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마주치지 않을지도 모르는 것에 흔들려 자꾸만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이렇게 또 제자리로 돌아와버려 처음부터 다시 리셋. 왼손으로 삐뚤빼뚤 생각을 써내려가듯이, 이게 뭐야 싶은 지렁이들이 살아움직인다. 당장은 이 침묵을 깨우는 새로운 리듬이 필요하다. 밖에는 지금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내일 아침 버스 안에는 우산들이 사람들의 손을 잡고 타있을거라 일찍 집을 나서야지. 버스 손잡이 하나에만 의지해 사람들이 실어 날라지는 풍경. 빗방울이 굵어도 빗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모두들 휴대폰 속 플레이리스트를 들을 뿐. 밤새 비가 내려 웅덩이가 만들어진 곳을 피해 걷는다. 바짓가랑이가 젖을 수 있으니 검은색 슬랙스를 입고 나가야겠어.
아직은 이 일을 계속할 지 모르는 일을 하고 생각을 정리해보려 괜히 깨끗한 바닥을 쓸어본다. 일이 재미있을 수는 없다. 적어도 내게는 일이란 그런 것이어서 하다보면 재미를 찾을 수 있을까 하는 기대는 없다. 반짝반짝거리는 이 지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작은 천국, 그것이 무엇일까? 지옥에 잠식되지 않을 확신이 있는 것인가? 를 고려해본다. 나름의 확신을 갖고 발걸음을 내딛을 테지만 어디든 빛이 나는 지옥을 살아가기에 늘 두더지 잡기 게임을 해야 할 운명이다. 비로소 고요하겠구나 싶은 확신이 들 때 즈음에 악마 두더지가 불쑥 나타날거야. 실수의 빈틈에서도 사랑과 행복은 흐른다고 믿는다. 두더지들아, 계속 나타나줘. 좋아하는 지렁이들이 벌써 이렇게 많아졌잖아. 그때마다 나는, 앞으로 무수히 많을 실수 앞에서 항상 새로운 리듬으로 실로폰을 연주할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