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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rge Lutens Jul 15. 2023

<미로>

어릴 때 월마트에서 ‘Brain Games’ 라는 제목의, 1000페이지는 넘어보이는 아주 두꺼운 놀이책을 부모님께서 사주셨다. 물음표가 가운데 아주 크게 있는 보라색 표지에 내지는 빳빳한 싸구려 재질의 종이로 이루어진 책이었다. 아직도 기억이 나는 건, 금붕어가 어항으로 가기 위한 미로찾기 게임이 있었다. 책의 맨 뒷장에는 답이 있었다. 유치원도 가기 전이었던 내게 그 게임은 너무 어려워서 아빠가 대신 풀어주었다. 금붕어는 어항 속에 들어가야 살 수 있다고 생각하셨을까, 정확히 금붕어를 물이 담긴 어항 속으로 넣어주는 미로를 찾았다. 맨 뒷장의 “모범답안”은 그게 아니었다. 금붕어가 어항에게 문전박대를 당하는 모습이 답이었던 것이다.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면 요즘처럼 아무리 습한 날씨여도 땀은 안 흘리지 않을까? 아니더라. 10분을 걷더라도, 1시간을 뛰어도, 심지어 똑같은 버스를 타고 똑같은 정류장에 내려 마침 그 때 바뀌는 초록불 신호에 횡단보도를 건너려 10초를 뛰어도 마무리는 같다. 바람에 식은 땀이 피부에 닿아 차가운 건 매한가지다. 꽤 차갑다는 느낌이 든다. 얼른 집에 돌아와 수도꼭지를 최대한 오른쪽으로 젖혀 샤워를 할 때도 차가운 것 역시 마찬가지다. 마무리는 생각하기 나름이다. 벽에 좀 덜 부딪히고 말고의 차이일 뿐. 기어코 정답을 찾아내려 여기저기 톺아보니 상처투성이다. 피브리노겐이 버텨내는 한 나무도막을 미로 조각으로 만들면 돼. 미궁을 미로로 만드는 우리는 모두 스스로의 정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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