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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송 May 17. 2017

당신은 진짜 당신 인생을 살고 있습니까?

김민섭, <대리사회> 서평

10년 전 나를 가르치셨던 담임 선생님을 찾아뵈었다. 학교 근처 카페나 식당에서 뵐 줄 알았는데 의외로 학교로 찾아오라고 하셨다.

'이거 설마 학교 안으로 가야 하나?'

놀랍게도 선생님은 여고 안으로 나를 부르셨다. 그것도 10년 전 우리 학교 바로 옆에 있던, 길가에 지나가는 것만 봐도 이상하게 관심이 가던 그때 그 여고 안으로.

선생님이 어떤 언질을 주신 건 아니지만 학교 안으로 발을 들여놓으며 혹시나 선생님이 애들한테 무슨 조언이라도 해 주라고 하시면 어떡하나 하는 고민을 했다. 5층까지 계단을 오르며 고민을 거듭한 끝에 내가 생각해 낸 것은 '여러분 스스로 정말 인생의 주인임을 체감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모든 결정에 대해서 자기가 책임을 지겠다는 자세로 진지하게 살아가세요.'라는 조언을 해 주려고 마음먹었다.


다행스럽게도 선생님은 교무실까지 찾아간 나를 5분 만에 학교 밖 카페로 데리고 가셨지만 내가 학생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여전히 같다.  아니 학생들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모든 사람들이 한 번쯤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내가 나 자신의 인생을 살고 있는지, 아니면 타인의 기대를 실행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고등학교 때 나는 굉장히 공부를 열심히 했다. 피시방에도 거의 다니지 않았고, 야간 자율 학습도 빼먹기는커녕 다른 사람보다 더욱 오래 남아했다. 그 결과 남들보다 조금 더 좋은 대학에 갈 수는 있었지만 그 시절 나 스스로 선택한 것은 도대체 무엇이었던가 떠오르질 않는다. 학교에 가고 싶어서 간 건지, 피시방에 안 가고 싶어서 안 간 건지, 공부를 잘하고 싶어서 한 건지 당최 내가 스스로 원했던 계기들이 떠오르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바로는 그 때나 옛날이나 지금이나 학생들이 공부를 하는 것은 부모님의 욕망을 떠 안아 해 나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렇다면 1세부터 19세까지의 그 인생의 주인은 누구일까? 본인일까, 부모님일까?


더욱 심각한 것은 20세, 성인이 되어서도 대리 인생의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성인이 된 후에도 어떤 사람은 연애를 하는 문제나 귀가 시간의 문제, 학점의 문제 등을 모두 부모님과 상의하고 그 결과에 따라 살아간다. 자신의 본심과 관계없이 연애를 거부하고, 장학금을 타기 위해 그 시간에 할 수 있는 다른 모든 일들의 가능성을 포기해 버린다.

대학생 때만이 아니다. 시간적인 범위를 벗어나도 공간적인 범위도 마찬가지다. 한국에 살고 싶어서 한국에 사는 건지 혹은 울산에 살고 싶어서 울산에 가는 건지. 정말로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에 대해 고민하고 주체적으로 선택을 해 나가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그렇다. 그게 바로 이 책의 제목인 <대리 사회>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차를 운전하고 있기 때문에 주인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상 그 핸들과 자동차는 우리 것이 아니다. 더군다나 가는 방향도 우리가 정하는 게 아니라 대리기사를 부른 주인이 정한다. 우리는 다만 그에게서 대가를 받고 대신 운전을 해 주는 것뿐이다.


부모가 자식에게 "내가 너 그러라고 그렇게 돈과 시간 들여가며 키운 줄 알아?!" 소리 지르고, 자식이 부모에게 "누가 그렇게 해 달라고 했어?!"라고 소리 지르는 흔한 일상이자 드라마 속의 장면은 그러한 우리(대한민국)의 현실을 정확하게 반영한다.

서로가 서로의 욕망을 대리하고, 정작 자신의 삶은 챙기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그렇게 인생을 대리 운전하다 절망에 빠진 우리 사회에 대해, 인문학을 오랫동안 공부한 김민섭 씨가 실제 대리운전을 하며 느낀 바를 책으로 풀어냈다. 실제 직업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물론 추천할 만하지만, 자신이 인생의 대리운전자인지 진짜 운전자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꼭 한 번은 읽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하는 바, 강력하게 추천 또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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