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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렌 Sep 08. 2022

우울증 환자가 사는 법

종말인의 우울 극복 도전기 #그림수필

   나는 니체가 말하는 초인일 수도 없고, 초인이 될 자질조차 없다고 생각한다. 이 사실은 10대 후반부터 이미 뼈저리게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니체를 알기 전부터 이미 귀족적 급진주의자였던 나는 이 사실을 견딜 수 없었다. 니체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겠는가! 신이 있다면 내가 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어찌 견딜 수 있겠는가! 라고. 누구나 그렇듯 청소년기에는 내가 특별한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닫고 나는 20대를 마치 길바닥의 돌멩이처럼 살았다. 아니, 길바닥의 돌멩이보다도 못한 삶을 살았다. 하지만 나는 내심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야심을 전혀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며 살았던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나"와 현실의 "나" 사이에는 점점 더 큰 괴리가 발생했고, 나는 결국 죽음을 계획한다. 서른이 되기 전에 무언가 싹수가 없다고 생각된다면, 죽어야겠다고 어릴 때부터 생각해왔다. 세상에 쓸모없는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할 필요가 없지 않아? 내가 만난 의사들에게도 수없이 이야기해온 건데, 내가 죽음을 선택한 것은 자연선택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내 존재를 세상에서 지우는 데 장렬히 실패했다. 빈센트 반 고흐가 죽기 전에 말했듯, 나는 내 존재를 지우는 것조차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실패 직후에는 정말로 괴로웠다. 하지만 이제 드디어 이렇게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자살 시도가 나에게는 인생의 기점이 되었구나, 라고. 정말 보기 흉하게 실패하고 말았지만, 어찌 생각하면 그 시점부터 나는 다시 태어난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나는 부활한 것이다. 새로운 생명으로. 부활 후 내가 가장 먼저 해야 했던 것은 부모님을 향한 증오를 청산하는 것이었다.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누구나 떨쳐내기 힘든 그 애증을 말이다. 정말 어려웠지만, 부모님의 도움으로 수많은 정신적 외상을 무수히 치료하였다. 물론 흉터는 남았다. 흉터까지 지우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그다음으로 해야 했던 건 나 자신을 용서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나 자신을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었다. 지금도 과거의 나는 용서할 수 없다. 아마 영원히 용서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현재와 미래의 나를 내가 용서할 수 있는 인간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10대의 나는 초인이 되기 위해 하루하루 노력하는 인간이었다. 하지만 벽을 느끼고 좌절했다.

   20대의 나는 노력하지 않았다. 진실로 종말인이라 할 수 있었다. 종말인인 채로 죽음을 바랐다.

   30대. 죽음에 실패한 나는, 다시 초인을 꿈꾼다. 10대 때도 마음껏 드러내지 못한,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야심을 뽐내며. 그렇지 않고선 이 생을 살아낼 수가 없다.


   나는 내가 가진 우울을 평생 지워내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다. 이건 나의 태생적 기질이고, 죽음으로만 해결할 수 있으리라 믿으니까. 하지만 난 우울증 환자여도, 죽음을 꿈꾸는 사람이더라도 충분히 삶을 멋지게 살아낼 수 있다는 것을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아니, 우울증 환자일수록 매일을 보람차게 살지 않으면 죽음을 택하게 된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이렇게 삶을 치열하게 살기 시작하면 나는 또 좌절할 것이다. 괴테가 말하길,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그래서 또 좌절하고, 다가올 40대를 또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게 노력할 것을 소명한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에 쓸모없는 난 또 죽음을 계획할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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