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인들이 옷을 훌떡훌떡 벗는 건 도무지 적응이 안될 것 같다. 공간이 탁 트인 호스텔에서 머물면 온갖 사람을 다 만나게 된다. 딱 붙는 빤수만 입고 자는 남자는 그렇다 치자. 여자들도 마찬가지로 바지를 훌렁훌렁 벗고 티셔츠를 훌렁훌렁 벗는다. 마치 아무도 없다는 듯 옷을 편하게 갈아입는다. 왜 같은 여자인데 여자가 그러면 내가 더 민망한 기분이 들까. 걸을 때 사람들 옷차림도 가지각색이다. 어떤 사람들은 카라 셔츠를 입고, 어떤 사람은 거의 속옷으로 보이는 옷만 입고 하이킹을 하고, 어떤 사람은 과하게 장비를 차려 입고. 우리도 나름 가산 디지털단지 마리오 아웃렛에서 하이킹 복장을 사서 철저하게 무장을 하고 왔다. 레인코트, 기능성 티셔츠 및 바지, 트레킹 화 등등..
어떤 여자애가 우리와 속도가 비슷해서 계속 만나게 되었는데 우리는 그 애를 벗걸이라고 이름 붙였다. 걸을 때마다 딱 붙는 짧은 바지가 말려올라가 엉덩이가 그대로 보였기 때문에...
가끔은 바닥만 보고 가는 것도 좋았다. 너무 저렴하고 든든했던 식량들 :)
길을 걸으니 온갖 희한한 것들이 보인다. 슬러그며 달팽이며. 슬러그는 달팽이는 집이 없는, 몸체만 있는 생물체인데 무척 징그럽다. 달팽이가 집을 가져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느릿느릿 움직이는 슬러그와 달팽이는 우리, 길을 걷는 순례자들에게 의도치 않은 희생양이 된다. 비가 오면 길가로 나오는데 해가 나올 때 미처 수풀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길가에서 꿈지럭거리다 앞만 보며 걷는 순례자들에게 밟혀 죽는 것이다. 최대한 조심했지만... 나에게 희생을 다한 슬러그들이 몇 마리일지.. 배낭은 점점 무게를 잃어가는데 발은 점점 아파온다. 모든 순례자들이 사진을 찍는다는 조형물 앞에서 나도 한컷 찰칵.
종종 이런 트럭이 보이면 레몬 소다를 한 캔 씩 꼭 사 먹었지.
마지막 10km는 늘 앞의 것 보다 길게 느껴진다. 우리가 지쳐서인지 아니면 남은 길이 표시가 잘못되어 있는 건지. 희망고문하는 거 아냐??
어쨌든 오늘 8시간 정도 걸은 끝에 5€짜리 저렴한 알베르게에 도착했고 오늘의 행군은 끝이다. 아침부터 먹은 것이 라이스 크래커와 문어 통조림, 견과류 밖에 없었기에 바로 식당으로 가서 밥을 먹었다.
차곡차곡 모이는 스탬프들. 한적한 마을 풍경
평화로운 마을과 단 키만한 알로베라?!
불행히도 영어 메뉴가 없어서 아무거나 시켰다. 운이 좋았는지 모두 입맛에 맞는, 아주 맛있는 요리였다. 10.5€로 애피타이저, 메인, 디저트에 와인 한 병을 먹을 수 있다니. 스페인은 천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