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책 한권 외워봤니> <9등급 꼴찌, 1년만에 통역사 된 비법> 서평
영어가 지배하는 시대다. 중국어가 부상하고 있다지만 영어만큼의 범용성을 획득하지 못하고 있고, 스페인어 사용인구가 2위라지만 광역시에서도 스페인어 학원 하나 찾기가 힘들다. 사실 새로운 현상도 아니다. 영어는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전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언어였고, 세계 각국 여행자들의 언어이며, 잘 하면 출세길도 열어주는 언어다.
그런데 영어를 어떻게 해야 잘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지금 소개하고자 하는 영어공부에 관한 베스트셀러 두 권의 내용도 판이하게 다르다.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이하 '영한권')>는 영어로 된 책을 한 권 외우라고 말한다.
<9등급 꼴찌, 1년 만에 통역사 된 비법(이하 '9통역')>은 영어 드라마나 영화 한 편을 백 번 보라고 한다.
그러나 정말 이 두 가지 방법이 판이하게 다른 것일까?
내가 보기에 두 가지 방법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핵심이 "입으로 따라 하고, 매일 조금이라도 반복해서 영어를 국어 수준으로 익숙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점에서 둘은 같다.
나는 한국어를 제외하고는 두 가지 언어를 할 줄 안다. 영어는 영어를 모국어로 삼는 외국인과 막힘없이 일상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을 정도고, 스페인어는 한국어를 영어로 번역한 다음 그것을 다시 스페인어로 바꾸어서 말하는 수준이다. 한마디로 스페인어는 초보고 영어는 중급자다. 그런데 내가 두 가지 언어를 쓰는 것을 본 친구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너는 스페인어는 자연스럽게 대화하듯이 말하는데 영어는 왜 그렇게 복잡하게 하냐?"
이 말이 언어 공부법에 관한 내 경험과 상식에 작은 깨달음을 주었다.
나는 영어는 어릴 때 의무교육으로 학교에서 배우기 시작했고,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그러하듯 "Hi, how are you? I'm fine, thank you."를 외웠다. 그 뒤에는 토익 공부를 했고, 수능을 친 후로는 영어 공부를 하지 않아서 내 영어는 언제나 책으로 배운 영어로만 남아 있었다. 영어 듣기 시험을 치니까 말을 알아듣는데 문제가 없고, 수능 외국어 영역을 치니까 독해에도 문제가 없었지만 말하는 능력이 떨어지게 된 것이다.
반면 스페인어는 Duolingo라는 어플을 통해 그림을 보고 단어를 말하는 것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문법에 대해서는 일절 배우지 않은 채 계속해서 el hombre, el nino, buenos dias 같은 기초적인 단어와 문장들을 익혔고 그러는 도중에 스페인어와 영어가 대단히 유사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꾸준히 6개월 정도 어플로 공부를 하니 스페인어 동화책을 읽을 수 있는 수준이 되었고, 스페인에 가서도 자연스럽게 말을 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애초에 책을 본 게 아니라 말을 위주로 공부를 했기 때문이다.
일화로 이런 일이 있었다. 스페인에서 공항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여기가 맞는지 어떤지 지나가는 아주머니께 물어보았다.
Senora, yo estoy esperar para autobus por aeropuerto. pero no tengo tiempo suficiente. tu sabes donde?
(아주머니, 저는 공항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시간이 충분하지가 않아요. 어딘지 아세요?)
사실 스페인어를 잘 하는 사람이나 원어민이 보면 이상한 문장이겠지만 내가 문장을 생각해내는데 크게 어려움이 없었고 아주머니도 다 알아듣고 내게 대답을 해 주었을 때 그 대답을 잘 알아들을 수가 있었다는 점이 의미가 있다. 학교 영어를 6개월 배운 사람이 이렇게 대화를 할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시 두 책 이야기로 돌아가서, <영한권>과 <9통역>은 조금 책의 느낌이 다르다.
<영한권>은 논스톱을 만들었던 PD가 어떻게 영어를 잘하게 되었는지 말하는 책으로, 교사인 아버지가 방학 때 교과서 외우기를 시키는 바람에 책을 한 권 외우게 됐고 그 뒤로 자신감을 가지고 살게 되었다는 내용이다(추가적으로 군대에서 성경책을 외운다). 편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느낌이고 꼭 책 한 권을 외우는 것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영어 공부를 잘하기 위한 팁을 많이 제시하고 있다는 게 장점이다.
<9통역>은 공부를 잘 못하던 사람이 외국에 갔다가 어떤 목사님이 영어를 잘하는 걸 보고 그 비법을 물어 영화 한 편을 100번 듣고 말하는 식으로 공부를 했다는 내용이다. 그 결과 영어를 굉장히 잘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저자에게 여러 일자리나 인맥을 연결해 주어 인생 성공의 길을 열었다는 것인데, 저자의 경우에는 영어 실력도 실력이고 여러모로 행운도 많이 따라준 것 같다. 이 책은 100LS(100번 듣고 말하기) 방법에 관해서 굉장히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 주고 있다는 게 장점이다.
사실 두 책이 제시하는 방법 중에 어느 게 더 낫다, 맞다고 하기는 힘든데 어떤 사람은 책 외우는 게 더 쉽고 재밌지만 어떤 사람은 영화 보는 게 더 쉽고 재밌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둘 중에 어떤 것을 택하는가는 중요하지 않고, 선택한 공부법을 얼마나 열심히 꾸준하게 구체적인 목표를 가지고 반복해 나가는가가 훨씬 더 중요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영어책도 외우고 영화도 보는 동시 병행 방법이 실력 향상에는 가장 나으리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