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터지 스토리에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에너지나 파워의 원천이 특정 사물에 집중되어 있다는 설정이 많이 나온다. 현자의 돌, 절대 반지, 성배, 또는 엑스칼리버 등이 그것이다. 이것들은 작고 가벼워서 누가 소유하느냐를 두고 치열한 다툼이 벌어진다. 온 세상을 지배하는 절대반지는 어마어마한 위력과는 달리 난쟁이 프로도가 가지고 다니며, 꼬마 도깨비 골룸은 끊임없이 그것을 노린다.
작고 휴대할 수 있는 사물 하나가 모든 것을 지배한다는 상상은 고대부터 끊기지 않아 왔다. 우리의 조상들은 어떻게 이런 존재를 상상하게 되었을까? 이것은 디지털 시대 이전에는 기술적으로 상상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피라밋이나 만리장성의 건설은 물론, 19세기의 기계 시대에조차, 단 하나의 부품이 모든 것을 작동시키는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디지털 이전 시대에는 항상 커다란 현상에는 커다란 원인이 있어야 했다. 물론 기어의 원리는 일찍부터 알려져 있었고 따라서 작은 힘을 증폭시키는 기술은 꽤 발달해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힘을 몇 배 정도 증폭시키는 것 뿐, 단 하나의 버튼을 눌러 전체 시스템의 복잡한 운동을 작동시키는 것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 근세 유럽이나 일본에 등장한 오토마타, 즉 자동 인형이나 정교한 태엽 시계 등이 소수의 예외가 될 것이다.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어떻게 반지, 칼, 돌멩이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아이디어가 나타났을까? 그런 상상을 촉발한 현실 속의 어떤 단서가 있었던 것일까?
이 질문이 흥미로운 이유는 디지털 기술을 보유한 현대인들에게는 이러한 현상이 오히려 익숙하기 때문이다. 가장 친근한 예가 스마트폰의 유심이다. 스마트폰의 복잡한 기계적 장치와는 전혀 무관하게 한 조각의 유심을 넣고 뺌에 따라, 스마트폰은 자신의 정체성을 순식간에 바꿔버린다. 거창한 예로는 미국 대통령에게 주어지는 핵 버튼이 있다. 단 하나의 버튼으로 거대한 핵 미사일 공격을 작동시킬 수 있다.
"거대한 시스템을 움직이는 단 하나의 요소"라는 컨셉은 마이크로 전자기술이 지배하는 현대에는 그렇게 이상하거나 신비로운 일이 아니다. 현대의 시스템은 명령을 읽고 판독한 후 그에 따라 작동하도록 프로그램되어 있기 때문에 결정적 작동 장치를, 손에 쥘 수 있는 작은 패키지로 집약할 수 있다. 절대반지와 엑스칼리버는 현대적인 디지털 기술 시대라면 오히려 그럴듯한 상상이다.
혹자는 이것이야말로 고대 문명이 현대 디지털 문명을 능가하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증거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신화와 전설에 등장하는 수많은 마법이 사실은 고대 기술의 결과라는 것이다. 잘 믿기지는 않지만, 흥미로운 주장이다. 그러나 현대 기술과 비슷해 보인다고 해서 고대인의 상상을 항상, 사라진 고대 문명 가설로 돌려야만 할까? 손오공의 근두운이 고대 중국이나 인도에 드론 비행 기술이 있었다는 증거라고 여겨야만 할까?
고대 문명이 그렇게 높은 수준의 과학기술을 달성했다가 그렇게 깡그리 잊혀진다는 것을 설명하기는 힘들다. 따라서 이러한 핵심 부품에 대한 상상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설명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특정한 사람이나 사물에 특별한 지위를 부여함으로써 갑자기 질서가 형성되는 경우가 있다. 흩어져 있는 집단의 누군가를 기준으로 정하고 그를 원점으로 좌우로 정열을 시키면 대열이 들어맞는다. 이것은 철새들의 이동에서도 나타난다. 철새들이 한 마리의 새를 꼭지점으로 해서 시옷자 형상을 하고 날아간다. 그런데 조류학자들의 설명을 들어보면 꼭지점의 새가 항상 무리의 우두머리는 아니라고 한다. 어떤 경우에는 임의의 개체가 돌아가면서 그 역할을 담당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어떤 개체를 기준점으로 지정하는 것이지, 특정 개체의 능력이나 영향력이 아니다.
인간은 권력과 질서라는 현상에서 예전부터 이런 신비를 체험해 왔을 것이다. 누군가를 왕으로 정하고 그에게 결정권을 부여함으로써 갑자기 집단의 결단력이 높아지는 현상이 발생한다. 뛰어난 사람을 잘 골랐기 때문이 아니다. 누구이든 간에 한 사람에게 권력을 집중해 주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출발인 그리스 민주정에서 주요한 군사 및 행정의 리더들은 추첨에 의해 선발되었다.
권력의 근원은 전체의 중심으로 지정받는다는 사실 자체에서 나온다. 개인의 특성과 리더십은 이를 더욱 강화하고 보완할 뿐이다. 그러나 이 사실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수평적이었고 모든 것이 대등했던 원시 사회에 등장한 권위는 충격적이고 마법과 같은 현상이었을 것이다. 한 존재가 다른 모든 존재에 비해 빛나게 되고, 그로 인해 생기는 모든 효과가 그의 업적으로 인지된다.
이것은 사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척도의 원기가 되는 1미터의 백금자... 이 자는 수많은 사물 중의 하나일 뿐이지만, 그것이 1미터라고 규정됨으로써 이제 만물은 그에게 와서 측정되고 자신의 길이를 부여받는다. 이것은 원기가 가지고 있는 다른 속성들 - 그것이 백금이든, 단단하든, 광택이 나든 - 과는 아무 상관 없다. 김춘수의 시처럼 그것은 1미터라고 불리워짐으로써 모든 길이의 표준이 되었다.
고대 세계에서 단 하나의 사물이 모든 시스템을 지배한다는 상상은, 고대인의 신비로운 디지털 기술이 아니라 시스템의 표준이 형성되어가는 경험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누군가가 왕이 되고, 무엇인가가 척도의 원기가 됨으로써 질서가 생기는 현상이 고대인들에게는 그 중심적 존재의 힘인 것처럼 여겨졌다. 그래서 절대반지와 엑스칼리버의 신화가 탄생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민주주의가 자리잡았다는 현대에도 아직 이러한 고대적 사고방식은 사라지지 않았다. 우리는 아직도 리더의 힘, 리더의 능력을 개인에게 귀속시키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민주주의 국가라고 해도 한 국가 원수의 가족, 즉 배우자, 형제자매, 자녀에게 권력이 이양되는 현상은 의외로 빈번하다. 혈통이든 유전자든, 특별한 리더의 자질이 존재하고 계승된다는 관념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시스템의 질서를 특정 존재나 사물의 권능으로 이해하는 오랜 믿음을 극복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 1미터는 그것이 위대해서 척도가 된 것이 아니라, 척도로 지명되었기 때문에 모든 측정을 지배하게 된 것임을 되새겨야 한다. 절대 반지의 권능은 반지라는 개별 사물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블럭체인은 화폐 시스템의 권위를 분산화시키려는 시도이다. 권위가 모두에게 분산되고, 그럼으로써 모두가 모두에 대한 권위의 원천이 되는 시스템이 앞으로 자리잡게 될지도 모른다. 프랑스 인권 선언으로 표명된 인간평등론은 아마도 그러한 분산화 시스템이 완성될 때, 진정으로 구현되는 것이리라. 시스템이 특정한 사물에 기준점을 구하는 한, 어느새 수직적 질서가 생기고 우리는 권위에 의존하는 경향에 끌려간다. 권위와 평등 간의 긴 줄다리기는 아직도 한창 진행 중이다. 문득 <반지의 제왕>에서 절대반지가 파괴되는 결말은 권위의 분산화를 상징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