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물> 감상평
오랜만에 수작을 봤다는 느낌이다. 영화를 오랜만에 본 것은 아니다. 얼마 전 스페인을 오가는 비행기 안에서만 네 편의 영화(인턴, 앵그리버드 등)을 보았으니까. 그러나 이렇게 묵직한 울림을 주는 영화는 정말 오랜만이다.
실상 사람들은 살아가기 위해 국가가 필요하다고들 말한다. 개인의 힘으로는 사회를 살아갈 수 없으며, 사람이 살다 보면 자연스레 생겨나게 마련인 공동체 간의 알력 조정을 위해서라도 국가가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국가란 것은 분명 사람이 잘 살기 위해 만들어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그 자체가 개인에 비해 엄청나게 거대한 탓에 지나친 권력을 행사하고 또 개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삶을 이끌어 버리기도 한다.
한 번 북한을 생각해보자. 북한이란 이미 존재하고 있는 한 나라이지만 거기서 태어난, 또 태어날 생명들은 무슨 잘못을 했기에 평생 북한을 벗어나지 못하고 독재 아래 배를 곯고 살아야 하는가? 오직 태어난 곳이 북한이라는 이유로, 혹은 아프리카의 저개발국이라는 이유로 탄광 속에서 혹은 총을 맞고 죽어야 함을 생각해 볼 때 국가란 반드시 국민을 보호해 주는 존재라고 할 수만은 없다.
<그물>은 북한과 남한을 통해 그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 같다. 그저 북한에서 태어나 물고기를 잡고 가족을 부양하며 살아가는 노동자에게 있어 북한은 무엇이고 남한은 무엇인가? 공산주의는 무엇이고 또 자본주의는 무엇인가? 이념이 있어 사람들이 행복해 질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살아감에 있어서, 다시 말해 밥 하고 빨래 하고 잠 자는 데 있어서 이런 이념은 아무 것도 아닌 허울에 불과한 것이기도 하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아마 최인훈의 <광장>이 생각날 것이다. '남북한 이념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논의한 최초의 소설'이라는 타이틀을 단 작품 속 주인공을 기억하는가? 이명준은 중립국, 제3세계를 선택하지만 결국 그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희망이 되고 말았다. 그 어디에도 몸을 맡길 수 없었던 이명준의 고뇌를, 이제 영화 <그물>과 류승범의 야수 같은 연기를 통해 느껴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