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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송 Dec 19. 2018

[노답민국] 피해자로 살아온 여성들

남녀 갈등 (1)

피해자로 살아온 여성들

김지영의 위로는 언니가 있고, 아래로는 남동생이 있다. 그녀가 태어나고 1년 후 원래대로라면 태어났어야 했을 김지영의 여동생은 여자아이라서 낙태당했다.
대중교통에서의 성범죄. 고등학교 때 자기를 짝사랑해서 쫓아다니는, 같은 학원에 다니던 남학생 때문에 남성 공포증이 생겼고, 피하지 못한 여주인공이 잘못이라고 하던 작 중 아버지의 관점
회식 자리에서의 성희롱
직장 내 화장실 몰카 범죄

 대한민국을 강타한 페미니즘의 성서, <82년생 김지영>의 내용 일부다. 물론 이 책은 소설이고, 여성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태들만을 모아놓은 거라 그 자체를 현실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20세기까지만 해도 대한민국 여권은 확실히 남자에 비해 좋지 않았다. 낳을 때부터 남아를 선호하는 경향이 짙었고, 여자는 대학에 갈 필요도 없고 직장을 가질 필요도 없이 그저 시집만 잘 가면 된다는 사상이 만연했다. 그밖에도 성희롱을 비롯해 여자들이 피해자로 살아왔다는 증거로 제시할 것은 많다.


그러나 여자만 피해자일까

 초등학교 4학년 때쯤이었을 것이다. 나와 친구들은 청소시간에 하라는 청소는 안 하고 교실을 뛰어다니며 먼지를 피워 올리고 있었다. 갑자기 나타난 선생님은 버럭 화를 내며 우리 모두에게 엎드려뻗쳐를 시켰다. 그리고 빗자루를 들고 오며 한마디 하셨다.

 "여자애들은 저기 가서 무릎 꿇어."

 우리, 남자애들은 엉덩이를 열 대씩 얻어맞고도 청소가 끝날 때까지 한쪽 구석에 엎드려 있어야 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여자애들은 맞지 않았고, 남자애들은 발로 차이고 슬리퍼로 뺨을 맞았다. 나는 속에서 천불이 났다.

 다행히 나는 남중 남고로 진학해 더 이상 남자라서 더 맞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아직도 나는 그때의 억울함을 기억한다. 남자 엉덩이는 무쇠고 여자 엉덩이는 두부인가? 도대체 왜 남자만 맞아야 했을까. 그때의 선생님을 만나 물어보면 아마 기억도 하지 못할 것이다.

 안타깝게도 남자에 대한 역차별은 단순히 육체적 체벌에서 끝나지 않는다. 대학교에 갔더니 무거운 건 남자가 들라했고, 술 강권하는 선배들도 남자만 죽어라 먹였다. 거기서 "왜요?"라고 물으면 쪼잔한 남자가 되는 건 순식간이다. "아유, 쪼잔해."를 육성으로 듣는 일은 생각보다 매우 기분이 나쁘다. 순간적으로 얼굴이 빨개지고 귀가 화끈거릴 정도로 수치심을 느끼지만 거기서 한마디 더하면 사회에서 매장당할 기세라 입을 다무는 수밖에 없다.


뭐, 군무새?

 남자들은 예로부터 군대에 대해 남성들 사이에서, 상호 인정을 해 왔다. 회사에 들어갈 때도 병장 만기 전역을 했다고 하면 남자 상사들은 "고생했네." 하며 어깨를 두들겨 주고, 약간의 월급을 더 주었다. 병장 만기 전역이란 말은 갖은 고생을 최소 2년간 감내할 수 있고 여러 사람이 함께 생활하는 곳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증거였기 때문이다. 남자들이 술만 마시면 군대 이야기를 하는 것도, 같은 전역자들이 아니면 그 참담한 인권 유린의 현장을 이해하지 못하니 서로 그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트라우마를 해소하는 것이다.

 그런데 일부 여자들은 남자에게 호봉을 더 쳐주는 것도 싫고, 군인이 휴대폰을 사용하는 것도 싫고, 아픈 사람이 공익으로 빠지는 것도 싫고, 결정적으로 군대 갔다 왔다고 유세 떠는 게 싫다며 '군무새'라는 말을 만들어냈다. 할 줄 아는 게 군대 얘기뿐이라고? 그들에게 묻고 싶다. 2년 동안 강원도 산골의 좁은 건물에 갇혀서 매일 청소와 빨래만 해야 한다면 2년 뒤에 조용히 입 다물고 살 자신이 있는지. 그들은 아마 죽을 때까지 그 2년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지금 남자들이 그러하듯이 말이다.


서로 힘든 부분이 있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 성별에 의해 힘든 부분이 있다. 한국에서 성별 때문에 각자 힘든 점을 생각해 보면 그 힘든 부분이 서로 극명히 다르다.

 남자라서 가장 불이익을 받는 점은 바로 군대다. 20대는 누구에게나 소중하다.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해 본격적으로 사회생활을 하기 이전에 가질 수 있는 마지막 자유시간이기도 하고, 육체적으로 가장 건강하고 활기찰 나이며,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패기가 있을 때다. 하지만 남자라는 이유로 2년을 국가에 바쳐야 한다. 내 마음대로 잘 수도 없고, 먹을 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는 곳에서 2년을 보낸다. 미셸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 우리가 사회에서 강요받는 규율과 그로 인해 만들어지는 생활이 감옥과 무엇이 다른지 생각해 보라고 했다. 군인은 새벽 6시에 기상해서 7시에 아침을 먹고 훈련 등 일과를 보낸 지 저녁 10시에 취침한다. 화장실을 갈 때는 자살이 염려되어 누군가와 같이 가야 하고, 견디다 못해 탈영이라도 하면 평생 쫓기는 범죄자가 된다.

 여자는 육체적으로 약자라는 점, 그리고 아기를 낳기 위한 인체 구조를 가졌다는 점이 고통이 된다. 흔히 여행을 가려면 돈과 시간만 있으면 된다고 하지만 우리 누나는 돈과 시간이 있어도 혼자서는 여행을 가지 못한다. 한국이든 외국이든 안전하지 못하다는 불안감이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서울에, 전철역 근처에 살기 때문에 밤에도 별로 긴장하지 않고 돌아다니지만 육체적으로 남자보다 약하기 때문에 범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은 변치 않는다. 비단 우리 누나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범죄자는 기본적으로 자기보다 약한 상대를 물색하고, 그래서 여자와 노인 그리고 아이는 쉽사리 범죄의 표적이 되곤 한다. 

또 생리도 평생을 짊어지고 가기엔 너무나 무거운 짐이다. 매달, 그것도 하루도 아니고 길게는 일주일씩 복통을 겪는다. 사실 여자 친구를 사귀기 전, 남중 남고를 다니며 오직 남자만 접하고 살았던 나는 생리가 그렇게 힘든 건지 전혀 몰랐었다. 평소 너무나 상냥하던 여자 친구가 오늘은 절대 아무것도 못한다며 서둘러 집에 가고, 전화도 받지 않는 것을 보고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그 뒤로 알고 보니 생리통이 심한 사람은 일 년에 두세 번씩 응급실에 실려가기도 하고 대부분은 약을 먹고 통증을 견뎌가며 학교도 오고 놀러도 가는 것이었다. 나는 남자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한편 진심으로 피할 수 없는 생리현상을 가진 여자들을 동정했다.

 이외에도 서로 다른 부분에서 삶은 고통스러워진다. 남자는 회식자리에 끝까지 남아야 하고, 여자는 성희롱을 당할 때가 있고, 남자는 혼수로 집 장만을 요구받고, 여자는 언제나 다이어트를 해야 하고... 그러나 이런 부분을 서로 완벽하게 같게 만들 수 없다. 물리법칙이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는가. 세상은 언제나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벽한 균형을 원한다면 당신이 이상주의자라고 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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