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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송 Nov 11. 2016

바둑의 전설, 이창호의 회고록

이창호, <이창호의 부득탐승> 독후감

바둑계의 레전설 하면 누가 떠오르는가? 아마 나처럼 평소 바둑계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알파고와 치열한 승부를 벌여 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이세돌을 떠올릴 것 같다. 하지만 바둑 세계랭킹 1위를 가장 오래 지킨 사람은 이세돌이 아니었다. 그보다 앞서 존재했던 전설, 바로 이창호가 있었다.


이창호는 최연소로 국내 챔피언과 세계 챔피언에 등극했고 가장 오래 세계랭킹 1위에 머물렀다. 그런데 가장 오래 머물렀다는 건 과연 어느 정도일까? 구체적인 기간으로는 1990년 11월부터 2006년 3월까지의 15년 4개월이다. 한 사람이 태어나서 중학교를 졸업할 때가 되도록 내내 세계 1위를 한다는 것, 정말 엄청난 일이 아닌가? 그래도 잘 감이 오지 않는다면 아래의 영상을 참고하면 좋다.

https://www.youtube.com/watch?v=cfV0f8BRbiA

세계바둑랭킹을 그래프로 나타낸 영상. 한 번 1위에 오른 이창호는 좀처럼 내려오지 않는다.

<이창호의 부득탐승>은 그 부동의 1위를 견지했던 이창호가 자신의 바둑과 인생을 돌아보며 작성한 회고록이다. 회고록이라고 하면 어쩐지 대단히 나이가 많은 사람이 작성한 것 같지만, 20대 초반까지를 전성기로 치는 바둑계이다 보니 이창호는 벌써 상당히 나이가 많은 기사가 되었고 그러다 보니 비교적 젊은 나이에 회고록을 내게 된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인 부득탐승不得貪勝은 바둑십계명인 위기십결의 첫 번째 원칙으로 '승리를 욕심내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원래도 위기십결 중 나머지 아홉 실천강령을 모두 포괄한다고 할 정도로 중요한 말이지만 특히 이창호의 바둑 스타일, 나아가 인생 스타일과 잘 맞는 말인 것 같다.


(나를 포함해) 여전히 이창호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을 위해 약간의 설명을 덧붙이자면 이창호의 별명은 '돌부처'다. 이리 뛰고 저리 치는 신이한 난전의 기술은 없지만 표정 변화 없이 묵묵히 돌을 놓다 보면 어느새 반 집 승을 쟁취하는 그의 독특한 스타일 때문이다. 때문에 다소 재미없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는데 자신의 바둑이 그렇게 된 데 대해 이창호는 이렇게 말한다.

무릇 승부에 임할 때는 자신을 다스려 최대한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하는 법이다. 나아가야 할 때는 주도면밀하게, 가만히 있어야 할 때는 신중하게 기다려야 한다. 일단 전진하면 실패의 여지를 없애야 하고, 부동할 때는 불필요한 기미를 보이지 말아야 상대를 서서히 제압할 수 있다.

달리 말해 그는 두터운 실리를 추구하는 승부사인 셈이다.


답답할 정도의 신중함. 그것은 비록 바둑에서뿐만 아니라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누구에게나 필요한 덕목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만큼 신중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어야 할 때 나아가다가 일을 망치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그러한 경우가 많은 사람으로서 이창호의 이러한 철학이 상당히 의미 있게 다가왔다.


세계 최고의 기사(棋士)의 회고록을 읽었지만 여전히 바둑에 대해서는 손톱만큼도 모르겠다. 그리고 딱히 바둑을 새로 시작해 보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오직 바둑판과 바둑알만 두고 안갯속의 상대와 몇십 분씩 마주 앉아있는 건 내게 고역이니까. 하지만 돌부처라고 불리는 천재가 어떤 마음으로 한 생을 살아왔는지 잘 알 수 있는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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