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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송 Mar 22. 2017

발터 벤야민의 공부법

권용선, <발터 벤야만의 공부법> 서평

요즘 <완벽한 공부법>이라는 책이 화제다. 아직 안 읽어봤다. 아마 그 책은 진짜 우리가 아는 '공부'에 관한 책일 것이다.

<발터 벤야민의 공부법>에서 알려주는 공부는 아쉽게도 그 공부가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공부는 학업 성적을 높이거나 어학 능력을 키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계발하기 위한 수행을 말한다. 물론 학업 성적을 높이기 위한 공부도 당연히 자기 계발의 일환임을 짚고 넘어간다.


한 마디로 요약해서 발터 벤야민의 공부법은 동화(同化)다.

그는 보들레르를 만나면 보들레르가 되고, 프루스트를 만나면 프루스트가 되고, 카프카를 만나면 카프카가 되는 방식으로 공부했다. 그 사람 자체가 되어버리는 것으로 특정한 인물을 공부하고 흡수해 자신을 변화시켜 나갔던 것이다.


그런데 이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느냐?

그냥 눈을 감고 '나는 보들레르다' 생각하면 보들레르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 감정적이고 일차원적인 이야기가 아니고, 발터 벤야민은 그들의 텍스트를 철저히 연구함으로써 그들 자신이 되고자 했다.

이를테면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으며, 그 문장 하나하나가 어떤 생각을 기반으로, 어떤 사고의 전개를 거쳐, 어떤 방식으로 서술되었는지 텍스트를 전부 뜯어보고 프루스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는 그러한 과정을 거쳐 자신이 좋아하는 세 사람(보들레르, 프루스트, 카프카)를 정했으며 특히 카프카에 대해서는 그의 분신이나 다름없다고 여길 정도로 동질감을 많이 느꼈다고 한다.


발터 벤야민은 왜 그런 공부를 하게 되었을까?

그는 문자가 없던 시절의 인간들은 모방을 통해 세계를 이해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무언가를 배우기 위한 원초적이면서 근본적인 방법으로 모방을 택했고, 그 방법으로 세계를 이해하려고 애썼다. 

그는 또 여행을 통해서도 공부를 했는데, 특이하게도 그의 여행을 통한 공부법은 '길 잃어버리기'다. 길 잃어버리기란 여행을 간 도시에서 지도 없이 배회하다가 말 그대로 길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보통의 여행객들이 (서울을 예로 들면)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인증샷, 서울 지하철을 타서 인증샷, 광장시장에서 먹거리를 먹으며 인증샷, 명동에서 쇼핑한 후 인증샷을 찍고 돌아간다면 발터 벤야민은 그냥 서울 시내로 진입하는 순간 모든 것을 놓아버린다. 그냥 발길 닿는 대로 걷는 것이다. 이때 보통의 여행객들은 지하철과 대로, 유명 관광지만 보게 되지만 발터 벤야민은 서울의 골목길, 달동네, 구멍가게를 보고 관광지를 거닐지 않는 수많은 서울의 시민들을 보게 된다. 그것이야말로 그 도시의 진정한 모습이라고 그는 생각했던 것이다.


프루스트와 보들레르, 카프카를 좋아하진 않지만 발터 벤야민의 공부법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다. 다만 그만큼 동화되고 싶은, 마치 나의 분신처럼 여겨지는 누군가를 찾는다는 게 쉬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지금 나에게 떠오르는 인물은 김수영, 다자이 오사무 정도? 좋아하고 존경하는 작가야 황석영도 있고 조정래도 있지만 어쩐지 이 분들은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동질감보다는 경외감이 느껴지는 편이기 때문에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요즘 같은 세상에 글을 어떻게 써야 할 것인가에 대해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그의 생각.


그는 대중매체와 광고가 현실을 장악하기 시작한 시대에 그것들과 맞서기 위해서는 글쓰기의 혁명적 내용뿐만 아니라 충격적 표현 방식도 함께 찾아야 한다고 믿었다. “학자들의 보통 수준의 저작은 카탈로그처럼 읽히기를 원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언제쯤이면 책을 카탈로그처럼 쓸 수 있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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