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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 쓰는 엄마 Jan 27. 2023

#4. 유럽 교환학생들과의 대립 (1)

문학 시간에 생긴 일


Covert racism.


직역하면 '은밀한 인종차별.' 즉, 대놓고 하는 차별이 아닌 은밀하게, 은근슬쩍, 이게 인종차별인가? 긴가민가 하게 만드는 인종차별. 내가 당했던 첫 인종차별이 바로 이 covert racism 이었다.





"시호 오늘 안 왔어?"


다른 교환학생들과 카페테리아에서 함께 앉는 게 일상화되어 있던 어느 점심시간이었다. 스위스 교환학생인 올리비아가 웬일인지 시호를 찾았다.


올리비아는 백설공주만큼이나 흰 얼굴에 (대부분의 미국인 친구들 보다 흰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발그스름한 볼, 탈색을 한 것 같아 보이는 금발머리, 그리고 보고 있으면 빠져들 것만 같은 하늘색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키도 크도 날씬해서 잡지 모델로 활동한다 해도 놀라지 않을 외모였다. 그러나 항상 웃음기 없는 차가운 표정을 짓고 있어 먼저 다가가기 힘든 인상이었다.


"걔 오늘 발표라서 일부러 빠진 거 아냐?"


올리비아가 비아냥거리며 말하자, 옆에 앉은 독일 교환학생 존이라는 아이가 맞장구를 쳐준다.


"충분히 그러고도 남지."


존은 태닝을 즐겨하는 것처럼 보이는 구릿빛 피부에 짙은 갈색 머리를 하고 진한 눈썹을 가지고 있었다. 올리비아와 존은 늘 함께 다녔는데, 아마 같은 유럽에서 와서 통하는 부분이 있었나 보다.


불편한 대화 사이에 나는 그저 눈앞에 놓인 샌드위치만 열심히 먹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그 셋과 같은 수업을 듣고 있지 않았고, 섣불리 대화에 끼어들어 뭐라고 말할 상황 아니라 판단했다.


올리비아 존 항상 대화를 할 때 나와 시호를 얕보고 있다는 느낌 받게 했다. 말을 할 때 중간에 가로챈다던가, 영어 단어가 생각이 안 나 머뭇거리면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미간을 찌푸린다던가, 모두 알아들었는데 일부러 못 알아들은 척 되묻는다던가 하는 동들이 그랬다. 나만 느끼는 것인지 데니스에게도 물어본 적이 있는데, 데니스도 그들이 본인을 대하는 것과 우리를 대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고 했다.


'난생처음 당보는 인종 차별을 미국인이 아닌 같은 교환학생 사이에서 느껴보는구나' 생각하면서도 대놓고 뭐라고 한 것이 아니기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지내던 어느 날, 존과 함께 듣는 문학 시간에 발표 그룹으로 존과 한 조가 되었다. 당시 문학 시간에는 18세기의 미국 문학에 대해서 배우고 있었는데, 우리 조는 '윌리엄 버드' (William Byrd, 1674-1744)에 대한 내용을 정리하여 발표하는 과제를 받았다.


본인과 미국 친구들이 읽고 포스터에 들어갈 용을 요약하여 줄 테니 나는 그 내용을 받아 포스터 만드는 것을 담당하라는 존의 말에 아직 적응이 채 되지 않아 문학 시간이 곤욕이었던 나 반가움을 표했다. 그동안 나와 시호가 느꼈던 소외감은 사실은 오해였다는 생각이 들며, 존의 세심한 배려가 고마웠다.


그러나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도 존은 나에게 포스터에 적을 내용을 주지 않았다.


'양이 꽤 많으니 읽느라 고생일 거야. 너무 재촉하지 말자. 포스터는 내용받으면 전날 밤새서라도 만들면 되지.'


발표 이틀 전까지도 아무 말이 없자 나는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존, 혹시 포스터에 넣을 내용은 언제쯤 받을 수 있을까? 모레가 발표잖아."

"응? 무슨 내용?"


이게 무슨 소린가.

존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난생처음 듣는다는 표정을 하며 오히려 나에게 되물었다.


"내용은 네가 알아서 만들어야지. 포스터 담당이 하는 일이 그거잖아."


나는 당황하여 말을 잇지 못했다. 분명 여러 번 물어봤었다. 포스터에 어떤 내용이 들어가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했을 때 존은 다정하게 웃으며 "괜찮아. 포스터에 적을 내용은 내가 정리해서 줄게."라고 했었다. 존이 나를 무시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지난 날들에 대해 미안한 감정마저 느끼고 있었다.


물론 내 잘못도 있었다. 부족한 영어 실력을 앞세워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려 하지 않았다는 점. 명하자면, 나는 포스터에 담길 내용은 조원들 다 같이 의논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내용 파악 및 의논은 다 해서 알려주겠다던 존의 말만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포스터를 꾸밀 재료를 사서 집으로 돌아와 교과서를 소리 내어 읽고 또 읽었다. 그러나 읽은 내용은 입가에서만 맴돌 뿐 머릿속에서 정리가 되지 않았다. 어떤 내용을 포스터에 담아야 할지 어떤 그림을 넣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모든 조가 같은 날 발표를 하게 되어있었기 때문에 다른 학생들이 한 것을 참고할 수도 없었다.


나 때문에 다른 조원들의 점수까지 바닥으로 끌고 갈 수는 없었다. 내가 맡은 업무를 해내야 한다는 책임감무거웠고, 문학 시간에는 친한 친구도 없었기 때문에 도움을 요청할 사람도 없었다.


한국과 미국에서 이야기하는 '포스터'의 개념이 다르다는 것도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었다. '포스터'라고 하면 한 번만 들어도 입에 착 붙는 캐치 프레이즈(catch phrase)가 적힌 캠페인이나 광고 포스터 같은 이미지를 떠올렸는데, 수업 시간에 이야기한 포스터는 중요 내용을 요약하여 정리해 놓은 일종의 부피만 큰 요약본의 의미였다. 이를 알 리가 없었던 나는 윌리엄 버드의 삶과 작품들 사이에서 입에 붙고 기억될만한 캐치 프레이즈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압박에 창작의 고통마저 느끼고 있었다.


그렇게 다이닝룸 식탁에 텅 빈 포스터와 문학 교과서를 펼쳐놓은 채 그날 밤을 꼬박 새웠다.


그리고 다음 날 문학 시간, 내 어두운 표정을 보고 "포스터 준비는 잘 되어가니?" 물어온 미스 에이크리지 앞에서 눈물을 쏟고 말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20년 전 그때도 나는 여전히 눈물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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