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정주행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농반진반 Nov 17. 2023

<너와 나> '사랑해'라고 백 번 말해 보기

*스포일러 있습니다. 조심하세요. 


곧 미국에 다시 들어간다. 가면 못 볼 영화 하나를 보고 싶었다. 거기는 당연히 한국영화가 귀하다. 이래저래 일정이 계속 있어서 조조로 ‘너와 나’를 봤다. 광화문 에무시네마. 에라스뮈스의 약자라고 하는데 의미는 잘 모르겠다. 조조 가격이 7000원이다. 오늘 아침에는 3명이 봤다. 총 수익 21000원. 이래 가지고 운영이 되려나. 모르겠다. 


영화 <너와 나>의 소재는 세월호다. 홍보를 하면서 굳이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이렇게 말한다고 스포일러도 아니다.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보더라도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고등학교 수학여행을 가기 전 하루를 그리고 있다. 여고생 두 명이 우정 혹은 애정 혹은 사랑을, 고백하고 오해하고 다투고 이해하고 다시 사랑하는 과정이다. 


기자 시절 세월호 참사 때 누군가를 인터뷰를 하는데 그런 말을 했다. 차가운 바다에서 인양된 아이의 시신을 직접 본 사람이었다. 파랗게 질린 얼굴이 너무 비현실적으로 예뻐서 당황스러웠다는 거다. 아이들은 모두 너무 이쁜 나이였고, 사건은 지금 생각해도 비현실적이다.

 

영화는 학교에서 혹은 안산 근처에서 지내는 고등학생들의 일상을 자주 보여준다. 의도적이겠다. 공부하고 운동하고 웃고 까부는 아이들이 그렇게 예쁠 수 없다. 탄식이 나온다. 줄거리와 아무 상관도 없이 여기서 터진 눈물샘은 영화 끝까지 멈추지 않았다. 


박혜수는 찾아보니까 나이가 거의 서른인데 고등학생 연기가 이질감이 없다. 동안이기도 하지만 말투나 동작이 너무 고등학생 같아서 좀 징그러울 정도였다. 진짜 고등학생이 출연한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다. (아빠가 방에 들어오니까 발로 밀어내는 장면이 있다. 고등학생 내 딸아이와 똑같아서 깜짝 놀랐다.) 노래를 지나치게 잘하는 것 같았지만 그 감정을 표현하려면 어쩔 수 없었을 것 같다. 다른 친구는 <다음 소희>에 나온 김시은이다. 엄청난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다리를 다쳐서 수학여행에 가지 못하는 친구가 있다. 다리가 조금 아파도 수학여행을 같이 가자고 조르는 다른 친구가 있다. 이 친구가 수학여행에 가느냐 못 가느냐가 서스펜스라고도 할 수 있지만 굳이 그 스토리를 극적으로 강조하지는 않았다. 그게 왜 궁금하겠나. 그러기에는 현실이 너무 무겁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수학여행 전날 저녁 저녁에 두 친구가 헤어질 때다. 스크린에 대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헤어지지 마. 꼭 붙어있어. 조금 더 같이 있어. 내일 둘 다 수학여행을 가지 마.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한 친구가 다른 친구를 자꾸 돌아본다. 돌아볼 때마다 거의 통곡에 가까운 울음이 극장 내부에 가득했다. 겨우 3명이 앉아 있었는데. 장례식장에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사랑해'라는 대사가 가장 많이 나오는 영화가 아닐까 싶다. 감독이 하고 싶은 말이었던 것 같다.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고,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고, 스스로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지 않았을까. 조금 과하게 보일 수도 있는데, 어쩔 수 없는 선택 아니었겠나. 


배우 조현철이 연출을 한 영화다. 워낙 평가가 좋다. 나는 영화가 예의 바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쉽지 않았을 텐데. 쓸데없이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가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가고 불이 들어왔다. 너무 울었나.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지만 쑥스러웠다. 몇 안 되는 관객들이 빨간 눈으로 짐을 주섬주섬 챙겨서 밖으로 나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