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송 Dec 01. 2018

도플갱어가 쓴 책을 찾았다

이숙명, <혼자서 완전하게> 독후감

 책이란 한 사람의 생각이 집약된 문서다. 자신의 철학을 밝히는 에세이나 논문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는 별 상관 없을 것 같은 소설에조차 등장인물을 통해 저자의 생각이 드러나곤 한다. 그래서 어떤 책은 읽다보면 불쾌해지고 어떤 책은 유쾌해진다. 하지만 <혼자서 완전하게>처럼 '내가 쓴 거 아니야?' 싶은 책은 없었다.

 내가 책을 읽다가 놀랍도록 생각이 일치한다고 생각되어 밑줄 친 부분의 일부는 아래와 같다.

(가족과 자주 만나지도 않고 상의도 잘 안하는 것에 대해) 어릴 때부터 자취를 하며 매사에 선실행 후통보 하는 습관이 든 데다, 어차피 한국에 있어도 1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하기 때문에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나도 한국에 있으면서도 부모님을 일 년에 두세 번 찾아뵐까 말까 한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하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 불효자 아니냐는 식의 시선을 받게 되어서 요즘은 잘 드러내지 않는 편이다. 사실 정말로 나한테는 부모님이 건강히 계시기 때문에 별 것 아닌 일인데, 마찬가지로 별 것 아닌 걸로 취급하는 사람을 처음 봤다.

나의 가족들도 철저하게 자기 행복만을 위해 살아주기를, 나를 위해 아무것도 희생하지 않기를, 결과적으로 나에게 아무런 채무감을 지우지 않아주기를 바란다.

 역시나 가족에 대한 부분인데, 나는 가족에게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다. 그저 스스로 행복한 길을 찾았으면 좋겠다. 예를 들어, 어머니께서 "너를 위해 이렇게 삼천만원을 모았으니 기쁘게 받아라." 하시는 게 나는 싫다. "나를 위해 삼천만원을 모아 이제 해외여행 가련다, 붙잡지 마라. 오홍홍." 하고 떠나가시는 게 훨씬 낫다. 모든 가족구성원이 자기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여행에 관해서도 나와 동일한 부분을 어렵잖게 찾을 수 있었다.

몇 번의 경험 끝에 나는 '긴 여행은 혼자, 짧은 여행은 함께'라는 나름의 원칙을 정했다.

 나는 여태까지 정말 많은 여행을 했지만 긴 여행을 누군가와 함께 해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작가가 말하듯이 나의 세계는 남의 세계와 다르며, 그 다른 세계를 온전하게 맞춰가며 오랜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보통 피곤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혼자 여행하는 것은 외롭다. 그러나 남과 맞추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에 혼자 여행한다는 작가의 마음은, 이해하는 수준이 아니라 그냥 내 마음과 완전히 같다.


 게다가 어떤 장소가 살아가기 이상적인가에 대한 생각도 같았다.

그리고 미세먼지가 없을 것, 어쩌면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

 내가 캐나다에 살면서 너무너무너무너무 좋았던 건 공기가 깨끗해서 미세먼지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것을 내 책 <29세 한의사, 캐나다 워킹홀리데이>에 쓰기도 했다. 미세먼지, 숨쉴 때마다 스트레스를 주는 그것이 없는 곳이어야만 살 수 있다고. 아니, 물가가 싼 곳, 기후가 온화한 곳 등등 수많은 조건이 있는데 어떻게 미세먼지를 일순위로 꼽을 수가 있을까.

 이렇게 비슷한 부분이 많다보니 나는 점점 이 책을 내가 쓴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같이 이 책을 읽던 친구가 내게 카톡을 보냈다.

 그렇다. 남이 봐도 이렇게 똑같을 정도로 비슷한 사람을 찾아낸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이 작가님께는 다행스럽게도(?) 분명히 나와 다른 부분도 있었다. 가장 큰 차이로 보이는 게 아침형 인간과 저녁형 인간. 나는 명실상부한 아침형 인간으로 어딜 가든 늦잠을 자는 일이 없고 해가 떨어지면 곧 잠드는 스타일이다. 반면 저자는 저녁형 인간이라 심지어는 글조차 자정이 되어야 잘 써진다고 한다. 또 술에 대한 애착도 좀 다른데, 나는 혼자서는 거의 술을 안 마시는 편이지만 저자는 거의 프로혼술러 수준으로 술을 즐긴다. 결국 생각은 정말 비슷하지만 분명히 다른 사람이긴 했던 것이다.

 이 책을 읽고서 저자에게 가장 부러운 점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글을 아주 편하고 세련되게 잘 썼다는 점이다. 나도 언젠가 이런 책을 쓰고 싶은데, 또 살다보면 언젠가 써지겠지 하는 기대를 안고 있다. 

 이런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다. 

 혼자서 살고 있지만 뭔가 자기가 잘못된, 비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종종 의구심이 드는 사람들에게. 내가 그렇다는 이야긴 아니다. 그러나 그런 흔들림이 없는 사람은 없기에, 많은 싱글에게 공감과 위안을 가져다 줄 책인 것은 확실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법이 대체 뭐냐고, 카프카가 물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