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송 Jan 30. 2019

사람들은 내게 왜 돌아왔냐고 묻는다

500일의 해외생활 이후

1년의 캐나다 생활과 4개월의 남미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은 멀었다. 지구 반대편에 있었기에 비행기를 세 번이나 타야 했고, 산티아고로부터 9시간과 13시간의 비행을 차례로 거친 후에야 검은 머리의 사람들이 가득한 도쿄 나리타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미 몸은 많이 지쳐 있었지만 마지막 한 번의 비행기를 더 타고 도착할 곳을 생각하니 절로 힘이 났다.

무려 일 년 반 만에 한국에 돌아가는구나!

나는 공항으로 마중 나오실 아버지를 뵈면 처음에 어떻게 말을 꺼낼까 생각했다. 워낙 무뚝뚝하신 아버지라 감동적인 재회의 장면이 만들어지진 않을 거라 예상했다. 다만 포옹 정도 하지 않을까 했는데, 막상 공항에서 만나 뵌 아버지는 불쑥 손을 내미셨다. 악수가 아버지의 최대의 애정표현이었던 것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아버지께선 이야기를 나누다 이런 질문을 던지셨다.

거기 계속 살지, 왜 돌아왔어.

물론 뒤에 허허하는 웃음이 덧붙었기에 나도 그저 웃어넘기고 말았다. 돈이 없으니 돌아와야죠 하하,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한국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접한 친구들이 이상하게 같은 질문을 던져왔다.

"근데 왜 돌아왔어? 난 네가 너무 행복해 보여서 다시는 안 돌아오는 줄 알았어."

한 번 들으면 무심하게 지나칠 수 있지만 세 번 들으니 왜 그런 말을 듣나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내가 정말로 그렇게도 행복해 보였던 걸까? 한국에서 살고 있을 때보다 한국을 떠나 있을 때 스스로 더욱 행복했던가?

잠깐의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그렇다."이다. 한국을 떠나 캐나다에 사는 동안, 그리고 남미 여행을 하는 동안 나는 행복하다고 느낀 시간이 아주 많았다. 그리고 그 행복은 다양한 요인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우선 외국에 있다는 점이 내가 특별한 존재가 된 것처럼 느끼게 해 주었다. 친구들이 모두 한국에서 고만고만한 일을 하며 비슷한 삶을 살아가고 있을 때, 나만은 이역만리 떨어진 캐나다에서 인생에 특별한 족적을 남기고 있었다.

또 한국에서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요인들에서 벗어났다. 첫째로 가족과 너무 자주 연락할 필요가 없었다. 가족은 물론 소중한 것이지만 때로는 너무나 가까운 관계로 인해 불편을 야기하기도 한다. 그런데 시차가 12시간 이상 나는 외국에 나가 있으니 연락이 어려워서 자연스레 거리를 두게 되었고, 그게 내게는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주었다. 둘째로 미세먼지가 없었다. 야외활동을 즐기는 나로서는 숨만 쉬어도 피할 수 없는 미세먼지가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캐나다나 남미나 그런 오염에서는 자유로웠다. 셋째로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었다는 생각이 항상 있었다. 한국에선 이래저래 삶에 훈수를 두는 사람이 많아 홀로 결정을 잘 내리기가 어려웠는데 한국 밖에서 나는 내 삶의 오롯한 주인이었다.

물론 친구들은 이러한 사실까지 알고서 내게 그런 말을 한 것은 아니다. 단지 내가 페이스북에 올리는 근황 이야기를 보거나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멋진 여행 사진을 보고 그렇게 단정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하나의 색다른 결론을 내렸다.

내가 정말 행복해 보였다기보다는, 친구들의 삶이 늘 일정하게 흘러왔기에 그것이 고단하게 느껴졌을 뿐이라고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국 사람들은 굉장히 빨리 걷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