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치마, 서사무엘, 카더가든

내가 좋아하는 음악가들

by seri


나는 새로운 노래를 잘 듣지 않는다. 그 대신, 내 취향이라고 경험적으로 검증된 노래를 질릴 때까지 듣는다. 잠깐 질린 것 같으면 다른 걸 들었다가, 다시 돌아와서 또 죽도록 반복한다. 그렇게 무한 반복해서 돌아오는 내 취향은 이 세 음악가로 대표할 수 있다. 검정치마, 서사무엘, 카더가든.


이들의 음악에 공통점이 있나 생각해봤는데 글쎄, 아싸 중의 인싸, 마이너 중의 메이저라는 인지도? 이름이 네 글자다? 각자의 개성이 뚜렷하다? 잘 모르겠다. 그래서 그냥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소개하고 각 음악가의 전체적인 느낌을 말해보려 한다.




검정치마 The Black Skirts

검정치마 노래를 어떻게 듣게 됐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2016년 겨울부터 지금까지 나는 조휴일보다 더 검정치마 노래를 들었을지도 모른다. 엄.청.많.이 들었다. 특히 'Don't you worry baby(I'm only swimming)' 앨범의 노래를 좋아한다.

https://youtu.be/33tF2FBDJGI

Love Shine - The Black Skirts


이 앨범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동영상 썸네일이자 앨범 자켓사진처럼 잔잔한 수면 위를 떠다니는 기분이 든다. 그 어떤 지저분한 잡념과 욕심과 질투 없이 무색에 가까운 바다 한가운데, 치열한 근심과 고민 끝에 겁 없이 항해를 떠난 '나'가 있다.


2016년 겨울, 난생처음 혼자 여행을 떠났다. 대학생이 되고 경험한 사회의 냉혹함(ㅋㅋ)을 겪곤 멘탈이 터져서 3박 4일 동안 순천을 갔다 왔다. 알바하던 카페에서 히스테릭한 사장의 가스라이팅을 견디다 못해 탈주한 직후라 그 사장과 비슷한 실루엣만 봐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안절부절못했다.


순천 갈대밭부터 시작해 근처 해변까지 쉼 없이 걸었다. 겨울이라 갈대밭엔 사람도, 갈대도 없었다. 을씨년스러웠지만 내가 듣고 있던 검정치마 노래랑 잘 어울린다고 느꼈다. 건물이나 사람들처럼 눈에 걸리적거리는 것 하나 없는 뿌연 회색빛 겨울 바닷가, 그리고 차분한 그 분위기에 잘 어우러지는 노래는 내 불안한 마음에 안정을 줬다.



검정치마 노래는 화려하거나 웅장하기보단, 단순하다. 앞에 얘기한 앨범뿐만 아니라 그 후에 나온 노래들도 뭔가 깊은 생각이나 의미나 감정이 들어있다기보단 담백하다는 느낌을 준다. 어떤 건 가사도 제목도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무 말 같다. 시원시원한 노래도 있지만, 보컬 조휴일 특유의 '물 흘러가는 듯한' 힘없는 목소리 덕분에 노래가 부담스럽지 않다. 이 단순함은 노래에 내 감정이나 상황, 추억과 기억을 쉽게 집어넣을 수 있게 한다. 내 감정이나 기억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아주 많은, 그러니까 노래를 들었을 때의 특정한 기억과 감흥이 아주 잘 떠오르는 노래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이 '새벽 감성'에 검정치마 노래를 찾는 것도 이런 맥락에 있지 않을까.




서사무엘 Samuel Seo

서사무엘의 노래는 한창 힙합에 빠져 있을 때 접했다. 천재노창(지금은 그냥노창) 노래의 몽환적인 느낌에 빠졌을 때, 알고리즘 추천으로 서사무엘 노래를 접했는데 천재노창의 순한 맛이라는 느낌이 들어 종종 들었다. 그땐 서사무엘이 래퍼인 줄 알았는데, 지금은 그냥 서사무엘이다.

https://youtu.be/0LCT1HU0KPI

B L U E - Samuel Seo


굳~~이 서사무엘 노래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나는 'EGO EXPAND (100%)' 앨범의 타이틀곡인 'B L U E'를 꼽겠다. 자아를 100% 확장하겠다는 굳은 의지가 앨범 이름부터 느껴지는데, 나는 아무래도 서사무엘의 자아가 취향에 맞는 것 같다.


몇 년 전 노래도, 올해 발매된 노래도 그냥 섞어 들으면 언제 발매됐는지 모를 정도로 서사무엘 노래들은 시간 밖에 있다. 시간에 따른 촌스러움과 세련됨의 맥락 밖에서 존재하는 느낌이다. 워낙 독특해서 그런지 시간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것 같다. 아무리 자기만의 개성이 있다 하더라도 시대의 유행이나 트렌드를 따라가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을 텐데, 그런 것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사람이라는 느낌이 든다.


한동안 서사무엘을 잊고 지내다가 지인의 SNS에서 서사무엘의 'Let us talk' 링크를 보고, 듣고, 그 감성에 푹 빠져 2020년 상반기엔 거의 서사무엘 노래만 들었다. 봄에서 여름 사이, 인턴으로 일하던 회사에서 퇴근 후 따릉이를 탈 때 서사무엘의 노래를 들으며 칠 Chill 했다. 한강공원에 적당히 북적이는 사람들,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온몸으로 맞는 시원한 바람, 그리고 우중충한 하늘, 혹은 빨갛게 져가는 태양과 서사무엘의 노래는 잘 어울렸다. 회사에서 상사에게 (또) 가스라이팅 당하고 자책하는 마음을 날려버리는 시간이었달까...



서사무엘의 노래는 그냥 서사무엘 같다. 뭐라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서사무엘의 외모도, 스타일도, 타투도, 노래도, 인터뷰도 서사무엘의 자아가 강하게 느껴진다. 심지어 활동명과 본명이 같다. 흔히 '색깔'이라고 표현하는 음악가의 특성을 가장 잘 표현해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고여있는 내 음악 풀 안에서 생각했을 때 말이다.) 케이팝을 좋아하는 친구들에게 서사무엘 노래를 들려줬을 때 보였던 반응으로 추측컨대, 서사무엘 노래는 대중적인 사람들에겐 약간 홍대 상수 연희동 힙쟁이 느낌이 나는 것 같다. 전곡을 다 들어본 입장에선 눈물을 머금고 '힙쟁이가 아니라 서사무엘이라고!'라고 외치고 싶으나 그마저도 고여있는 힙쟁이 문화의 일부 같아서 입을 다물어버린다. 아, 그리고 신기하게도 서사무엘 유튜브 댓글엔 외국인이 많다. 서사무엘 음악의 색깔이 해외에서 선호하는 걸지도 모른다.




카더가든 Car, the Garden

차정원. 그의 노래 역시 힙합을 듣다 알게 됐다. 아마 로꼬, 버벌진트, 빈지노 등이 왕성히 활동하던 때에 접한 것으로 생각된다. 목소리가 매력적이라고 생각했고, 내가 알던 카더가든의 노래들은 대부분 메이슨 더 소울(Mason the Soul) 시절의 노래였다. 지금 그의 이름은 카더가든(Car, the Garden)이다.

https://youtu.be/XtIi8zZtbSo

의연한 악수(Live) - Car, the Garden


패션 잡지로 알려진 GQ에서 유튜브 콘텐츠로 만든 '오래된 정원'을 통해 카더가든을 오랜만에 봤는데, "카더가든 원래 X신캐였냐 진짜 개웃김 ㅋㅋㅋㅋ"이라는 댓글에 백번 공감했다. 내가 알던 카더가든의 노래는 되게 감미로웠던 것 같은데 유튜브 콘텐츠에서 나온 인간 차정원은 완전 '개그캐' 그 자체였다. 콘텐츠 말미에 배경음악으로 깔리는 카더가든의 노래를 듣다가 몇 주째 카더가든 전곡 재생을 반복하고 있다.


검정치마 노래가 단순하다면, 카더가든 노래는 촘촘하다. 검정치마 노래를 들을 땐 내 감정과 상황을 노래에 대입할 수 있었다면, 카더가든 노래를 들을 땐 차정원이 만들어놓은 감성을 따라갈 수밖에 없는 느낌이다. 조휴일의 물 같은 목소리를 좋아하지만, 차정원의 홀리는 목소리가 매력적인 건 부정할 수 없다.

글에 첨부한 동영상은 음원이 아니라 콘서트 라이브 영상이다. 사람들로부터 음원보다 라이브가 더 좋은 음악가라는 평을 많이 받고, 나 또한 그렇다고 생각한다. 라이브와 음원의 갭 차이가 되게 적은 것 같다.


취준 하느라 매일매일 죄 같은 삶을 살고 있는데, 카더가든 노래를 듣다 보면 다른 생각 없이 그냥 노래 안에 들어가 있을 수 있어 좋다. 목소리가 정말 좋아서 그냥 그 소리를 듣다 보면 잠에 들기도 하고, 슬픈 기분이 사라지기도 한다.



카더가든의 노래는 노래 그 자체에 잠길 수 있다는 점이 좋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카더가든 노래에 추억이나 감정을 대입하고 있을 수 있지만, 나는 카더가든 노래를 들으며 그가 만들어놓은 감성 그 자체에 빠진다. 개인적으로 노래를 노래 자체로 듣기엔 다른 기억이나 감정을 노래에 집어넣고 들을 때마다 그걸 끄집어내는 과정을 거치지 않는 게 좋다고 느낀다. 난 좀 과몰입하는 편이라 노래에 묻은 내 개인적인 추억을 회상하기 시작하면 노래 자체를 즐기지 못하고 급기야 휴식이 생각과 고민의 시간으로 바뀌기도 한다. 지금은 충분히 고민의 굴레에 있기 때문에, 노래를 들으며 현실감각을 잊는 게 좋은지도 모르겠다.





이 글을 쓰면서 느낀 게 두 가지 있다.

첫째, 힘들 때 음악에 꽂히는구나. 둘째, 음악 취향도 중요하구나.


글에는 일부만 썼지만, 각 음악가에 빠지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내가 현실의 삶에서 힘들고 지칠 때 그 노래를 듣고 기분전환을 했기 때문이다. 대중매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수와 어떤 사연을 가진 팬이 만나는 장면에서, 그 팬은 이러이러한 상황에서 어떤 노래가 힘이 됐다는 말을 한다. 제삼자의 입장에서 그 장면을 봤을 땐, 그저 상투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했는데 당사자의 입장으로 생각해보니 실제로 그렇다는 걸 느꼈다.


그리고, 글을 쓰면서 '아, 내가 이 세 사람의 노래를 정말 좋아하는구나'라고 몇 번이나 생각했다. 나쁜 말 하나 없이 그저 이러이러해서 너무 좋아용! 하는 문장들과 논리보다 감각과 느낌에 치중한 설명들. 물론 음악에 관해 너~무 아는 게 없어서 논리적으로 조목조목 따져 설명할 수 없었지만, 그냥 글 자체가 효과적인 영업 글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에, 음악 취향이 맞지 않으면 서로 공감할 수 있는 범위가 좁아지겠다는 걸 느꼈다. 케이팝을 좋아하는 친구들과 서사무엘을 좋아하는 내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처럼.



어쨌든, 나는 검정치마와 서사무엘과 카더가든의 노래를 좋아한다.

개중엔 내 가치관에 반하는 노랫말도 있고, 언제 어떤 일이 터져서 뒷목 잡으며 이 게시글을 삭제하는 날이 올 지 모르겠지만, 지금 내 노래 취향은 이렇다. 중학생 때 에픽하이로 시작해 비스트와 인피니트를 거쳐 방탄소년단까지 덕질한 경험을 추가해보면 내 노래 취향이 그렇게 마이너 하진 않다. 앞서 말했듯, 마이너 중에 메이저 한 사람들이니까 어떻게 보면 또 메이저에 속할 수도 있다. (구구절절..)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냐면! 세 사람의 노래를 들어봐 줬으면 좋겠다는 거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들었겠지만! 또 들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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