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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rim Park Feb 18. 2022

#32. Backpack Honeymoon

Belorado  산티아고 순례길 Day 10

*2016년 7월 28일 일기

오늘 시작은 어땠더라. 매일 낮잠을 자니 하루가 이틀처럼 느껴진다. 단 둘이서 사용한 도미토리는 정말 아늑했다. 다른 사람들 코 고는 소리를 들을 필요도 없고, 아침에 살금살금 방을 빠져나와 침낭을 개고 짐을 싸지 않아도 된다. 맞추어 놓은 알림 소리에 눈을 떠 불을 켜고 배낭을 싼다.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비닐 부스럭 거리는 소리를 내며. 오늘은 Belorado까지 24km. 오늘 6시 반에 걷기 시작했으니 한 시간에 4km, 늦어도 한시에는 도착하겠지? 어제 낮잠까지 11시간을 자고 오랜만에 예전처럼 많이 먹었더니 기운이 넘친다. 반면 단은 피곤한지 눈을 제대로 못 뜬다. 늘 같은 걸 먹고 같이 생활하는데 이렇게 컨디션이 다른 걸 보면 신기하다.


길을 걷는 도중 들리는 마을에는 꼭 하나둘씩 교회가 있다. 순례자 여권에 도장을 찍을 겸 잠시 쉬어갈 겸 들리는데 모든 교회가 참 아름답다. 인간의 믿음이 만들어낸 아름다움이 정말 감탄스럽다.

매일매일 걷는 단조로운 일상이 참 좋았다

일주일째 빨래를 못했더니 가방에 냄새나는 옷이 한 무더기라 오늘은 세탁기가 있는 알베르게를 구했다. 마침 수영장이 있는 곳이라 수영도! 알베르게마다 비용이 다른데 여기는 빨래 3.5€, 건조 3.5€로 조금 비싼 편이었다. 숙박비는 인당 8€! 갈수록 더 느끼지만 순례자 길을 걸으면 참 저렴하게 스페인 여행을 할 수 있는 것 같다. 하루에 20€-30€면 먹고 자는데 문제없다. 우리가 나름 부유한(?) 순례자인 걸 생각하면 더더욱.. 보통 하루에 10유로 안팎으로 해결하는 사람들이 많다.


일찍 도착한 편이라 수영장을 우리가 빌린 듯 시용할 수 있었다. 잔잔한 음악과 시원한 물, 뜨거운 햇빛. 아 좋다! 우리만큼 특별한 신혼여행을 보내는 사람이 또 있을까 생각하며 새삼 감사한 마음이 든다. 나는 정말 운이 좋고, 본인이 운이 좋다고 믿는 단한테 너무 감사하다.



스페인에서 처음 먹는 샹그리아. 1L에 6.5€였는데 샹그리아는 어디서 먹으나 맛있어서 특별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다음부터는 와인을 먹는 걸로. 왜냐? 와인은 특별히 싸고 맛있으니까!

와인을 신중히...내가 나눌 테니 너가 먼저 고르도록 하여라. 순례길 걷는 것은 최고의 다이어트 중 하나가 아닐까. 아무리 먹어도 살이 빠진다.

발가락이 크로와상이 됐다. 처음 생긴 물집 살갗 안쪽이 단단해지며 새로운 살가죽을 만들었다. 으 징그러워. 단단하니 이제 절대 물집이 다시 잡힐 것 같지 않다. 예쁘고 연약한 발이 좋은 걸까, 못생기고 단단한 발이 좋은 걸까. 지금은 이대로도 좋지만 구두를 신어야 할 일이 있을 때는 예쁜 발로 돌아가길.. 근대 힐 신을 때 이것보다 더 무지막지한 튼튼한 발이 필요할 것 같긴 한데...


무엇이든 잘 먹는 나지만 슬슬 매일 먹는 고기와 소금간이 질린다. 얼큰한 김치찌개가 먹고 싶다. 아시아권 나라에서 생활할 때는 촌스럽게 한국음식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이 이해가 안 갔는데 이제는 알겠다. 아 얼큰한 찌개와 매콤한 낙지볶음에 밥 한술 뜨고 싶다.





안녕! 다음에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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