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차원 높아진 약육강식
스팀 펑크 장르의 인기작인 <견인도시 연대기>에는 맹렬한 속도로 이동하는 도시, 런던이 등장한다. 때는 환경오염, 핵전쟁 등으로 현대 문명이 완전히 파괴되어버리고 난 뒤의 암울한 미래다. 다시 일어선 후손은 증기기관 시대의 기술로 시작해야만 했다. 그들은 과거 첨단 문명의 흔적들을 발견하지만 이용은커녕 이해할 수도 없다. 컴팩트 디스크를 아름다운 빛이 감도는 신기한 장식품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 거추장스러운 시대의 도시들은 우리가 꿈도 못꾸는 일을 한다. 이동하는 것이다. 거대한 증기기관과 바퀴를 이용하여 런던이 움직일 수 있을까? 실제로 강력한 강철구조물과 캐터필라로 구성된 유목 도시의 아이디어가 제안된 적이 있다.
왜 도시를 이동시키려 할까. 도시는 특정 장소에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에 환경 변화로 인해 쇠퇴하거나 황폐해지는 경우가 많다. 소돔과 고모라, 바빌론은 물론 오늘날의 디트로이트 쇠퇴까지 이러한 흥망성쇠는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만약 도시가 스스로 이동할 수 있다면...? 자연 재해나 교역로의 변경, 지하자원의 고갈 등 무수한 환경 변화에 대응하여 최적지로 이동할 수 있지 않을까? <견인도시 연대기>에서 도시들이 이동하게 된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다. 문명 붕괴 이후 지구는 지진, 화산폭발, 해일, 산사태 등 예측불가능한 자연재해로 뒤덮였다. 도시들은 이러한 위협을 피해가기 위해 이동 기술을 개발하게 된 것이다.
한 곳에 머물러 있기만 한 도시들도 서로 경쟁을 하는데, 돌아다니게 되면 어떨까? 환경재난을 피하기 우한 도피성 이동이 차츰 적극적인 이동, 특히 다른 도시를 포식하기 위한 이동으로 바뀌는 것은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결과다. 견인 도시들은 대지를 부지런히 다니다가 소도시, 마을 등을 만나면 – 이들 중 상당수가 역시 돌아다닌다 – 자신의 거대한 입을 통해 집어 삼킨다.
견인도시는 문자 그대로 다른 도시를 씹어먹지는 않는다. 작은 도시를 포획하여 자기 내부 공간으로 끌어들이고 원료와 자원을 흡수하고 거주민들을 포섭한다. 이동하는 도시는 농경이나 목축과 같은 산업을 갖지 못하므로 항상 주변 도시를 먹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지속불가능한 시스템이다. 이들은 끊임없이 다른 도시를 먹어치워야 한다.
견인도시는 식민지를 확장하던 제국주의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한 국가가 다른 국가를 정복하고 지배하는 시대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오늘날 식민 통치라는 물리적 지배는 사라졌을지 모르지만, 경제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점유하고 이를 통해 주변 국가를 착취하는 현상은 사라지지 않았다.
대표적인 예가 근린궁핍화 정책이다. 영국 케임브리지의 경제학자 조앤 로빈슨은 한 나라가 자국의 이익을 위해 타국을 희생시키는 정책을 펴는 현상을 주목했다. 그 중 한가지 방법이 자국 통화가치를 하락시켜 수출경쟁력을 높이는 것이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 환율을 조작하는 것은, 폭격기와 미사일로 적을 공격하는 것 못지 않은 공격 행위이다.
<견인도시 연대기>에는 런던이 한 소도시를 포획한 후 처리하는 과정이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내장갑판이라는 곳에서 해체가 이루어지는데 우선 도시의 갑판, 골격을 잘라내고 그 안의 모든 요소들을 종류별로 분리하여 처리한다. 철골은 용광로에 녹여 재활용하고, 벽돌과 기와, 목재, 소금, 석탄 등은 도시의 중심부로 보낸다. 더 나아가 가구를 비롯한 소소한 물건들도 가려져 내부로 옮겨지는데, 특히 고물상에서 구해낸 몇 안되는 골동품들은 박물관으로 보내질 것이다.
이 광경은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한 장면을 떠오르게 한다. 나치는 유대인들을 게토에서 수용소로 옮길 때, 가방은 별도의 열차로 옮길 테니 역에 두고 가라고 한다. 가방을 되찾을 생각으로 유대인들은 분필이나 기타 필기구로 눈에 잘 띄게끔 가방에 온갖 표시를 한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빈 몸으로 수용소에 갖히고 대부분은 개스실로 가게 될 것이며, 그들의 짐은, 주로 의류인데, 전시경제 체제 하의 중고 의류 또는 군용 피복으로 요긴하게 활용되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개스실 학살 이후 유대인으로 구성된 특수 직무반이 투입되어 화장하기 전에 머리카락, 금니 등 값이 나갈만한 것을 모두 수거하였다고 한다. 한 민족이 다른 한 민족을 잡아 먹으면서 이토록 악날한 자원 재처리 과정을 수행한 것이다.
인간은 오늘날 생태계 최상위에 군림하며 다른 종의 먹잇감이 되지 않는다. (물론 죽은 뒤 사체가 미생물에 분해되는 것은 제외하고 그렇다.) 그러나 개인으로서의 인간을 포식하는 또 다른 존재가 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집단이다. 친족이든, 계급이든, 국가든 집단으로서의 인간이 개인 또는 보다 힘없는 집단을 약탈하고 착취하고 포식해 왔다. 이런 면에서 생태계 최상위에는 인간이 아니라, 인간이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종, 즉 인간 집단이 존재하고 있다.
도시를 잡아먹는 도시의 이야기는 개체를 소비하고 소화하고 재활용하는 집단에 대한, 끝없는 이야기의 한 변주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