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되고 싶다. 될 테다.
나는 꿈이 많다. 어렸을 때부터 많았다.
초등학생 때는 하루에 하나씩, 일곱 개의 직업을 갖고자 했다. 월요일은 의사, 화요일은 선생님, 수요일은 작가, 목요일은 과학자, 금요일은 동물원 사육사, 토요일은 외교관, 일요일은 화가. 병을 고치는 사람도, 가르치는 사람도, 창작하는 사람도, 연구하는 사람도, 소통하는 사람도 되고 싶었다.
현실적으로 1일마다 각기 다른 직업을 갖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안 후 하나를 정했지만,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매 해, 매 순간 바뀌는 관심사는 내 장래 희망으로 이어졌다.
현실적인 사고를 하기 시작한 때부터 내 장래희망은 하나로 정해졌다. 남들이 인정해주는 직업을 갖고 싶었다. 어른들이 내게 기대하는 바를 충족시키기 위한 직업을 내걸었다.
당시 내가 공부를, 특히 영어를 잘한다고 생각했던 선생님들은 나를 외고에 보내려 했다. 그래서 나는 외교관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외고에 진학한 후, 나는 살 길을 달리 찾아야 했다. 원어민 급으로 영어를 잘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내게 기대를 거는 사람은 없었다. 나를 사랑하는 부모님과 가족들만이 전부였다.
껍데기뿐인 장래희망을 버리고 나는 남들과 다를 수 있는 길을 찾았다.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다녔고, 자리에 앉아 공부하는 대신 바깥에 나가 활동하는 걸 원했다.
닭이 먼전지 달걀이 먼전지 모르겠지만, 나는 영화감독을 장래희망으로 정했고, 연극영화학과에 진학했다. 사실 영화감독이 되겠다는 다짐보단, 자리에 앉아서 공부하는 것보다 바깥에 나가 무언가 창작하는 재미를 얻고자 했다. 외고를 다니며 사귄 친구들과 배운 것들은 귀중했지만, 경쟁과 줄 세우기에 지쳤고, 그렇게 사는 건 불행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학교 내내 원 없이 바깥에 나가 무언갈 만들어냈다. 경쟁보다 협력을 하고, 정해진 답을 찾기보다 독특한 걸 창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내 속은 복잡했다. 고등학교 때 억눌렸던 자유에 대한 갈망인지, 진짜로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인지 고민이 됐다. 대학에 소속돼있는 시간은 4년뿐이었고, 그 시간 동안 당장 무언갈 정하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았다.
나는 선택할 수 없었다. 하고 싶은 건 많지만, 능력이 없다고 생각했고, 두려웠고, 늦었다고 생각했다.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고민하는 덴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됐다. 정신과 육체가 힘들었고, 편안하고 싶었다. 그래서 진짜 내 선택을 하는 대신, 남들이라면 선택할법한 것을 택했다. 결론적으로 내 선택은 맞지만!
내 위치에서 현실적으로 가장 가까운 것, 내가 한 것들에서 뽑아낼 수 있는 가장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일. 대학 졸업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20대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그걸 택해서 빨리 준비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슬프게도 그 과정에서, 그 일에 대한 혐오감과 을 느꼈다.
열정이나 목적 없이 일을 하는 것은 어렵다는 걸 처음 느꼈다. 어릴 때야 혼자 하는 공부가 전부였지만, 사회의 일원으로 일하게 될 땐 사람들과, 일과 얽혀야 했다. 그저 기계처럼 적당히 타협하며 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내 가치관과 전혀 다른 업무를 해결해야 할 때, 나는 그 어떤 열정도 생기지 않았고, 오히려 나를 찍어 누르며 내 정신을 더럽히는 상사에게 혐오감이 생겼다. 반항심, 스트레스, 좌절감, 자기혐오만 쌓여 갔다. 남에게 인정받는 것보다 내가 좋은 일, 내 가치관에 맞는 일을 하며 행복감을 느끼고 싶었다. 상사의 가스라이팅을 참고 이겨낼 만큼 그 일을 사랑하지도 않았다.
몇 개월 간 고민 끝에, 새로운 일들을 하고자 마음먹었다. 언제 어떤 계기로 다시 튕겨나갈지 모른다. 하지만 고민과 도전을 시작하는 과정에서 느낀 것들은 지금껏 나를 옭아매고 힘들게 했던 족쇄를 하나씩 녹여갔다.
부모님은 내게 '응당 20대라면 해야 할 고민을 하고 있다'며 내 선택을 존중했고, 친구들은 용기 있다며 잘 될 거라고 나를 응원했다. 고마운 그 마음들과, 내 안에서 생긴 열정과 목표의식은 내게 앞으로의 희망을 심어줬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지난 지금, 내 장래희망이 무어냐 물으면, 초등학생 때로 다시 돌아간 것처럼 여러 일들을 나열할 테다.
나는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만드는 기획 개발자도, 제주도 바닷가의 카페 사장도, 취미로 혹은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영상을 만드는 제작자도, 여러 번 다녀온 순례길을 바탕으로 글을 써 책을 낸 작가도, 삶의 방향성을 찾고자 하는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선생도 되고 싶다.
열정과 목적이 충만한, 내 가치관을, 내 정체성을 지킬 수 있는 능동적인 삶. 초등학생의 패기라고 생각했던 그 장래희망들은 어쩌면 내 성질, 성격, 자아를 가장 잘 알고 있던 때의 정직함 아니었을까.
이 모든 걸 20대에 이룰 순 없다. 100세 넘어서도 사는데. 천천히 하나씩 이뤄가다 보면 일주일에 하루씩 다른 일을 하는 날이 올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