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러브미> 인물들이 보여준 외로움과 함께 살아가는 법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정호승 시인의 유명한 이 시구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삶의 기저에 '외로움'이 깔려있음을 모르는 이는 없을 듯하다. 우리는 홀로 있을 때뿐 아니라, 사랑하는 이와 함께 있거나 시끌벅적한 모임에 속해 있을 때조차 불현듯 외로움을 느낀다. 하지만, 자신이 '외롭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이를 수용하며 살아가는 이들은 많지 않다. 대신 외로움을 몰아내기 위해 사랑을 갈구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빠져들며, 더 바쁘게 자신을 몰아치곤 한다. 외롭지 않아야만 삶이 괜찮아질 것처럼 군다.
외로움에 물러서지 않는다면 어떨까. 외로움을 인지하고, 이를 수용하면서 또 동시에 연결되어 간다면 그 자체로 '치유'가 시작된다. 이 과정은 '외로워도 괜찮다'는 따뜻한 위로를 전하기 때문이다. 최근 종영한 JTBC 드라마 <러브미>는 이런 '외로움'을 주제로 한 드라마다. 이 드라마의 인물들은 '외로움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알려준다.
외로움을 수치로 여기지 않기
심리학에서 외로움은 '원하는 유대감과 실제 경험하는 것 사이의 간극'으로 정의된다. 사람은 이런 간극을 느낄 때 사회적 행동을 통해 연결을 추구한다. <외로움 벗어나기 프로젝트>의 저자 제러미 노벨은 외로움은 '진화적으로 인간이 서로 의지하고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데 도움이 되는 감정'이라고 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외로움은 수치스러운 것'이라 설파하기에 많은 이들은 수치심에서 벗어나고자 마치 '간극'이 없는 것처럼 살아간다. 대체로 실제 경험하는 외로움을 부인하거나, 유대감을 원하지 않는 것처럼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러브미>의 준경(서현진)이 바로 딱 그런 인물이다. 산부인과 의사인 준경은 수련의 시절 어머니 미란(장혜진)이 자신을 만나러 오다가 교통사고를 당한 장면을 목격한다. 미란은 이 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는다. 준경은 고통스러워하는 어머니를 더 이상 마주하지 못하고, 가족을 떠나 혼자 살아간다. 퇴근 후엔 늘 어두컴컴한 집에서 잠 못 드는 괴로운 밤을 보내지만, 그를 걱정해 주는 친구 수진(이지혜)에게 조차 "어쩌냐, 난 외롭지가 않은데"라고 부인한다.
하지만 미란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자 준경은 그제야 깨닫는다. 자신이 사고로부터, 그로 인한 죄책감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스스로를 고립시키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살아왔다는 것을 말이다. 결국 자신의 외로움을 인정한 준경은 수진에게 말한다.
"혼자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 싸울 수도 없고, 화해할 수도 없고, 위로할 수도 없고 위로받을 수도 없고, 혼자 할 수 있는 건 외로운 거밖에 없네." (2회)
그리곤 마침내 자신에게 다가온 인연 도현(장률)의 마음을 받아들인다. 외로움을 부인하지 않고, 인정하며 받아들일 때 우리는 누군가와 손잡을 용기를 낼 수 있다.
나만 그렇지 않음을 기억하기
이런 준경이 자신의 외로움을 수치로 여기지 않게 된 데는 '우연히 만난 한 사람'의 힘이 컸다. 준경은 외로운 밤마다 집 근처 편의점에서 맥주를 산다. 같은 시간 편의점에는 늘 경찰 시험을 준비하는 아르바이트생 원영(강채영)이 있다. 준경은 원영에게 말을 건네지는 않지만, 왠지 모르게 자꾸만 그에게 관심이 간다. 아마도 원영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을 테다. 그리고 이는 '나만 외로운 게 아니구나'라는 위안과 함께 외로움에 대한 수치심을 덜어주었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준경이 편의점을 방문했을 때 갑작스레 정전되자 원영이 당황한다. 그때 준경은 전기가 들어올 때까지 원영의 곁에 있는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같은 라디오 방송을 들으며 나란히 앉아 있던 그 시간 외로운 두 사람은 따뜻하게 연결된다(4회). 훗날 원영은 준경을 떠올리며 함께 듣던 라디오 방송에 이런 사연을 보낸다.
'늘 말이 없고 표정이 없었어요. 그런 모습이 어쩐지 저를 보는 것 같았어요. (...) 어떤 것도 묻지 않고, 아무 말도 안 했는데 그냥 위로됐어요. 나하고 같이 있어 줘서 나하고 닮아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못했어요.' (7회)
이후 준경과 경찰이 된 원영은 재회하고, 통성명하며 '친구'가 된다(8회). 나는 이 둘의 관계가 드라마 속 묵직한 '사랑'보다 더 힐링이 되었다. 나만 외로운 게 아니라는 것, 그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서로를 비춰주며 힘이 되어 주는 모습이 참 따스했다.
나 자신과 연결된다면
<러브미>에는 준경-도현 커플 외에 다른 두 커플이 더 나온다. 준경의 동생 준서(이시우)-혜온(다현)과 아버지 진호(유재명)-자영(윤세아) 커플이다. 이들은 서로의 외로움을 감싸 안으며 극 중반 모두 연결된다. 마치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릴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드라마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커플들은 온전해진 듯 보이지만, 외로움은 불현듯 다시 찾아온다. 우리가 누군가와 사랑에 빠져 하나가 된 것처럼 외로움을 상대방을 통해 채울 수 없음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준경은 도현의 아들로 알려진 다니엘(문우진)을 둘러싸고 갈등을 겪는다. 다니엘과 다니엘 어머니 윤주(공성하)의 존재는 준경을 도망치고 싶게 만든다. 준경은 또다시 외로워진다. 준서는 오랜 친구 혜온과 커플이 되지만, 시간강사 자리의 대가로 지불한 500만 원을 갚느라 대리운전하는 자신이 한심하기만 하다. 그러던 중 혜온이 신인작가 상을 수상하자, 더 큰 외로움을 느낀다. 아내 미란을 오랫동안 간병했던 진호는 여자친구 자영의 치매 소식에 망연자실한다. 하지만, 미란에게 했던 것처럼 '괜찮은 척' 다정함으로 무장 한 채, 홀로 속앓이 하는 나날을 보낸다.
이처럼 외로움은 누군가와 연결된다고 해서 자취를 감추지 않는다. 갈등이 생기면, 기다렸다는 듯 외로움이 다가온다. 이 때문에 관계를 놓아 버리는 선택을 하고 스스로 고립되기도 한다. 하지만 <러브미>의 인물들은 자기 자신과 연결되기를 선택하며 고립되지 않았다. 준경은 관계에서 멀어지고자 하는 이유가 '불확실성을 회피하고자 하는 자신의 마음'에 있음을 깨닫고 용기를 낸다. 그리고 "불확실한 것들 속에 희망을 찾자"(10회)고 다짐한다. 용기를 내 나아가자, 도현과 더 진심으로 이어지고, 윤주의 존재에도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다.
준서는 12회 대리운전하는 모습을 혜온에게 들키고 한바탕 싸운 후 그제야 자신의 진짜 마음을 본다. 혜온에게서 느끼는 괴리감이 실은 부정의한 방법에 동의한 자신의 마음과 괴리에서 온 거라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500만 원을 되찾아 온 후, 보다 솔직한 모습으로 혜온과 다시 연결된다.
진호는 미란을 간병했을 때와 똑같이 '자기기만'에 빠져있는 자신을 마주한다. 11회 진호는 자영에게 거짓말을 하고 집에 들어가지 않는데 그 모습을 자영이 목격한다. 자영은 "행복해질 수 없을 것 같다"며 진호 곁을 떠난다. 자영의 이런 반응에 마침내 진호는 자신을 희생하며 타인에게 맞춰 살아온 게 결국 '자기기만'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그리고 좀 더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수용한다. 이후 자영의 관계는 좀 더 단단해지고 투병 생활은 조금 가벼워진다.
<러브미> 인물들은 사랑 앞에서도 완전히 외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부인하던 외로움을 마주하고, 함께 있어 주며, 자기 자신에게 보다 솔직해지고 나서야 서로 연결되는 걸 선택할 수 있었다. 아마도 이들은 또다시 갈등을 겪고 외로움이 전면에 나서는 시기를 만날 것이다. 하지만 외로움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 및 타인과 연결되기를 택한 경험이 있기에, 고립되지 않고 서로를 붙잡아 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역시 그렇지 않을까. 외로움을 피해 갈 순 없지만, 나 자신 그리고 외로움을 견디게 해 줄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면 외로움과 함께라도 꽤 괜찮을 것만 같다. 드라마의 3회 인용된 다음 문장처럼 말이다.
'고독해도 괜찮다. 그러나 여전히 고독해도 괜찮다고 말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오노레 드 발자크)
* 이 글은 <오마이뉴스> '힐링의 대세' 기획의 일환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