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펄머터, <장내 세균혁명> 독후감
최근 내가 보기에는 다이어트계(정확히 말해서는 섭식 영양학 정도 되겠다)에서 큰 싸움이 진행 중이다. 앞으로 어떤 게 주류 의견이 될 것인가 하는, 역사적으로 보자면 황산벌 전투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은데 그 주제는 바로 '고지방 저 탄수화물 다이어트가 옳으냐 그르냐'이다. 몇 년 전 제시된 뒤로 대중적으로 부침을 겪고 있는 고지방 저 탄수화물 다이어트는 지방이 익히 알려진 것처럼 나쁜 물질이 아니며 탄수화물이야말로 인체에 온갖 악영향을 끼치므로 곡물 섭취를 줄이고 고기, 유제품 등의 지방 섭취를 늘리자는 섭식 법이다. 그리고 그렇게 탄수화물 대신 지방에서 칼로리를 얻는 경우가 더 좋은 몸매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새로운 아이디어가 제시되고 유행을 타게 되면 대중들은 곧바로 고민에 휩싸인다. '정말 고기를 마음껏 먹으면서 살 뺄 수 있을까?' '아니야, TV에서 어제는 A를 먹으랬다가 오늘은 A를 먹지 말랬다가 하는 세상인데 하지 말자' '그래도 고기를 마음껏 먹을 수 있다니, 난 해 보겠어' 하는 식이다. 의료인이지만 나도 마찬가지다. 비록 내가 다이어트를 할 일이 없다 해도 환자들에게 어떤 지침을 줘야 할지 고민에 빠진다. 저 탄수화물 고단백 다이어트냐, 저 탄수화물 고지방 다이어트냐. 결국 내가 선택하는 건 오랫동안 맞다고 알려져 온 '고단백'쪽이다. 왜냐, 고지방 다이어트는 아직까지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하나의 아이디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은 무엇을 먹느냐 하는 게 다이어트에 그리 중요한 문제일까 싶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알다시피 체형, 비만은 '될놈될'의 문제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을 관찰해보면 분명 엄청 먹는데도 마른 사람이 있고 남들보다 적게 먹는 것 같은데 뚱뚱한 사람이 있다. 그러니까, 마른 놈은 많이 먹어도 말랐고 뚱뚱한 놈은 적게 먹어도 뚱뚱하다는 거다. 그런데 우리가 반쯤 우스갯소리로 하는 이 말은 과연 어떨까? 혹시 이 말속에 진실이 있는 건 아닐까?
<장내 세균혁명>의 저자 데이비드 펄머터는 이에 대해 장내 세균을 원인으로 지목한다. 사람의 장 속에는 후벽균과 의간균이라는 대조적인 균이 존재하는데 후벽균은 말 그대로 厚, 사람의 살을 두텁게 해 주는 균이고 의간균은 그 반대의 역할을 하는 균이다. 그런데 이 균의 비율을 따져보아 후벽균이 훨씬 많을 경우 실제 균의 숙주인 그 사람도 비만해진다는 것이다.
규모가 가장 큰 두 세균 군은 후벽균과 의간균이다. 이 두 세균 군이 장내세균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 건강을 보장하는 완벽한 비율은 존재하지 않지만 후벽균이 의간균보다 많으면 염증과 비만이 확실히 더 많이 발생한다. 후벽균은 특히 음식에서 열량을 빼내는데 능하기 때문에 열량 흡수를 늘린다.
혹자는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에이 그래 봐야 다 같은 음식 먹고사는데 대장 속에 있는 균종에 뭐 차이나 있겠어?'. 이런 의문을 제기하면 과학자가 그의 뺨을 <네이처>지로 후려칠지도 모른다. 연구에 따르면 아프리카인들의 대장 속에는 훨씬 다양한 종의 균이 서식하며 후벽균보다 의간균이 더욱 많았다. 유럽인은 그 반대로 후벽균이 의간균보다 더 많았고 균의 종류도 다양하지 못했다. 물론 아프리카인과 유럽인의 전형적인 식단이 다르다는 점을 고려해야 하며, 이를 통해 식단이 균군에 미치는(나아가 비만에 미치는) 영향도 알 수 있다.
더욱 재밌는 점은 그간 다이어트의 상식으로 알려져 온 것들이 장내 세균 생태계에도 유효한 힘을 가진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강도 높은 운동을 하면 후벽균은 감소하고 의간균은 증가하며, 프로바이오틱 요구르트를 함께 복용하면 장내 미생물군에 좋은 영향을 끼쳐 비만이 예방된다는 것 등이다. 다시 말해 이 책은 그간의 건강 상식을 장내 세균을 중점으로 해서 다시 한번 해석하고 되짚어보는 책이 되시겠다.
그러나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이 장내 세균에 관한 이론 또한 새롭게 등장해서 파란을 일으키고 있지만 아직까지 충분히 검증된 것은 아니다. 물론 후속 연구가 이 책의 이론을 뒷받침하겠지만 너무 섣불리 이 이론만을 숭상해서 매일 발효식품을 먹고 자신의 모든 문제가 대장 때문이라고 생각해 외국으로 대변 이식을 받으러 가지는 말자. 어디까지나 새로운 패러다임일 뿐이니까.
내장 세균은 인체 대사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체중의 증감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다. 내장 세균은 인체가 지방을 저장하는 방식에 영향을 주고, 혈액 내의 포도당 수치를 조절하며, 대사와 관련한 유전자를 발현시키고, 허기와 포만감을 느끼게 하는 호르몬에 반응하기 때문에 많은 면에서 지휘자 역할을 한다. 내장 세균은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뚱뚱하고 당뇨병, 뇌질환에 걸릴지, 아니면 날씬하고 건강하며 두뇌 회전이 빠르고 무병장수 할지에 대한 기초를 마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