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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renity Jelly Feb 15. 2022

나를 사랑하는 것, 그리고 행복하게 해 주는 것

행복



“하기 싫으면 하지 마요. 극복이라는 게 꼭 매 순간 일어나야 되는 건 아니에요. 주말엔 쉬어도 돼. 그러니까 하기 싫으면 하지 마요. 그게 뭐든”

“내가 사랑한 것 중에 왜 나는 없을까?”


드라마 ‘런 온’ 中     



30대가 되면서부터 나는 나를 위해 살기보다는 아이들을 위해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나’를 뒷전으로 생각한 일이 많았다. 내가 좋아하던 것, 내가 사랑하던 것들에 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기 싫은 일도 많았지만 ‘엄마니까’ 해야 했고, 주말에는 당연히 쉴 수 없었다.  


드라마의 여주인공이 남자 주인공에게 말하는 ‘하기 싫으면 하지 마요.’가 나에게는 통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 말을 곱씹어서 생각해 보니 나는 일을 시작하면서부터는 하기 싫다고 하지 않고, 주말이니까 쉬는 일을 잘하지 못했다. 내가 다녔던 회사에서는 일이 너무 바빴고, 쉴 수 없는 환경이었다. 하루하루를 쉬지 않고 그렇게 달리고 달리다 보면 주말이 찾아왔지만, 주말엔 일을 위해 스터디를 하고, 자료를 찾아보고 그렇게 다시 월요일을 맞이하는 반복적인 삶이었다. 그랬다 보니 참으로 지쳐있었다.  


아이를 낳고, 일을 그만두면 조금이라도 자유가 찾아올 줄 알았지만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아이를 낳으니 책임감은 더 막중해지고, 슈퍼 엄마가 되기 위해 더 열심히 아이를 돌봐야 하는 상황이 되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점점 나라는 사람은 사라져 갔다.  


그러던 어느 날, 큰 아이가 유치원을 다녀와서는 나에게 물었다.

“엄마, 엄마는 직업이 뭐야?”

“엄마 예전에는 회사 다녔었어~ ”

“그럼 지금 엄마의 직업은 뭐야?”

순간 머리가 멍- 해졌다.  

“엄마는… 엄마가 직업인가..? 하하하”

웃으며 장난스레 말하니, 큰아이는 조금 더 심각한 얼굴로 이야기했다.

“친구들이 ‘엄마’는 직업이 아니랬어! 내 친구**는 엄마가 작가라고 그랬어. 또 다른 친구는 엄마가 의사 선생님 이랬어! 엄마는 직업이 뭐야? 난 뭐라고 이야기해야 해??”

“엄마는 지금 일을 안 하니까~ 직업이 없어. 다른 엄마들은 일을 하시니까 직업이 있는 거고..~”

“그럼 엄마는 ‘엄마’ 말고 다른 거 하는 건 없어?”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엄마가 되고 나니 당연히 나는 가정주부가 되어 직업이 없고, 과거 나의 직업은 과거의 일일 뿐이니 말이다. 그날 밤, 아이의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아 쉽사리 잠자리에 들 수 없었다.

다음날,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아이들 친구의 엄마와 커피 한잔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나는 전날 있었던 이야기들을 풀어서 설명했다.


“언제부터인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열심히인데, 그 안에 나는 없더라고요. 직업도 직업이지만, ‘나는 나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았는데-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나는 그냥 아이들의 엄마이고, 남편의 아내이고… 내가 좋아하던 것, 내가 하고 싶었던 것, 그리고 ‘나’는 사라진 상태이더라고요."

 

내 이야기를 한참을 듣던 그녀는 나에게 이런 조언을 해 주었다.  

“직업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그래도 엄마가 뭔가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이를테면 취미생활 같은 것 말이 예요. 그리고 아이들이랑 함께하는 주말에도 그 취미생활을 하는 것을 보여주며, 엄마의 시간을 보낸다는 것,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아이에게는 새로운 자극과 경험이 될 것 같아요. 직업이 따로 없는 엄마지만 우리 엄마는 무언가를 항상 열심히 한다 라는 것을 아이에게 보여주면, 아이도 새로운 자극을 받지 않을까요?”


그 이야기를 듣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내가 좋아하던 것, 그리고 나를 위한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이 많아졌다. 그녀의 말처럼 꼭 일이 아니더라도, 무언가를 꾸준히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 또한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일을 하기 전에, 아이들을 키우기 전에 좋아하던 것은 사진 찍기와 글쓰기를 좋아했다. 비록 긴 글은 아니더라도 그때그때의 시선과 감정을 사진과 글로 기록하던 내가 떠올랐다. 하지만 어떻게 시작하는 게 좋을지, 그냥 혼자 메모를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즈음, 친한 동생이 나에게 이런 조언을 했다.  


“사진 찍기와 글쓰기를 sns에 올려보면 어때요? 좋은 카메라 아니어도 요즘에는 폰으로 사진 찍어서도 많이 올려요. 글도 사진도 SNS에 하나씩 올리면 좋을 것 같아요.”


그날 용기가 생겼던 것 같다. 예전에는 사진은 ‘좋은 카메라로’라는 생각만 가득했었는데, 생각을 조금 바꾸고 주변을 돌아보니 굳이 좋은 카메라가 아니어도 핸드폰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글을 쓰는 것도 처음부터 뭔가 거창한 목표를 세워서 쓰기보다는 짤막한 나의 생각들을 하나씩 풀다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저녁 과감하게 ‘혼자만 만족하는 계정’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어딘가에 기록하지 않으면 활활 불타오르던 의지가 사라질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였다.  


그렇게 계정을 만들고 하루하루 나의 생각들과 내가 바라본 세상을 사진으로 담아 그 시선을 SNS에 공유하다 보니 뭔가 해 나가는 내가 된 것 같았다. 그리고 나도 무언가 꾸준히 해 나갈 수 있는 일이 생겼구나 라는 용기가 생기며 하루하루가 즐거워졌다.




 * Serenity Jelly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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