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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송 Dec 02. 2015

의사에게 '닥터 하우스'가 갖는 의미

리사 샌더스 <위대한, 그러나 위험한 진단> 독후감

미국 드라마를 즐겨 보는 사람 중에 의료인이라면 <닥터 하우스>를 한 번도 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다. 괴팍한 진단의학과장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 드라마는 상세불명의 질환에 대해 의사가 어떻게 단서를 찾고 그 단서를 통해 질병을 유추해내는지, 그 과정을 긴장감 있게 보여준다. 

이 드라마를 보며 많은 의료인 혹은 의대생들이 '나도 환자가 오면 본인이 말하는 것만 믿지 않고, 객관적인 지표를 확인해서 아무도 알아내지 못한 질병을 찾아내야지' 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드라마는 드라마. 흔한 질환에 대해서는 진단의학과가 나설 일이  없을뿐더러 드라마의 극적 재미도 살릴 수 없기 때문에 대부분은 희귀 질환이고, 흔한 질환이어도 다수 요인의 복합적 상호작용에 의해 예기치 못하게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고로, 의료인의 실전에서는 별로 접할 일이 없는 질환들이다.


<닥터 하우스>의 시나리오에는 모태가 있다. 뉴욕 타임스 매거진의 칼럼 <진단>이 그것이다. 본서 <위대한, 그러나 위험한 진단(위위진)>은 해당 칼럼을 모아 편집한 것으로, 총 4부에 걸쳐 진단의 세계에 대해 말한다. 1부는 진단이 왜 중요한지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2부는 진단 중에서 신체검사를 통한 발견에 대해 말하며, 3부는 첨단 검사의 이면, 4부는 의학적 사고의 한계를 다룬다.

<위위진>의 풍부한 사례들은 비록 재미는 있지만 한 가지 단점이 있다. 앞서 <닥터 하우스> 이야기를 한 게 바로 이 단점을 이야기하기 위함인데, 드라마와 마찬가지로 실제 볼 일이 거의 없는 사례들이라는 것이다. 전립선 비대증으로 요도가 막혀서 방광에 소변이 가득 차는 바람에 칼륨 농도가 올라가서 심장박동이 느려진 환자를 평생 한 번은 보게 될까?(본문에 실린 사례다.)

결국 사례보다는 실리적으로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를 위주로 책을 보게 되는데, 리사 샌더스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환자를 봄에 있어 진단이 매우 중요한데 의의로 소홀히 하기 쉽다.
진단과정에서 신체검사가 유용한 역할을 할 수 있는데 기계적 검사가 발달하며 상당히 홀대해왔다.
첨단 검사는 판단에 도움을 줄 뿐, 그 자체가 절대적인 무엇은 아니다.


그러면 이 책을 읽고 뭘 해야 될까? 

환자를 진단함에 있어 직관적으로 판단하는 것도 좋지만, 증상 하나하나에 대한 질환을 모두 나열해서 소거법으로 지워나가는 정밀한 진단을 행하고, 단순히 문진으로 끝내거나 기계적 검사 결과에만 의존하지 말고 한계가 느껴질 땐 오히려 시진 청진 촉진 등의 신체검사를 시행하며, 언제나 여러 질환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지면 되겠다. 

겨우 한 문장, 아주 쉽지만, 늘 실천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냥 이렇게만 끝내면 아쉬우니까 한 가지 재밌었던 부분을 꼽자면 '인터넷 검색을 통한 진단' 부분이다. 요즘은 보건소에만 있어도 보기 쉬운 경우인데 사람들이 자기가 아플 때 그 증상을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진단명을 가져온다. 심지어는 그에 맞는 약재나 처방을 언급하며 지어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들이 찾아온 진단명은 얼마나 정확할까? 

리사 샌더스는 이런 인터넷 검색을 통한 진단이 얼마나 정확한지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호주에서 연구한 결과 구글은 58%의 진단 정확도를 보였다고 한다. 의사로서는 낙제점이지만 구글이 진단을 위해 개발된 웹사이트는 아니므로 이 부분은 차치하고, 더 재밌는 것은 희귀한 질환에 대해서는 구글의 진단율이 훨씬 높았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구토, 복통, 설사'를 입력하면 온갖 종류의 장염과 식중독 등이 나오겠지만 '따뜻한 샤워 완화, 구토'를 입력하면 '카나비노이드 과다 구토증'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의사의 두뇌보다 구글의 검색이 더 유용할 수 있는 하나의 사례이다.

앞으로 진단의 영역은 점점 더 기계화될 것이다. 저자는 아무리 그렇다 해도 복잡한 증상을 해석해서 진단을 내리는 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근래 첨단 기술의 발전 속도와 인공지능에 대한 SF영화 등을 볼 때, 의학도 곧 로봇과 자동화의 세계로 진입하리라고 생각하는 건 나만의 설레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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