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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송 Nov 29. 2018

법이 대체 뭐냐고, 카프카가 물었다

프란츠 카프카, <소송> 독후감

대체 내가 왜 체포된 건지 말입니다. ... 사실 그 사람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아는게 아무것도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소송>의 주인공 K씨, 어쩐지 김씨로 불러도 될 것 같은 친숙한 이니셜의 성을 가진 이 남자는 어느 날 갑자기 집에서 체포를 당한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고발당했고 법원에서 체포명령을 내린 것이다. 자신이 '법치국가 안에서 온당하게' 살아왔다고 믿는 K는 이것이 법원의 착오, 어쩌면 친구들의 장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법원에 출석해 보았더니 판사는 K더러 '실내장식가'가 맞냐고 묻는다. 어이없지만 K는 은행의 수석업무 대리인이다. 독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뭐야, 엉뚱한 사람 잘못 잡은 거 아냐?'

 그리고 K가 곧 무죄를 입증받아, 법원을 비웃으며 유유히 떠날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소송은 진행된다. 그리고 법원은 실제 체포되어야 할 사람이 실내장식가인지 은행원인지 명확하게 밝히지 않는다.

 또 하나, 법원은 혐의가 무엇인지 증거가 무엇인지도 밝히지 않는다. 카프카는 혐의나 증거 따위를 벗어나서 법이라는 제도와 시스템에 대해서 한 번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은 것이다.

 중간중간 카프카가 법에 대해 풍자하고 싶은 내용이 등장인물들의 입을 빌려 드러난다.

 일단 법원에서 고소를 하면 피고소인의 죄에 대해 확신하는 것이며 이런 확신을 철회시키기가 아주 힘들다는 것이죠.
 무엇보다 소송에서 패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죠. 그러니 도움이 될 만한 것이 있으면 뭐든 다 동원해야죠. 어떨 땐 도움이 되리라는 희망이 아주 적을지라도 그냥 버릴 수는 없습니다.
 사업 동료들뿐만 아니라 친지들 사이에 내가 소송에 걸렸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보니 사방에서 손실이 생기기 시작한 겁니다.

 K는 자기가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엄밀히 말하면 K가 생각하는 죄의 개념이 법이 생각하는 것과 달라서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그래도 이 고소를 무죄 혹은 무혐의로 마무리 짓고 싶으므로 법원을 들락거리고 변호사 등 도움이 될 만한 사람들을 찾아 다닌다.

 하지만 판결과 관련된 이 시스템은 잘 만들어진 기계처럼 정교한 것이 아니다. 곳곳에 사람의 손을 탄 흔적이 있으며 변호인과 판사가 친할 때 무죄가 나올 확률이 높아지기도 한다. 소위 '큰 변호사'라는, 현대 사회에서 말하는 전관예우 판사 비슷한 강력한 존재가 암시적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법도 사람이 만들고 사람이 판결하는 것이다보니 혈연 학연 지연 등 온갖 사람 때가 묻어 있다는 것이다.

 내가 만약 이런 식으로 고발을 당한다 생각하니 새삼 끔찍했다. 어느 날 체포를 당한다. 그들은 내가 죄를 지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죄를 지은 적이 없다. 그래서 무죄를 받고 싶은데, 죄를 지은 적이 없음에도 그 절차는 까다롭고 이미 직장과 주변에서 평판은 떨어지고 그야말로 인생이 엉망진창이 된다. 한 등장인물은 무려 소송을 5년째 하면서 사업을 하던 돈을 모두 변호사 고용에 쏟아부었다고 말한다. 어찌 보면 사람을 피폐하게 만드는 이 소설의 내용은 '무고 당한 성추행 혐의자'의 일 같지 않은가? 

 보통 사람은 평생 법원에 한 번 불려갈 일조차 없지만 불려간다면 결코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별다른 증거도 없이 피해자의 일관된 진술만이 증거라는 성추행이라면 남자는 십중팔구, 유죄를 받게 될 것이다. 그것이 오늘날 대한민국 법원의 모습이니까. 그러나 법원에서 증거도 없이 막무가내로 내린 유죄는 한 남자의 인생을 망친다. 그는 혐의가 걸렸다는 것만으로 직장에서 해고당하고 동네를 떠나 이사를 가야한다. 나중에 그 고발이 무고한 것이었음이 밝혀지더라도 그는 직장으로, 동네로 돌아갈 수 없다. 법원은 이 사람에게 아무런 보상도 해 주지 않는다. 성추행은 '피해자의 일관된 진술'이 결정적이자 유일한 증거이므로.

 K는 어떻게 되었을까? 무죄를 받았을까? 

 아니면 결국 실내장식가도 아닌 은행원임에도 유죄를 받았을까? 카프카는 답답한 남자다. 그러나 법에 대해서 상당히 하고 싶은 말은 많았던 것 같다. 그것이 소설 <소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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