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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연 Jul 21. 2021

<블랙 위도우>,
내 안의 가부장을 깨부수다

[영화 리뷰] <블랙 위도우>가 보여주는 내 안의 가부장을 타파하는 법

*주의!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블랙 위도우>의 액션 장면은 통쾌함 그 이상이었다.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올 상반기 내내 나는 특별한 이유도 없이 마음이 답답했다. 알 수 없는 분노가 올라왔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분노 때문에 스스로가 조마조마해지는 마음으로 몇 달을 지냈다. 유독 굵게 내렸던 장맛비에 마음이 잠시 식는 것도 같았지만, 도시 전체가 찜질방이 되어 버리는 대구의 여름 더위가 시작되자 다시금 답답함과 분노가 가득 차올랐다.


  내가 영화 <블랙 위도우>를 택한 건, 이 답답함 때문이었다. <블랙 위도우>가 개봉되기 전 접한 언론의 프리뷰는 한결같이 시원한 액션에 무게를 두고 있었고, 왠지 뭐든지 때려 부수는 액션들을 보고 나면 마음이 조금은 시원해질 것 같았다. 게다가 마블 영화들은 다른 영화들에 비해 잔혹함의 수위가 낮지 않던가(나는 피 튀기는 장면을 보면 구토부터 쏠려서 영화 선택에 제약이 많다). 그렇게 나는 한 줄기 시원함을 기대하며 극장을 찾았다.


 영화가 상영되는 2시간 남짓한 시간은 쏜살같이 흘렀다. 그리고 정말로 영화의 엔딩 자막이 올라갈 땐 마음이 시원해져 있었다. 뿐만 아니었다. 나는 이 영화를 통해 내가 느껴온 답답함의 이유를 찾아낼 수 있었다.



가족을 통해 전해지는 억압


<블랙 위도우> 한 장면.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영화는 나타샤(스칼렛 요한슨)의 행복했던 어린 시절에서 출발한다. 나타샤는 오하이오에서 3년간 평화로운 시절을 보낸다. 깨끗한 자연에 둘러싸인 잘 단정된 마을에서 살던 그 시절. 나타샤와 그녀의 동생 옐레나(플로렌스 뷰)에게는 세심하게 아이들을 돌보는 따뜻한 어머니 멜리나(레이첼 와이즈)와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아버지 알렉세이(데이빗 하버)가 있다. 딸들이 다치면 언제든 달려오는 엄마와 일터에서 귀가해 딸들의 안부를 묻는 아빠, 부모를 믿는 두 자녀로 구성된 이 가족의 모습은 가부장 사회가 이상화하는 화목한 가족 그 자체였다.


 하지만 곧 평화는 깨진다. 러시아 스파이로 작전을 수행하고 있었을 뿐이었던 멜리나와 알렉세이는 딸들을 쿠바로 데려간다. 그리고 계획대로 두 딸을 '레드룸'에 입소시킨다. 레드룸은 소녀들을 모아 강인한 킬러로 훈련시키는 곳이다. 레드룸에선 드레이코프(레이 윈스턴)가 정한 기준을 통과한 강한 아이만이 살아 남고 약한 아이들은 도태된다. 설령 기준이 부합해 살아남았다 할지라도 드레이코프의 지배를 받는다. 나타샤와 옐레나가 "난소와 자궁을 제거당했다"고 증언하듯, 타고난 여성성마저 박탈당한다. 레드룸의 이런 모습은 현실 속 여성에게 가해지는 가부장제의 억압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그렇다면 부모가(비록 계약 가족이라 할지라도) 딸들을 데려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이는 가부장 문화의 질서가 가족을 통해 답습되는 현실을 떠올리게 했다. 여전히 편향된 사회 속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부장 문화의 질서를 가정에서 습득한다. 가족은 이분화된 성 역할, 서열과 위계에 의한 복종, 가부장으로서 아버지가 지니는 권위를 증명하는 공간이다.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보고 자라면서 마음과 몸에 새겨진 가부장제의 질서는 우리들의 내면에 깊숙이 저장된다. 레드룸에 딸들을 넘긴 존재가 부모라는 설정은 바로 가정을 통해 내면화되는 가부장적 질서를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를 모두 부모의 잘못이라 할 수 있을까. 현실에서 부모들이 가부장제의 억압을 아이들에게 전달하는 건, 그들 역시 윗세대로부터 전수된 오래된 사회 문화적 조건으로부터 세뇌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부모들은 그저 자신들이 살아온 방식을 자녀들에게 무의식적으로 전수할 뿐이다.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다. 멜리사와 알렉세이는 조직에서 세뇌된 스파이였고, 이들에겐 다른 선택지가 없었을 테다. 때문에 어머니 멜리사는 딸들에게 "너 자신을 결코 잃지 말아라", "시련을 겪을수록 강해진다"는 진실된 조언을 하면서도 딸들을 레드룸에 넘기는 것에 저항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억압의 실체를 깨닫다


 이렇게 레드룸에서 살아남은 여성들은 킬러가 되고 드레이코프가 조정하는 대로 움직인다. 영화 곳곳에 등장하는 이 여성들의 모습은 가부장제에 길들여진 채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여성들의 모습을 상징하는 듯했다. 하지만 강한 자의식을 지닌 나타샤는 레드룸의 최면에 걸려들지 않는다. 레드룸을 탈출한 그녀는 이전의 마블 시리즈에서 보여주었던 바로 그 영웅으로서의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그녀의 내면은 무표정한 표정만큼이나 공허하다. 영화의 중반 "아이를 갖고 싶냐"며 나눈 옐레나와의 대화에서처럼 그녀는 제거된 여성성과 진실한 가족이라 믿고 싶었던 가족들에 대한 배신감으로 괴로워한다. 그럼에도 나타샤는 이런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애를 쓴다.


 나타샤의 동생 옐레나 역시 강한 자의식을 가진 여성이다. 레드룸에서 조종을 받으며 킬러로 키워진 옐레나는 동료들이 개발한 해독제 덕분에 통제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만의 삶을 살아간다. 그녀는 나타샤에게 "처음으로 내가 원해서 산 것"이라며 주머니가 많은 조끼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데 이는 옐레나가 자기 자신으로 사는 것을 얼마나 열망해왔는지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이렇게 자기 자신을 지켜내는 데 성공한 나타샤와 옐레나는 '레드문'을 제거하기 위한 작전에 나선다. 나타샤는 죽었다 믿은 드레이코프가 살아 있음에 당황하는데, 이는 끈질긴 저항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살아남아 세상을 지배하는 가부장제의 생명력을 상징하는 듯했다.


내 안의 가부장을 극복하려면 


   

영화 <블랙위도우>는 '내 안의 가부장'을 타파한 여성들이 발휘하는 놀라운 힘을 이야기한다.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이후 영화는 통쾌한 액션신과 함께 레드문을 소탕하는 과정에 초점이 맞춰진다. 이 과정은 마음 깊이 내면화된 가부장 문화의 질서, 그러니까 '내 안의 가부장'을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말해 주는 듯했다.


 레드문 소탕 작전에서 중요한 부분 중 하나는 '아버지' 엘렉세이와 '어머니' 멜리나의 역할이었다. 드레이코프를 위해 헌신했던 알렉세이는 조직에게 배신당한 채 감옥에 갇히게 되고 마침내 깨달음을 얻는다. 그의 모습은 평생을 직장에만 헌신하다 자기 자신을 잃고 괴로워하는 중년 이후의 남성들을 떠올리게 했다. 이는 가부장제에서 요구하는 이분화된 성 역할이 남성에게도 억압의 기제가 될 수 있음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어머니 멜리나 역시 자신이 드레이코프에게 조정당하고 있음을 간파한다. 


 가족의 지원을 등에 업은 나타샤는 지혜와 용기를 발휘해 드레이코프를 공격한다. 그러나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고 의외의 적에게 공격을 받기도 한다. 영화는 내면화된 가부장제의 억압에서 벗어나려면 가정으로 상징되는 일상 속에서 변화를 실천하는 것, 그리고 함께하는 연대와 돌봄이 반드시 필요함을 말해주고 있었다. 


 영화가 끝나고 나는 정말로 마음이 시원해졌다. 나타샤의 승리도 통쾌했지만, 나를 짓누르던 답답함의 원인을 찾아냈기 때문이었다. 그토록 인식하고 극복하려 노력했음에도 여전히 나는 내 안의 가부장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했고, 이에 늘 답답함과 분노를 느껴왔던 것이다.


 <블랙 위도우>의 액션 장면이 그토록 시원하게 느껴졌던 것은 아마도 내 안의 가부장을 깨부수는 쾌감과 연결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원인을 알았다고 단번에 모든 답답함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답답함이 또다시 나를 사로잡을 때 나는 이제 <블랙 위도우>가 보여준 이 진실을 기억할 것이다. 영화 속 통쾌하게 내 안의 가부장을 깨부수는 이미지들을 되새기면서 좀 더 민감하고 섬세하게 나의 힘을 키워가기로 다짐해본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 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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