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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송 Dec 20. 2018

[노답민국] 빨갱이로 몰리면 죽는 나라에서 무슨 좌우

좌우 갈등 (1)

국제 정세에 의한 분단국가

 참 힘없는 나라였다. 일본에 강제로 점령당한 조선 이야기다. 그러나 국가는 힘이 없었을지언정 우리의 조상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집팔고 땅팔고 목숨 바쳐가며 대한독립을 위해 싸웠다. 어느 정도 독립에 가까워졌다 생각했을 때, 세계대전은 끝났고 일본은 패퇴했다.

 독립은 했으되 우리는 홀로 서 있지 못했다. 북쪽은 소련이, 남쪽은 미국이 쥔 채 서로 땅을 더 차지하겠노라 으르릉대고 있었다. 소련의 우방이자 공산주의를 따르는 중국, 그리고 미국의 우방이자 자본주의를 따르는 일본 사이에서 작디작은 한국 땅은 반으로 쪼개질 수밖에 없었다.

 단지 한반도에 선을 긋고 "이제부터 북쪽은 공산주의, 남쪽은 자본주의 합시다."라고 한 게 아니었다. 형제들은 총칼을 들었고 서로를 향해 겨누었다. 자주독립을 위해 싸우던 투사들도 이념 논쟁에 휘말려 북한으로 도망가고, 납북되고, 남한에서 숙청되는 난리를 겪었다. 그런 피바람 속에서 대한민국은 남한과 북한으로 쪼개지고 말았다.


빨갱이로 몰리면 죽는 나라에서 무슨 좌우

무장간첩들이 당시 속사국민학교 계방분교 2학년인 이승복(당시 10세)에게 '남조선(남한)이 좋으냐, 북조선(북한)이 좋으냐'고 질문하자 이승복은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했고, 격분한 공비들은 대검으로 이승복의 입을 찢어 살해했다. 이후 발견된 이승복의 시신은 오른쪽 입술 끝부터 귀밑까지 찢어진 상처, 뺨 중간과 귀 근처에 +자 형태의 상처 2개가 뚜렷한 상태였다.
1974년 학생들의 대규모 반유신 저항 운동을 분쇄하고자 긴급조치 4호를 선포하고 4월 25일 중앙정보부장 신직수를 통해 학생 데모의 배후에는 공산당의 조종이 있었다는 민청학련 사건을 발표한다.
1975년 4월 8일 대법원에서 인혁당 및 민청학련 사건 관련 피고인 36명의 상고를 기각, 선고 바로 다음날인 4월 9일에 이들 8명에 대한 형이 집행되었다. 형량이 확정된지 겨우 18시간만이었다.
2002년 9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 의해 이 사건이 일부 조작된 정황이 밝혀졌고, 유족들은 12월 서울중앙지법에 재심을 청구하였다. 사법부 내에서도 이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졌고, 결국 2005년 다시 재판이 시작되어 2007년에 사형 선고가 내려진 8명에게 증거 불충분에 의한 무죄 선고가 내려졌다.


 한 번 갈 길을 정했으면 뒤도 안 돌아보고 가야 한다. 누가 한 말인지 몰라도 북한과 남한은 철저히 그 말을 따랐다. 북한에선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추종하는 기색이 있으면 쏘아 죽였고, 남한에선 공산주의를 추종하는 기색이 있으면 쏘아 죽였다. 서로간에 그렇게 쏘아 죽인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헤아릴 수조차 없고 아직도 그 수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공산당이 싫다고 하면 어린 아이까지 죽이는 북한과 국경을 맞대고 살고 있으니 좌우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되겠는가. 좌는 무조건 나쁜 것, 끔찍한 것이 되고 우는 무조건 옳은 것, 더 나은 것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리영희 선생이 말씀하셨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고. 세상에 해만 있고 달이 없으면 모두 타 죽을 것이며 달만 있고 해가 없으면 어떠한 작물도 자라지 못해 굶어 죽을 것이다. 경제적인 면에서 좌파의 분배와 복지는 빈자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며, 우파의 성장은 사람들이 쓸 수 있는 자본의 총량을 키우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아주 오랫동안 좌파는 그저 나쁜 것인 줄 알았고 마르크스는 허황된 이상주의자라고만 배웠다. 그러니 아직도 많은 사람이 기업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말을 진리처럼 받들고 살고 있는 것이다. 그 아래서 죽어가는 사람들의 목숨은 무시한 채 말이다.

 결론적으로 이러한 편향 교육(이자 세뇌) 때문에 한국 사람 대부분은 아직도 좌, 우, 진보, 보수가 뭔지 잘 모르고 심지어 공산주의의 반대말이 민주주의인 줄 아는 사람도 넘쳐난다. 경제적인 면에서 공산주의와 자본주의가 대척점에 서 있고, 사회적인 면에서 민주주의와 왕정(혹은 독재주의)가 대척점에 서 있다는 걸 못 배웠기 때문이다. 이건 다 교육 방침을 그렇게 만든 정부의 탓이라고 할 수 있지만 미국의 보호 아래 성장해 오면서 그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을 어떻게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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