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감시 사회에서 정상인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
최근에 머릿속에서 미셸 푸코의 저서 <감시와 처벌>이 떠나질 않는다. 지금 외국에 체류 중인 관계로 구해서 읽어보지는 못했으나 그 책의 요약 소개본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격을 받기에는 충분했다.
- 사법적 감금은 범죄자에 대한 일련의 평가, 규정, 처방, 판단들이 제도적으로 치밀하게 이루어지고 정교화 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 모든 사회에서 사람의 몸은, 통제하고 금지하며 조절하고 권면하는 권력 앞에 노출된다. 감옥은 다만 그 선명한 축소판일 뿐이다. 감옥뿐만 아니라 군대, 학교, 병원, 공장, 회사 등의 모든 장소에서 몸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일련의 기법을 총동원하는 현상을 보라.
- 모세혈관처럼 전 사회 영역을 관통하면서 사회 구성원들의 모든 것을 감시하고 규율하는 사회, 나아가 인간의 정체성과 자화상 자체를 창출하는 장소가 바로 '규율 사회'인 현대 사회라는 것이다.
- 두 번째 기법인 규범적 판단은 사회구성체의 모든 곳을 관류하면서 개체를 부단히 비교, 분리, 계층화, 동질화시키는 데 목표를 둔다. ... 가정에서의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라", "손발을 깨끗이 씻어라", "부모님께 효도하라", 학교에서의 "공부 열심히 해라", "주위를 정돈해라", "떠들지 마라", "용모와 복장을 단정히 하라", 회사에서의 "열심히 일하라", "인간관계를 잘 유지하라" ...
- 판옵티콘적 사회에서 그 누구도 이런 규범적 판단의 융단폭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어떤 사람이 이 규범적 판단에의 동조를 거부하는 순간 그는 결격자이거나 비정상적인 인간으로 낙인찍혀 사람대접을 못 받게 된다. 이런 규범적 판단의 궁극적 목표는 대상을 '정상화'하는 데 있으므로 정상인은 누구나 이 규범적 판단에 순응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하나가 뇌리를 관통하는 이 내용들이야말로 진정 '철학'과 '책'이 우리에게 주어야 하는 충격이 아닐까? 근래 읽은 모든 책들이 나의 뇌를 부드럽게 마사지하고 편하게 쉬게 해 주는 종류의 것들이었다면, 미셸 푸코의 말은 두개골을 마구 때리고 번개로 뇌를 지져 놓았다.
태어나는 순간의 나는 자연인이었다. 나에겐 아무런 편견도 선입견도 없었다. 네 발로 기었고, 울고 싶을 때 울고, 변을 보고 싶을 때 보았다. 그러한 행동은 차차 규율 안에서 '정상적인 아기'가 되기 위해 통제 받기 시작한다. 두 발로 서서 걷고, 공공 장소에서는 울지 않고, 변은 화장실에 가서만 본다. 이 정상적인 아기가 되는 과정을 통과한 후에는 정상적인 '유치원생'이 되어야 한다. 아침에는 부모님이 차려주시는 밥에 불평을 하지 않고 먹어야 하며, 유치원 버스를 놓치지 말아야 하고, 선생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비록 부모님이 선생님의 언행을 모두 알지는 못하지만, 나는 선생님이 아이들을 통제하는 것을 원활히 하기 위해 그것이 어떠한 명령이든 순종하는 법을 배운다. 초중고, 대학교는 다른가? 고등학교야말로 규율의 끝판왕이라고 할 정도로 많은 것을 통제한다. 교육부에서 지정하는 것보다 이른 시간에 등교를 해서 자습을 하고, 수업을 듣고, 정규 수업이 마친 후에는 강권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자율학습'을 하고 밤 열시가 되어서 집에 간다. 심지어는 방학도 없고 머리 길이는 교사가 명하는 대로 지켜야 한다.
처음 대학교에 갔을 때 나는 '정상적'인 범주에 들지 못하는 인간이었다. 학교 수업보다 술 마시는 걸 더 중요하게 생각했고 아침 수업이면 늘 지각 아니면 결석이었다. 선배를 봐도 잘 인사를 하지 않았고, 머리에 짙은 스크래치를 넣은 게 수업을 듣다 교수님께 한 소리를 듣곤 했었다. 그러나 그런 행동은 언제나 충돌을 유발했다. 너는 왜 인사를 잘 안 하냐, 너는 왜 연습을 잘 안 하냐, 너는 왜 그런 복장으로 학교를 다니느냐, 처음에 개의치 않았던 나도 그게 평판으로 이어지자 어느 샌가 눈치를 보게 되었다. 몇 년이 지나자 나는 완벽한 '정상인'으로서 선배들에게 인정받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3년간 공중보건의로서 군 대체복무를 마쳤다. 나는 한 번도 지각을 하지 않은 성실의 아이콘이었고 스스로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러나 내가 따라야 할 모든 '규율' 그러니까 대학을 다니고 군대를 가야 한다는 것이 끝나던 29살에 나는 강렬한 회의감을 느꼈다. '내가 정말 스스로 원해서 해 온 일은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다. 고등학교 때는 대학교 가는 게 인생의 목표였기에 오직 공부만을 하며 살았고, 가고 싶지 않았지만 가야 하니까 군대도 갔다왔다. 기왕 가는 거니까 잘 하자 싶어서 성실하게 생활했고. 그 복종의 끝에 내게 남은 것은 '정상인'이라는 이름뿐, 내 삶의 재미와 자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나는 고민 끝에 캐나다로 갔다. 한국이라는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강박이라 여겨질 정도로 강하게 들었다. 예전에도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가고 싶었다. 그러나 학업을 중단하고 빈손으로 외국에 간다는 게 불안했다. 동기들과 함께 졸업하는 트랙을 벗어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 충동은 사라진 게 아니라 내 안에 잠들어 있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캐나다로 갔고, 한의사가 되었음에도 그런 선택을 한다는 것을 아버지는 참 못마땅하게 여기셨다. 아버지는 오남매 중에서 맏이도 아니고 가장 형편이 좋은 것도 아닌데 조부모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친, 그런 정상적인 분이셨기 때문이다.
나는 캐나다에서 1년의 시간을 보내고 남미로 왔다. 지금은 볼리비아에서 한 달째 머물며 여행을 하며 글을 쓰고 있고, 앞으로 두 달을 더 이곳에서 보낼 생각이다. 지구 반대편인 이곳의 책상 앞에 앉아서도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 것을 멈출 수가 없다.
확실한 것은 이것은 오래 전부터 내가 원해왔던 일이라는 것이다. 한의사로서 '일반적'으로 따라야 할 규율은 벗어났고, 그것이 나중에 내 삶을 옥죄어 올지도 모른다. 규율을 벗어난 인간은 처벌을 받아야 마땅하므로. 그러나 두려워할 게 무엇인가. 정상인으로 편입되는 것은 사실 아주 쉽다. 마음만 먹으면 연기하며 살아갈 수 있다.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은 내 안의 야성과 자유가 스스로의 존재 자체를 잊어버리는 것이다.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잊지 말자. 감옥에 있더라도 푸른 하늘을 꿈꾸자. 우리가 살아가는 것은 하나의 정상적인 부품이 되기 위함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