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까지의 희망이 '현실적'일까

모든 희망의 비현실성에 대하여

by 유송

조언을 구하는 사람을 마주하고 앉아 이야기 하다보면 무언가 찝찝한 기분이 마음의 깊은 곳을 건드릴 때가 있다. 내 딴에는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이런저런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면서도 무언가 석연치 못하다. 상대를 위하는 내 마음도, 그에 기반이 되는 내 지식도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어째서 이런 기분이 드는 것일까.

친구가 떠나간 후 오랜 시간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던 나는 겨우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지금 해 주는 조언이 친구에게는 과연 '현실적인' 것이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내내 숨죽이고 가라앉아 있던 탓이었다.

예를 들어 영어를 잘하고 싶어하는 친구가 있다고 하자. 이 친구는 무작정 내게 영어를 잘하고 싶다고만 했다. 나는 그에 대해 가장 기본이 되는 조언을 해 준다. 네가 단어를 아주 많이 아는 게 아니라면 우선은 기본적인 단어들을 아는 것이 중요하니 최소한 중학교 수준의 단어장 정도는 통째로 한 권 다 외우도록 해. 그러나 이 '기본적'이고 '현실적'이어 보이는 조언에는 어떠한 객관성도 담보되지 않는다. 다만 내 개인적 경험과 내가 사회적 통념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기반해 던지는 조언인 것이다.

친구는 하루 12시간을 일하는 매우 바쁜 삶을 살고 있을 수도 있다. 다른 일상 생활의 기억력은 다 좋은데 영어만 보면 갑자기 두뇌 기능이 저하되어 단어를 잘 외우지 못하는 특이 체질일 수도 있다. 이런 이들에게 하루 50개 정도의 단어를 외우라는 내 조언은 '비현실'이 되고, 친구는 내 조언을 폐기한다. 조언을 해 주는 내 마음은 따뜻했을 지언정 그것이 자기가 받아들일 수 있는 조언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리 스스로에게도 적용해 보자. 나는 '3년 안에 1억을 모으고 싶다'는 희망을 갖고 있다. 이 희망은 현실적일까 아닐까? 3년에 1억이면 1년에 3,300만원이고 12개월로 나누면 한 달에 275만원을 모아야 한다. 어느 정도 수입이 많은 나로선 불가능하진 않다. 대신 고정 지출이 얼마인지 파악하고 유동 지출을 얼마 이내로 제한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 나에겐 '현실적'인 희망인 것이다. 그러나 이 액수를 조금만 올려도 희망은 비현실이 된다. 1억 5천 만원을 모으고 싶다면 1년에 5천만원이고, 그러면 한 달에 400만원이 넘는 돈을 저축해야 하는데 내 수입은 이에 미치지 못한다. 그렇게 액수에 따라 희망은 현실적인 게 되기도 하고, 비현실적인 게 되기도 한다.

그러나 아이들에게는 어떠할까? 마지막으로 묻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연예인이 되고 싶어하는 초등학교 6학년이 있다고 하자. 이 아이에게 계속 그 꿈을 쫓으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테고, 연예인이 되는 것은 정말 극소수의 사람이니 포기하라고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조언을 하는 사람은 그 나름대로 기준을 갖고 있을 것이다. 적어도 연예기획사에 들어가기 위한 끼와 재능이 있어야 하고, 노력도 할 수 있어야 하고, 집에서 부모님이 그것을 지원해 줘야 하고... 그러나 그 모든 조건을 갖추고서도 연예인이 되는 사람이 있고 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따지고 보면, 희망에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둘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1년 뒤에 우주여행을 가고 싶다.'는 희망을 갖는다면 이것은 비현실일까. 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지 누가 알랴. 물론 '객관적'이란 이름의 주관적 잣대를 들이댄다면 그것은 지극히 비현실적인 일이다. 그러나 나는 노력을 해 볼 수 있다. 합당한 돈을 모으고, 펀딩에 도전해 보고, 사회적 이슈를 만들고, 우주여행을 주관하는 기업에 편지를 보내보는 등 그것이 진정 내 희망이라면 도전해 볼 수 있는 것이다. 그 뒤에는 무언가 남아도 남을 것이다. 우주여행이 되었든, 그것을 위한 1년치의 내 노력이 되었든.

마음 가는대로 희망을 갖고 살자. 나는 언젠가 모든 빚을 다 갚고, 자유롭게 여행하는 영혼이 되어 있으리란 것에 내 희망을 걸도록 하겠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오늘 열심히 돈을 버는 사람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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