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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송 Dec 10. 2015

43개월 아들 데리고 세계여행 하기

이정현, <미친 가족, 집 팔고 지도 밖으로> 독후감

넘쳐나는 여행기 중 한 권을 고른 이유


요즘 출판사에 가장 많은 투고가 이뤄지는 글을 꼽으라면 아마 여행기일 것이다. 이 사실은 팟캐스트 <뫼비우스의 띠지>에서도 언급한 바 있다. 여행을 하고, 직접 찍은 사진 아래 감상을 적어 출판사로 오는 글이 너무 많으니 어지간하면 투고를 자제해 달라고 반농담을 할 정도였다.

필자도 여행기를 잘 읽지 않는다. 여행은 순전히 개인적인 경험이며, 그 감동을 사진과 글로 전달하려 한들 그저 종이 위의 잉크로 보는 독자에게는 잘 전달되지 않는다. 저자에게도 노력 낭비, 독자에게도 시간 낭비가 되기 쉬운 게 여행기인 셈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산 것은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가진 공통적인 고민에 대한 해답을 보여주지 않을까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 고민이란, 바로 '결혼하고서도 계속 여행을 다닐 수 있을까?'다.


비범한 부부의 만남, 결혼, 여행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특히 장기여행)은 나이를 먹으면서 한 가지 고민이 생긴다. 많은 사람들이 하는 결혼을, 언젠가는 나도 할 텐데, 그 후에도 자유롭게 여행을 다닐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다. 아무리 가볍게 생각한다 해도 결혼은 평생을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타인과 삶의 동반을 약속하는 것이며, 거기에는 당연히 시간과 책임 등이 따르게 마련이다. 그러니 홀몸으로 배낭 둘러메고 훌쩍 떠나는 여행에 장애가 생기리라고 보는 게 당연하다.

필자 역시 여행을 무척 좋아하고, 한 번 출국하면 될 수 있는 한 국외에 오래 머무르길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항상 그에 대한 고민을 해 왔다. 그래서 이 책을 샀는데, 결론적으로 이 책은 '도움이 안 된다.'

왜?

일단 저자의 출발점이 다르다. 여행을 다른 누구보다 좋아하며, 여행을 위해 직장을  그만두고 집을 팔아치울 용기가 있으며, 심지어 43개월 된 아이가 있음에도 동반시키길 주저하지 않는다. 한 마디로 비범한 여행자다.

어드밴티지는 또 있다. 아내를 여행지에서 만나 결혼까지 이어진 케이스다. 아내도 여행을 좋아하고, 여행을 가는 것에 대해서는 남편과 합이 잘 맞으리라고 충분히 짐작이 가능하다.  그런고로 이 책은 평범한 여행자의 고민을 해결하는 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단순 여정의 나열을 피한 내용 전개


비록 이 책이 실질적인 고민 해결에는 도움이 되지 못하지만, 그래도 내용은 재밌다. 물론 여행기란 내가 가보지 못한 나라의 새로운 문물과 문화, 그리고 여행자의 경험을 다루니 만큼 재미없는 경우가 드물지만 그래도 많은 나라를 여행한 것 치고는 내용이 쓸데없이 장황하지 않고 에피소드별로 잘 끊어서 표현했다.

사진도 많이 실려 있는데 사진마다 개별적인 상세 설명이 붙어 있지 않고 뛰어난 풍경만 양쪽 페이지를 이어서 보여줄 때가 있다. 예를 들면 이과수 폭포나 토레스 델 파이네(트래킹 코스) 같은 곳들이다. 잘 찍은 사진은 아니지만, 직찍 특유의 생동감이 묻어난다.


남미에다 숙소를 차려버린 저자


여행기는 미국에서 시작해 캐나다를 거쳐 중미로 내려가고, 멕시코 과테말라 등을 거쳐 남미로 내려가,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에콰도르 페루 칠레 파라과이 브라질 아르헨티나로 이어진다. 무척 길고, 책의 페이지도 400장 남짓하지만 술술 넘어가는 여행기의 특성상 금세 읽을 수 있어 부담스럽진 않다.

43개월 아기를 데리고 떠난 부부는 남미 여행의 끄트머리에서 고민한다. 이대로 유럽으로 갈 것이냐? 아니면 아직 아쉬움이 남는 남미에 머물 것이냐? 그러다 비범한 부부는, 역시 비범하게 아르헨티나에 숙박업소를 차려 버린다.


흔치 않지만 그래서 재밌는 여행기


전에 남미에 관한 다른 여행기를 읽은 적이 있다. 제목이 <남미, 열정의 라세티>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건 순전히 남자 혼자서 남미를 여행한 후에 쓴 책이었다. 그 책이 남미를 여행하는 것에 대해 개략적인 느낌을 주었다면, 이 책은 보다 생동감 있고 유니크한 경험을 전해주었다.  어린아이를 데리고, 부인과 함께, 중고 차량을 사서 직접 운전하며, 캠핑장과 게스트하우스를 전전하면서, 북미에서 남미까지 간 이야기. 이보다 비범한 여행기가 흔치는 않을 것이다. 평범한 여행기에 질렸다면 펼쳐 보자. 그리고 훗날 직장을 박차고 나가 배우자와 세계로 떠나는 상상을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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