한 카페로 들어선 나는 카페의 다른 문으로 들어선 한 남자를 보고 우뚝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였다. 정말 신부님이 되었다. 어쩌면 신부님이 되는 단계였을 수도 있다. 그가 그 성당에 와 있었던 것이다. 그도 나를 알아보았는지 잠시 서서 나를 바라보다 눈인사를 건넸고, 이후 나는 그 공간에 더 머물 수가 없어서 밖으로 나왔다. 슬픈 마음이 아니라 그가 자신의 꿈을 이룬 것이 너무 좋았고 뿌듯했다. 그리고 나를 아직 기억했던 그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던 것은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이 나를 기억해주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아서였던 것 같다. 내가 처음으로 한눈에 반했고, 나에게는 연예인 같은 존재였던 그가 지금도 행복하기를.





 * Serenity Jelly의 사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