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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rim Park Feb 17. 2022

#31. Backpack Honeymoon

Santo Domingo  산티아고 순례길 Day 9

*2016년 7월 27일 일기

한국에서 온 수많은 순례자들
매일 길을 걷기 전에 손가락으로 날짜를 표시했는데, 지금 보니 어떻게 읽으라는 거지? 이건 9일째..라는 뜻이겠지?
시작부터 지친 표정
아직 해가 뜨지 않아 걷기 딱 좋다

어제 30km의 후유증이 아직도 가시지 않는다. 내 발은 55kg을 버티라고 만들어졌는데 10일간 약 70kg을 여댓시간씩 운반하려니 죽을 맛이다. 물집이 생길 수 있었던 모든 곳에 물집이 잡히고 이제 굳은살이 조금씩 잡혀 발가락은 아프지 않다. 하지만 다른 종류의 고통이 찾아왔다. 발바닥 전체가 약불에 지지듯 화끈거리고 한 발 한 발 내딛는 것이 곤욕스럽다. 다행히 오늘은 21km!


이제 얼굴이 익숙해진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얘기를 하며 정오쯤 마을에 도착했다. 


며칠째 탄산음료를 한 캔 씩 간식 겸 사 먹고 있는데 탄산을 마신 날은 꼭 도착 전에 요의를 느낀다. 남자들이야 뒤돌아서서 들판에 시원하게 볼일을 보면 되지만 여자들은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대부분 탁 트인 언덕길이나 포도밭을 걷는데 아무것도 우리를 가려주지 않는다. 사람들이 아무도 없을 때 서둘러 일을 치르거나 참는 수밖에.

아무리 둘러봐도 나를 가려 줄 곳 없네
포장도로가 나왔다는 것은,, 목적지가 코 앞! 일정이 많이 겹쳤던 영국인 알렉스.

오늘 점심은 거하게 먹기로 하고 La strada라는 곳에서 오늘의 메뉴(13€)를 시켰다. 스페인의 엔트리(애피타이저)는 정말 도무지 엔트리가 아니다. 거의 메인 디쉬 2개를 먹는 꼴. 디저트와 와인 한 병을 해치우니 배가 터질 것만 같았다. 마을을 좀 둘러보다가 낮잠을 자기로 하고 거리를 걸었다. 스페인의 도시들은 비슷하면서도 저마다 특색이 있었다. 사람들이나 먹는 음식도 조금씩 다르고. 이렇게 알아가는 게 걸으며 여행하는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겠지.


순례자를 위한 메뉴는 지금도 가끔 그립다. 저 가격에 저 양에, 햇살과 와인, 노곤함, 성취감.


스페인에도 자판기가 꽤 잘 발달되어 있다. 온갖 종류의 커피를 파는 자판기, 햄버거를 파는 자판기, 스파게티 파는 자판기, 그중 가장 신기했던 건 각종 성인용품을 파는 자판기!! 용도를 알 수 없는 여러 가지 용품들이 저곳에...나이제한도 없이 아무나 살 수 있던데.... 허허허 개방적인 나라야.


숙소로 돌아와 정신없이 4시간이나 잤다. 내 몸은 아직 회복하기 위해 많은 잠과 음식이 필요한지 그렇게 먹고도 일어나니 배고 고프다. 단은 아직 배가 부르다며 배고픈 나를 감탄스럽다는 듯이 본다. 마땅히 먹을 걸 못 찾아 자판기에서 1.4€를 넣고 파스타면과 소스를 샀다. 내가 먹은 가장 저렴한 스파게티는 만족스러웠다. 자판기 스파게티도 맛있다니.. 단이 면을 잘 익히고 요리해준 덕분이기도 하지만 :)

시장이 반찬. 자판기 파스타.


열심히 먹고 있는데 숙소에서 일하시는 아저씨가 오셔서 단한테 10시에 자기를 좀 보자고 한다. 무슨 일이지? 우리가 너무 냄새나나? 다른 순례자들보다 더럽나? 방귀를 너무 많이 뀌었나? 별 생각을 다하고 있는데.. 결론은 우리에게 빈 방을 주셨다! 신혼부부라는 걸 아시고 사람들이 없는, 족히 20명은 잘 수 있는 이 층 침대가 가득한 도미토리 2층 방을 주셨다. 산적 같은 아저씨가 무서운 얼굴로 단만 데리고 나갈 때는 너무 걱정되었는데, 와이프에게 서프라이즈 해주라고 혼자만 불러서 얘기를 하신 거였다. 아 이렇게 감동적일 수가.. 여행을 한지 이제 1달째, 우리가 받은 호의와 관심, 애정들이 정말 마음 따뜻하게 한다. 너무나도 행복한 한 달. 단과 함께 우리가 받은 만큼 나누자고 약속하며 오늘 하루도 끝!

5성 호텔이 부럽지 않았습니다
산타 도밍고. 사진을 정성껏 열심히 찍을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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