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임신 31주 차지만 이제 와서 새삼 캐나다 의료시스템 + 코로나 바이러스 콤보를 겪은, 겪고 있는, 아직 끝나지 않은 저의 임신과 출산 과정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만약 몬트리올에 살고 계신 분이 읽고 있다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고, 한국이나 다른 곳에서 살고 계신 분들은 아 저긴 저렇게 사는구나 하고 좋은 점, 개선될 점 비교하며 봐주세요 :)
전 직장동료들과 마지막 송별회
석사과정 논문 디펜스만 남겨 두고 거의 끝날 무렵, 일하고 있던 회사도 미련 없이 그만두었다. 논문 쓰는 과정이 너무나 고통스러워 다른 숨 돌릴 구멍이 필요해서 얼떨결에 일하게 된 스타트업 회사였는데 생각보다 오래 6개월 정도를 풀타임 프리랜서로 일했다. 임신을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2019년에 프리랜서로 일한 것이 나중에 큰 도움이 될 줄 이때는 미처 몰랐다. (나중에 언급하겠지만 이 경험이 마터니티 베네핏에 해당이 돼서 정부에서 금전적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됐어요)
아이를 가지기 전, 단과 마지막으로 둘이서 하는 여행의 목적지를 킬리만자로 등반으로 정했지만, 아쉽게도 단의 일이 너무 바빠져서 못 가게 되었다. 섭섭함과 아쉬움을 뒤로하고,, 혼자 쿠바를 가기로 결정! 이때 아니면 언제가나 싶어서 혼자 약 10일 정도 다사다난하게 쿠바 배낭여행을 하고 돌아오자마자!!
원샷원킬로 아기가 생겼다!
우리 둘 다 워낙 건강체질이고 평소에 운동도 많이 하는 편이고 단은 술 담배를 전혀 안 해서 (저는 술을 좋아합니다..ㅎㅎ), 괜찮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나 빨리 찾아오다니,, 짜식ㅎㅎㅎ
사실 캐나다에 오자마자 바로 신청했던 패밀리 닥터가 3년이 지나서야 배정이 되어 12월 초에 처음으로 만나 상담을 했었다. 패밀리 닥터 신청할 때 8개월 후에 "연락"준다는 말에 헉했는데, 8개월이 지나도 연락은커녕 아무 소식 없길래 반쯤 포기하다 마침내 배정이 되었다. 배정된 병원도 집에서 도보로 15분 거리인 St Mary!
병원 카드를 만들어야 하니 적어도 1시간 전에는 생마리 병원에 도착해야 했다. 단과 병원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생각보다 늦게 도착해서 패밀리 닥터와 약속한 시간 40분 전에 병원에 도착했다. 패밀리 센터는 별채로 따로 있지만 병원 카드를 만들어야 해서 본관으로 가서 번호표를 뽑고 기다렸다. 다행히 사람이 많지 않아 병원 카드를 만드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았다. 지금까지 가본 병원이 생마리뿐이라 다른 병원도 같은 시스템인지는 모르겠으나, 병원에 처음 방문을 하면 메디컬 카드와 별개로 병원 카드를 꼭 만들고 진료가 있을 때마다 지참해야 한다. 이 병원 카드에는 내 나이, 생일, 배우자 이름, 주소, 담당의사 등등의 정보가 표기되어 있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병원 카드를 들고 패밀리 센터에 갔으나 우리 앞에 한 3명 정도가 줄 서 있었다. 약속 시간 20분 전이라 아슬아슬하지만 괜찮지 않을까 했는데... 접수를 하는 2명 중에 한 명이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는지 옆에 있는 사람에게 계속 도움을 요청해서 한 사람을 처리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결국 우리는 약속시간 10분이 넘어서야 접수를 할 수 있었다. 처음 전화가 와서 진료시간을 잡을 때 한 사람당 30분씩 붙은 시간으로 잡았는데, 접수를 할 때 확인하니 우리가 함께 왔다는 걸 몰랐고, 이미 10분이 늦어서 의사한테 노쇼를 통보했다고 했다. 다행히 의사가 아직 자리에 있어서 할당된 시간만큼은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대기실에 잠시 기다리니 정말 희귀하다는 다정하고 섬세한 젊은 여자 의사 선생님이 오셔서 함께 상담을 할지 따로 할지 물었다. 난 당연히 단과 같이 할 생각이었기에 망설임 없이 함께 상담을 받겠다고 했지만, 의사는 다시 한번 따로 받고 싶으면 따로 상담을 하라고 했다. 두 번씩이나 묻는 게 이상하게 느껴졌는데, 이유는 나중에 알게 되었다. 원래 한 사람당 30분이 배정되면 20분은 상담을 하고 10분은 간단한 검사를 진행한다. 우리는 이미 15분 정도를 까먹어서 시간을 봐가며 상담과 검사를 하겠다고 했다.
먼저 나부터 술, 담배, 운동, 마지막 백신, 가족력 등등 질문을 했다. 오래 해외 생활을 하다 보니 마지막으로 산부인과를 간 게 10년도 넘었다고 말하니 팝테스트 (자궁경부 검사)와 파상풍 백신 예약 진단서를 써주었다. 추가로 혹시 남편이 아닌 다른 사람과 성생활을 할 의도가 있거나, 다른 파트너가 있다면 그에 대비한 성병을 예방하는 백신을 맞는 것도 추천한다고 했다. 앗! 이래서 혼자 상담받을지 물어본 거구나ㅋㅋㅋㅋㅋ 그럴 의도가 전혀 없었기에 그건 필요 없다고 했지만 묘한 기분이었다. 단도 비슷한 질문을 받은 후에 (성병 관련 백신은 나한테만 물어봄) 알레르기 반응 테스트를 예약했다. 역시, 시스템에 들어오기는 어렵지만 들어오니 다 공짜에 케어 받는 느낌이라 좋구나ㅠㅠ
이때 상담 내용 중 하나가 우리의 임신 계획이었다. 만약 6개월 시도해도 소식이 없으면 내원해서 조치를 취하자는 의사. 이때까지 임신 그까짓 거 하고 생각하던 우리는 그 말을 듣고 아 그럴 수도 있구나 하고 조금 걱정되는 마음이 들었다. 의사가 써준 검사 예약 종이를 들고 리셉션에 가서 가능한 날짜를 예약하며 첫 번째 패밀리 닥터와의 상담이 무사히 끝났다. 그리고 다음 상담은 6개월 후! 패밀리 닥터와 상담을 잡고 싶다면 병원 사이트에서 가능하기는 하나, 우리가 임신 사실을 확인하고 상담을 잡으려고 보니 사이트가 다운돼서 예약을 할 수가 없었다. 느리고 답답하긴 하지만 전화로 예약하는 게 가장 확실한 것 같다.
아직 4주도 안됐을 시점에 급한 마음에 확인했는데 두 줄이 보여서 나도 놀람. 그리고 너무 비싼 배란테스터기..
임신이 빨리 될까 걱정한 마음이 무색하게 상담한 지 2주 정도 지나 임신테스트기에 두 줄이 나타났다:) 생리가 시계처럼 규칙적인 편이라 배란테스트기를 사서 아주 주도면밀 계획적으로 행동(?)을 하긴 했지만 이렇게 딱딱 들어맞다니ㅎㅎ임테기가 체 마르기도 전에 미리 사둔 배란테스트기를 중고장터에 올려 팔았다. 배란테스트기가 임테기보다도 비싸고 유통기한이 짧기에 얼른얼른ㅎㅎㅎ
단한테 바로 말할지, 아니면 곧 크리스마스인데 서프라이즈를 할지 고민하다가 입이 너무 근질거려서 바로 말했다. 단은 계속 리얼리? 리얼리? 하며 너무 행복해했다. 이 때도 코로나가 중국에서 슬금슬금 시작되고 있었지만, 아직까지는 먼 나라 남의 이야기였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