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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송 Feb 06. 2019

당신은 참치인가 조개인가

물고기적 자아분석

얼마 전 생리학 책을 읽고 있을 때다. 근육의 운동 원리에 대해 공부하고 있는데 한 문구가 눈을 사로잡았다.

적근은 강한 힘을 낼 수 있지만 쉽게 지치고(짧은 시간 전용), 백근은 지구력이 좋지만 강한 힘은 낼 수 없다. 그리고 두 근육의 비율은 사람마다 다른데 선천적으로 정해진다.
아, 그렇다면 장거리 달리기를 잘할 사람과 단거리 달리기를 잘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겠구나! 장시간 하는 운동인 마라톤이나 수영에 유독 약한 나 자신을 이해함과 동시에 생각의 가지는 조금 더 멀리 뻗어나갔다.

‘적근과 백근의 비율만 선천적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겠지. 모든 것은 다 그렇게, 태어날 때 정해지는 게 아닐까.’


국가의 틀

최근까지도 나는 외국여행을 하다 왔다. 마지막에 들른 나라는 지구 중심을 두고 한국과 정반대 편에 있다는 나라, 아르헨티나였다. 일본부터 아르헨티나까지 많은 나라를 여행하고, 캐나다에선 1년을 살기도 하며 나는 지구 상에 있는 나라가 모두 참 다르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냥 외양이 다르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사고의 구조가 달랐고, 과정이 달랐다.

예전에 한 다큐멘터리에서 서양인과 동양인의 사고를 비교한 적이 있다. 예를 들어 소, 돼지, 우유, 삼겹살을 주고 그룹을 지으라 하면 서양인은 소와 우유, 돼지와 삼겹살을 묶는다. 동양인은 소와 돼지, 우유와 삼겹살을 묶는다. 서양인은 동물-생산품이라는 사고를 한 것이고, 동양인은 동물끼리-음식끼리라는 사고를 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숱하게 많은 차이를 보여주었었는데 그만큼 서양인과 동양인의 사고방식은 다르다.


가깝지만 먼 한중일 삼국

그렇다고 동양인의 사고 구조가 다 같은 것도 절대 아니다. 예를 들어 한중일 사람을 외양으로 구분하지 못하는 서양 사람들도 관광객 중 중국인이 가장 시끄럽고 일본인이 가장 공손하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행동은 사고와 문화에서 비롯하는 것이므로 우리를 잘 모르는 서양인의 눈에도 한중일의 문화 차이가 드러나는 것이다.


한국에서 태어났다는 것의 의미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힘들다. 그래서 한국인으로 태어난 내가 한국인이 어떤 특성을 갖는지에 대해 말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도 어느 정도 두드러진다 싶은 것이 분명히 있긴 있다.

예를 들면 ‘튀는 인간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심리다. 군대 때문인지, 아니면 사회가 전체주의에 짓눌려 있어서인지 한국인은 남들과 달라지는 것을 상당히 두려워하고, 우리와 다른 사람을 보았을 때 꺼려한다. 옷 한 가지가 유행하면 길이 전부 그 옷으로 뒤덮이는 것은 분명 개성을 존중하는 유럽과 북미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현상이다.

자기 자신을 높이기보다는 낮추려고 드는 경향도 있다. 이런 경향은 일본에서도 비슷하게 발견되지만 중국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유교 문화라고 보기는 좀 힘들 것 같고, 원인은 잘 모르겠다. 전통 유교에서조차 그다지 엄하지 않았다는 장유유서를 엄하게 따지는 사회라서 그렇지 않을까.

이외에도 우리가 잘 느끼지 못하더라도 지리학적으로 반도지만 사실상 섬나라라서 나타나는 특성도 있고, 몇 가지 더 있지만 자세한 것은 심리학 책을 참조하기 바란다.


자식이 공부 못한다고 나무랄 권리가 있을까

나는 학창 시절 줄곧 전교 1등을 도맡아 하는 우등생이었다. 그래서 친구들을 보고 ‘왜 1등을, 아니 10등도 못 하지?’ 하는 의문을 가진 적도 있었다. 나에겐 그게 숨 쉬듯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300명의 동급생이 있으면 1등부터 300등까지 고르게 생겨난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1등을 제외한 나머지는 집안에서 부모님께 잔소리를 들을 확률이 높다. 공부 못하고 싶어서 못하는 게 아닌데 잔소리까지 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과연 부모들에게 그럴 자격이 있을까? 결론적으로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는 이미 태어날 때부터 정해졌다고 보는 나로서는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내가 공부를 잘하는 이유

우리 집에는 나 말고도 공부 잘하는 사람이 꽤 있는 편이다. 큰고모네 삼 남매는 첫째가 약사, 둘째가 행정고시 합격자다.(이 집에는 경상남도 예비고사 수석이 있었다.) 나는 한의사고, 작은아버지네 자매는 한 명은 교사, 한 명은 공무원이 되었다. 이 정도면 기본적으로 우리 집 사람들이 머리가 좋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따지고 보면 한의대 동문들 중에 부모님이 의료인이거나 교사, 공무원인 경우가 제법 많았다. 6년제 사립대를 보낼 재정의 문제도 있겠지만 아이들 상당수가 부모의 좋은 머리를 물려받았다고도 볼 수 있는 셈이다.

만약 자기 자식이 공부를 못해서 속상하다면 나무라기 이전에 최소한 한 번쯤 집안 내력을 생각해보자. 집에 누구도 공부 잘하는 사람이 없다면, 그건 부모가 욕심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누구도 조개가 참치 되길 기대치 않는다

그래도 부모들은 여전히 자식이 공부를 잘해 좋은 직업을 갖고 편안히 살아가길 바랄 것이다. 하지만 좋은 대학 간다고 꼭 잘 사는 것도 아니고, 괜찮은 직업이 행복한 삶과 동의어인 것도 아니다.

이쯤에서 내가 제안하고 싶은 것은 자식들을(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본인을) 해양 생물에 대입해 보라는 것이다.

바다에는 숱하게 많은, 그리고 다양한 생물이 살아가고 있다. 손가락만 한 멸치, 투명하게 떠다니는 해파리, 집을 이고 다니는 소라, 집채만 한 고래, 꼼짝 않는 조개 등 어느 하나 비슷한 점이 없는 것들이 함께 살아간다.

멸치를 키우면서 고래만큼 자라기를 기대하는 사람은 없다. 조개를 키우면서 어느 날 참치가 되길 바라는 사람은 없다. 멸치 중에도 덩치가 큰 것은 있겠지만 그렇다 한들 고등어만큼도 커질 수 없고, 조개 중에도 종종 움직이는 것은 있겠지만 참치처럼 쏜살같은 것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누구나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참치와 조개 중 어느 것이 완벽하게 낫다고 하기도 어렵다. 참치는 크고 강하지만 엄청난 양의 먹이를 섭취하지 않으면 죽을 것이고, 조개는 작고 느리지만 단단하고 안전한 집안에서 조용히 살아간다.


조금 더 행복해지는 법

나는 우리가 ‘인간’으로서 ‘동종’이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가 많다고 본다. 어떤 사람은 원숭이처럼 나무를 잘 타고, 어떤 사람은 새처럼 좋은 눈을 가지고, 어떤 사람은 나무늘보처럼 한 군데서 꼼짝하지 않는 습성을 지니고 살아간다. 모습은 두 발로 선 머리에 털 난 짐승으로서 같지만 실은 천차만별의 개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 개성이란 가장 앞에서 말했듯 태어날 때 이미 다 주어진 경우가 많다. 나는 아마 태어날 때 왕성한 식욕, 그 못지않게 왕성한 호기심, 높은 집중력, 뛰어난 암기능력 같은 걸 타고났다. 반대로 충분히 갖지 못한 것은 운동을 할 때의 근력과 지구력, 남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 등이 있다.

예전에는 갖지 못한 것을 두고 불만을 갖기도 했다. 왜 남들에게 있는 것을 난 갖지 못했는가! 그러나 나는 남들이 갖지 못한 것을 가졌고, 원래 모두 가진다는 건 불가능한 법이다.

그러고 보면 20대 초반까지만 해도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구호를 상당히 믿고, 또 가슴에 새기고 살았던 것 같다. 물론 믿고 노력하면 그러지 않는 것보다 나의 운동 능력이 좋아지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시간에 이미 내가 가진 지적 능력을 더 발휘하는 편이 훨씬 더 쉽고 삶에 유익할 것이다. 나는 공부하는 걸로는 평균을 상회하지만 운동하는 걸로는 그럴 수 없는 근본을 갖고 있다는 것을 지금은 알기 때문이다.

이렇게 내가 어떤 물고기인지 생각하고 나면 한결 마음은 편해지고 앞으로 가야 할 방향은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행복하고 싶은가? 당신이 어떤 물고기인지부터 찾아내도록 해라. 그건 어쩌면 부모님과 조상들이 무엇을 잘해 어떤 직업을 가졌었는지 조사하는 것부터 시작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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