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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송 Jul 11. 2016

히가시노 게이고의 치밀한 기적이 주는 짜릿함

히가시노 게이고,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독후감

히가시노 게이고는 <독소소설> <흑소소설> 이후로 오랜만에 다시 보는 작가다. 물론 <용의자 X의 헌신>이나 <공허한 십자가> 등은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인기를 끌었으나 그것들은 읽지 않았다. <독소소설>류를 읽으며 내가 느낀 것은 히가시노 게이고가 이야기를 재미있게 쓸 줄 아는 작가라는 것뿐이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재미있는 이야기보다 우선해서 읽어야 할 책이 많다고 생각했다.


오랜만에 읽은 그의 작품은 예전과는 좀 달랐다. 여전히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고, 그것을 끊기지 않게 잘 써 나가지만, 그냥 재미있는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이전보다 구성이 더욱 치밀해졌고, 분위기는 좀 더 은은해졌다. 예전의 책이 "재밌지, 재밌지?" 하며 옆에서 떠들어대는 친구의 느낌이라면, <나미야>는 그보다 좀 더 성숙한 어른의 느낌이다.


제목에서 이미 밝혔지만 <나미야>의 가장 큰 매력은 치밀한 구성이다. 과거와 현재라는 시간과 여러 인물 사이를 오가며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에 구멍이 생기기 쉽지만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런 틈을 허용하지 않았다. 초반부터 하나씩 깔아 둔 무수한 장치와 복선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꼼꼼하게 거두어 결말을 써냈다. 그러니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란 말 그대로 절로 일어난 희소한 일이라기보단, 히가시노 게이고가 치밀하게 짜낸 기적인셈이다.


<나미야>는 책 제목 그대로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에 관한 이야기다. 

동네에 작은 잡화점이 하나 있었다. 그 잡화점은 한 할아버지가 홀로 운영했는데, 아이들이 장난 삼아 던지는 질문에도 성심성의껏 답해주는 친절한 분이었다. 그런데 아이들의 장난을 대하는 할아버지의 태도를 보던 주변 어른들이 질문을 하기 시작한다.

부모님이 야반도주를 하려고 해요. 저는 어쩌면 좋을까요?

무거운 질문이지만, 나미야 잡화점의 할아버지는 언제나처럼 진중하게 펜을 들어 답장을 쓴다.


지금의 시대는 어른들에게 마음을 열고 질문하기가 쉽지 않은 때다.

"저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일하는 게 너무 힘들어요. 차라리 월수금만 일하고 돈을 조금 덜 벌면 안 될까요?"

당신을 낳아준 부모님조차 이런 질문 앞에서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고 있어!"라고 호통을 칠 것이다. 하지만 나미야 잡화점의 할아버지는 다르다. 그 다르다는 것이 무조건 상담자의 편을 들어준다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상담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기 위해 귀를 기울여 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할아버지 덕분에, 고민거리를 들고 나미야 잡화점을 찾았던 많은 사람들의 미래가 바뀌었다. 그들과 얽힌 사람들의 미래까지 더불어.


우리 동네에도 나미야 잡화점이 있다면, 아니 한국에 하나라도 있다면 기꺼이 한 번 찾아갈 것 같다. 할아버지의 답장을 기다리는 밤을 기쁘게 지새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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