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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송 Nov 28. 2018

조두순이 풀려나는 나라에서 자식을 낳으라니


 2014년 세월호 참사가 전국민에게 안전사고에 대한 트라우마를 안겨줬다면 2008년 조두순 사건은 전국민에게 성범죄에 대한 트라우마를 안겨줬다. 십 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누가 그 이름을 잊었을까. 가해자인 조두순의 이름도, 가명이지만 피해자인 나영이도 아직도 똑똑하게 머릿속에 남아있다.

 사실 잊혀지기는 커녕 조두순의 이름은 최근에 다시 언론을 통해 부각되고 있다. 우리에게 끔찍한 트라우마를 남긴 그 범죄자가 출소를 겨우 2년도 채 남겨두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2020년이면 조두순이 풀려난다. 작디작은 여자아이를 납치하고 성폭행해 피해자와 그 가족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그 인면수심의 범죄자가 말이다. 우리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 소설 <소원>은 조두순 사건을 모티브로 쓰였다. 실제로 작가가 피해자, 그리고 피해자의 아버님을 만나고 인터뷰하며 쓰인 소설이다. 내용도 실제 그 사건, 그리고 실제 피해자의 가족에게 일어난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떻게 보면 피해자의 아버님께는 이 소설을 위해 인터뷰 하는 과정이 끔찍한 고통이면서 동시에 꼭 필요한 치유의 과정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어찌 가벼이 짐작하랴. 

 모든 범죄는 되도록 접하고 싶지 않고 또 대부분의 사람은 운좋게 범죄를 당하지 않고 살아가지만 뉴스에서는 끊임없이 범죄가 일어난 사실을 보도한다. 강도, 살인, 강간, 방화... 우리가 당하지 않았기에 그 피해자도 단지 뉴스 안의 피해자로 넘어가지만 실제 그 일을 당한 사람들은 인생을 망치고 목숨을 끊기도 한다. 때로는 살아있지만 죽는 것보다 더한 고통을 참으며 목숨을 이어 가기도 한다. 

 <소원>은 아동성폭행이 한 가족에게 얼마나 큰 피해를 줄 수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된 책이었다. 구체적인 범죄사실이나 범죄자의 언행은 나타나지 않는다. 이 소설은 자극적인 내용으로 독자를 모으려는 포르노그라피가 아니기 때문이다. 온전히 피해자와 그 가족에게 집중해 우리 사회에 무엇이 부족하고 무엇이 필요한지 느끼게 해 준다.

 우리는 더 나은 세상을, 더 나은 대한민국을 원하고 또 정치인들은 그렇게 만들겠다 말하지만 서문에 등장하는 나영이 아버님의 이야기를 보면 우리에겐 아동성폭행 피해자에게 꼭 필요한 재활 및 전담치료센터조차 부족하다. 그 작고 어리고 상처 입은 생명을 돌보아줄 손길을 만드는 것이 무어 그리 힘들길래, 우린 아직도 이렇게 무책임한 사회를 구축하고 있는 것일까. 또 왜 조두순은 전과 17범인데도 사회에 나와서 활보하고 있었을까. 무려 강간과 살인을 저지른, 교화의 여지가 전혀 없는 범죄자에게 왜 우리 사회는 12년형 밖에 내릴 수가 없었고 또 2020년부터는 사회에서 그런 놈이 돌아다닌다는 사실에 불안에 떨어야 하는 것일까. 정치인과 법조인들, 그리고 그렇게 무능하고 표에만 관심 있는 정치인을 뽑은 우리들이 철저히 반성해야 할 일이다.

 오래 전부터 생각해 왔다. 강력범죄와 관련해 고의성이 있고 재범 이상인 범죄자는 사회에 풀어줘서는 안된다고. 강도든 살인이든 강간이든 이런 범죄는 우연히 두 번 발생할 수 없는 '자의적' 범죄다. 계획을 세워 사람을 다치게 하고 죽이는 사람을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런 짐승을 사회에 풀어놓아서 대체 이득이 되는 점이 무엇인가? 입법부는 일반 시민들에게 야생에서 살아가는 토끼처럼 경계심이라도 기르게 하고 싶은 것인가? 아니다. 그들의 자식들이 강력범죄에 노출될 일 없이 안전하게 살아가고 있기에 일반 서민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이 분명하다.

 대한민국 출산율이 1 이하로 떨어졌다고 얼마 전 언론이 대대적인 보도를 했었다. 몇 년 전부터 정부에서도 심각한 위기감을 느끼고, 잘 대처해 나가겠노라 누누이 말해 왔었다. 그러나 정부여, 언론이여, 다시 생각해보라. 청년들이 자식을 낳지 않는 것이 비단 취업 문제, 부동산 문제 때문일까. 내가 낳은 금지옥엽 같은 자식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없는 사회라면... 심지어는 동물도 서식지가 파괴되면 자식을 낳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성적 사고가 가능한 인간이라면 어떠할까. 

 전과 17범씩이나 되는 끔찍한 쓰레기를 사회에 나오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청년들을 결혼하고 그리고 출산하게 만드는 것보다 훨씬 쉽고 영구적으로 우리 사회를 안전하게 만드는 일이다. 물론 이미 끝난 재판을 다시 열 수 없으니 조두순은 어쩔 수 없다 치지만, 글쎄, 앞으로도 이런 일이 계속 일어나게 만든다면 입법부인 국회의원들도 이제는 아동성폭행의 간접적 방조자로 취급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끝으로 출소하는 조두순의 비참한 죽음과 피해자의 영원하고 안녕한 회복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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