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털사이트를 둘러보는데 하나의 뉴스 헤드라인이 크게 확대되어 보였다.
"카카오 카풀 반대"…국회 앞에서 택시기사 분신 사망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렸다. 나는 기사를 클릭하며 기도했다.
'제발 우리 아버지는 아니기를...'
우리 아버지는 택시기사다. 지방의 광역시에서 택시를 운전한 지 이십 년 가까이 되셨다. 아버지가 택시 운전을 하게 된 것은 IMF 이후였다. 아버지의 실직으로 인해 그럭저럭 살던 우리 집은 IMF에 직격타를 맞은 다른 집처럼 가난해졌다.
그전에 아버지는 운송회사의 지사장이셨다. 지사장이라고 해도 사무실에서 앉아서 일하는 것은 아니었다. 엄한 것이 가장으로서의 미덕이라 생각하시는 아버지는 나를 일터로 데려가신 적이 별로 없다. 딱 한 번 나를 데려가 보여주신 것이 11T 트럭이었다. 초등학교 2학년이던 나는 아버지의 트럭 뒤쪽 화물 적재칸을 보고 이렇게 말했었다.
"아빠, 여기 수영장만큼 커요!"
그 뒤로 나는 아버지의 트럭을 다시 보지 못했고, 아버지는 작은 택시회사의 기사가 되셨다.
사장에서 기사가 되는 일이 어떤 아픔을 가져다줄지 어린 나는 알지 못했고 지금도 잘 짐작하지 못하겠다. 다만 아버지는 언제나 그래 왔듯이 가장 먼저 일어나 아침을 먹고 출근하셨고 우리 가족이 모두 잠들었을 때나 집에 돌아와 살금살금 걸어 다니며 씻고 주무셨다.
그러나 택시기사가 벌 수 있는 수입은 많지 않다. 회사에 내야 하는 납입금만 한 달에 수백만 원이라, 하루 종일 운전을 해도 손에 남는 건 별로 없었다. 그래서 우리 집은 가난했고, 나는 급식비를 내지 못해 배식 도우미를 하기도 했다. 나는 아버지가 뼈 빠지게 일하면서도 우리 집이 가난한 게 못마땅했고 한 번은 아버지께 불평을 하기도 했다. 택시기사 할 시간에 다른 일을 했으면 벌써 고급기술자가 되어서 떼돈 벌지 않았겠느냐고. 아버지는 허허 웃으며 당신의 나이에 새로운 기술을 배우거나 일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하셨다. 그렇게 이십 년이 흘렀다.
어떤 직업을 가졌어도 그러셨을 것 같지만 아버지는 택시기사라는 직업에 대해서 딱히 좋다 나쁘다를 구분하지 않으신다. 택시기사가 많은 사람들에게 승차거부나 합승 등으로 인해 욕을 듣는다는 것은 알고 계시지만 당신이 그러지 않으면 된다고 하신다. 항상 내가 고향에 내려가면 최근에도 외국인 노동자 단골이 한 명 생겼다고 자랑하신다. 한국말을 잘하지 못하는, 현대의 하청의 하청의 하청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터미널로 공항으로 태워주고 감사 인사를 듣는 것이 아버지의 직업적 보람이다.
보수적이고 깐깐하신 우리 아버지, 촛불집회에 다니는 내가 너무 정치적이라며 나무라시던 아버지가 딱 한 번 집회에 나가신 적이 있었다. 평소 전화도 잘하지 않으시던 분이 내게 전화를 걸어 서울에 오니 네 생각이 나더라 하셨다. 어쩐 일로 서울에 오셨어요 여쭈니 택시 노동조합에서 파업을 해서 거기에 참석하러 오셨다고 했다. 수입에 직결된 문제라서 오셨나? 그렇게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아 웬일로 집회를 다 가셨냐고 여쭈니 아버지 회사에선 당신께서 노조위원이라 참석했다고 하셨다. 그런 분이시다. 기업이 있어야 노동자가 있고, 국가가 있어야 국민이 있다고 생각하시지만 그래도 맡은 바 책임은 다 하려고 하시는.
그런데 그날 SNS와 뉴스에 달린 댓글은 참으로 잔인했다. 그날은 아버지뿐만 아니라 택시기사들이 총파업을 하면서 서울시내에서도 택시가 전면 운행중단을 했었는데 교통체증이 덜해져 너무 좋았다면서, 계속 파업을 해달라고 하는 댓글이 대다수였다. 그리고 어차피 승차 거부하는 택시들 필요도 없으니 싹 사라져 버리라는 댓글도 많았다. 나도 서울에서 술을 마시고 집에 가려할 때면 늘 택시를 잡지 못해 골머리를 앓았었다. 그래서 그 마음이 이해는 갔지만 모든 택시가 그러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저렇게 자기 입장에서만 이야기를 할 수 있나 싶었다.
뉴스 기사에서 내가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은 돌아가신 분의 성이었다. 최 씨였다. 나는 잠시 속으로 그분의 명복을 빌었다. 내가 그분의 장례식에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분을 아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분도 누군가의 자식이자 남편이자 아버지셨다. 누군가는 그분의 가족으로서 불에 탄 처참한 시신을 안고 울 것이다. 얼마나 억울하고 답답했기에 스스로 몸에 불을 붙이셨나, 그렇게 생각하며 명복을 비는 것이 인간으로서의 도리다. 게다가 그분이 승차거부를 했는지, 합승을 했는지, 바가지를 씌웠는지 누가 아는가? 소수의 모범적인 택시기사였을지 누가 아느냔 말이다. 설령 승차거부를 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택시업계의 관행을 바꿀 수 있도록 법 제정을 요구할 일이지 고인의 죽음이 별 것 아닌 일, 심지어는 속 시원한 일이라고 치부할 것은 아니다.
오늘 기사에 달린 베스트 댓글 하나를 인용하겠다.
제발 카풀 반대하는 것들 전부 분신해서 자살했으면 소원이 없겠네 ㅋㅋㅋㅋ 택시적폐들 전부 다 뒤져라!!!
생계가 곤란해질 것이 걱정되어 스스로 몸에 불을 붙일 정도의 절박한 처지에 있는 사람의 죽음을 비웃는다면 당신은 그보다 나은 인간이 되는가? 얼굴이 보이지 않는 공간이라고 해서 증오가 너무나 적나라하게 맨살을 드러낸다. 나는 당신에게 최소한 인간이 될 것을 요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