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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rim Park Mar 20. 2020

#25. Backpack Honeymoon

Day 24 -> 스페인 Pamplona_산티아고 순례길 Day 3

가장 약한 곳부터 상처 입는다.

단지 3일을 걸었지만 내 몸 어느 곳이 가장 약한지, 어느 곳이 가장 힘들어하고 있는지 보이기 시작했다. 왼쪽 새끼발가락 전체에 잡힌 물집, 배낭을 멜 때마다 스쳐서 까진 오른쪽 어깨, 유난히 무리가 가는 오른쪽 목 뒷덜미, 물집이 잡힌 곳은 예전에 국토대장정 할 때 배운 데로 바늘에 실을 꿰어 터뜨렸다. 이렇게 실을 꿰어 놓으면 피부 표면에 구멍이 생겨 물이 고이지 않아 물집이 같은 자리에 다시 잡히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오늘도 어제와 같이 6시 반쯤에 걷기 시작하여 허기가 질 때까지 한참을 걸었다. 8시쯤 경치가 좋은 곳에 주저앉아 바게트에 파테를 발라 먹었다. 파테는 고기나 생선을 곱게 갈아 빵에 발라 먹는 것으로 가격도 싸고 다양한 맛이 있어서 아침식사로 좋았다. 식사 준비에 앞서, 열기로 후끈한 발을 말리기 위해 신발과 양발을 벗었다. 오른쪽 발가락에 핏자국이 보인다. 자세히 보니 네 번째 발가락 발톱이 세 번째 발가락을 찔러서 살을 후벼 파고 있었다. 다른 곳의 고통 때문에 느껴지지도 않았네. 가장 약한 곳부터 뭉개지고 으깨지면서 굳은살이 생기고 단단해지면, 하루 30km쯤 가뿐하게 걸을 수 있는 날도 오겠지? 지금은 많이 고통스럽지만..

왜인지 학창 시절 친구들과 감정싸움을 했던 것이 생각난다. 지금 생각하면 유치하지만, 여학생 때는 남녀 사이에 버금가는 질투가 존재한다. 내가 좋아하는 친구가 다른 애랑 더 친하면 독점욕에 속상한 마음이 들어 눈물도 흘리고 화도 났었던 것 같다. 우정이나 사랑이나 그때는 다 비슷한 선에 있던 감정들이었다. 그렇게 가장 연약했던 마음이 점점 세월이 지나면서 뭉개지고 으깨지고 단단해져서, 웬만한 상처에는 끄떡없다. 가끔 강한 펀치가 들어와서 정신을 못 차릴 때도 있지만. 어쨌든, 반복되다 보면 나중에는 같은 일이 아무렇지 않아지고 누군가 들쑤셔도 따끔할 뿐이지 살갗이 다 벗겨지는 아픔은 느껴지지 않는다. 문제는 그 살갗 속 속은 여전히 연약하다는 거지만. 걷다 보니 별 잡생각이 다 들다가도 아무 생각도 안 나고 그렇다.

                                              1유로 소시지, 내 발가락들, 풍경, 신기한 달팽이


오늘 도착한 곳은 왕좌의 게임에 나올법한 성벽에 둘러 쌓인 요새 같은 도시 Pamplona. 단과 성벽 입구에 진입 (정말 진입이라는 단어가 어울렸다)하면서 그 웅장함에 압도되었다. 과연, 중세시대 때 전쟁이 나도 난공불락이겠구나 싶었다.

미리 알아본 알베르게(8유로)에 집을 풀고, 빨래를 하고 도시 구경에 나섰다. 스페인에서 처음 맞이한 큰 도시, 너무 아름다웠다. 가우디의 나라, 작은 골목들과 소품, 인테리어 모든 것이 사랑스럽고 센스가 넘쳤다. 음식도 싸고 맛있고 (하루 종일 바게트로 때웠으니 멀 먹어도 맛있긴 했다..)! 사람 많아 보이는 곳에 들어가 타파스 2개를 고르고 맥주, 콜라르 시켜 배불리 먹었는데도 10유로였다. 스페인 너무 좋다!!

도시 내부, 저 타파스는 아직도 꿈에 나온다...냠냠

트레킹을 하며 일기를 매일 쓴다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사실할 말이 많은데 얼른 자고 싶은 마음에 얼렁뚱땅 넘어가기 일수다. 내일은 딴짓 덜하고 더 길게 써보려... 노력은 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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