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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송 Dec 21. 2015

기적적으로 다시 살아난 만화가의 투병기

무라카미 다케오, <죽다 살아났습니다요>

자살율도 높고 환자도 많은 시대다. 하지만 주변에서 실제 죽을 정도의 중병을 앓고 있는 사람 혹은 죽을 위기에서 살아난 사람을 본 적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필자 주변에서도 꼽아봐야 빙판길에서 차가 미끄러져 죽을 뻔 했다든가 헌혈 후에 잠깐 의식이 흐려져서 힘들었다던가 하는 게 전부다.

하지만 무라카미 다케오는 정말로 죽을 뻔 했다. 심정지가 왔었는데, 그것도 갑작스런 심근경색으로 인한 게 아니라 당뇨→신부전→심정지로 이어지는 복합적 증상이었다. 그렇다고 그냥 당뇨 환자였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어서, 그가 입원했을 당시 기록된 병만 해도 9가지 이상이었다.(심정지, 당뇨병, 당뇨병성 케톤산증, 패혈증, 횡문근융해증, 급성신부전, 뇌부종, 고암모니아혈증, 철결핍성빈혈 등)

처음에 무라카미가 입원했을 때는 그야말로 몸이 엉망진창으로 의식도 없었다. 그래서 거의 식물인간이나 다름없는 상태로 누워 지냈고, 의식이 돌아온 후에도 뇌부종이 생겨 한동안 환각을 비롯한 인지장애를 겪어야 했다. 하지만 가족과 의료진 그리고 친구들의 끊임없는 보살핌을 통해 점점 나아졌고 무라카미는 퇴원해 그간의 투병생활을 만화로 그릴 정도로 많이 회복하게 됐다.     


<죽다 살아났습니다요>는 일본의 사토리 세대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얻었다고 한다. 사토리 세대는 달관 세대라는 뜻인데, 득도한 것처럼 욕망을 억제하며 살아가는 젊은 세대로 우리나라의 88만원 세대와 연령이 비슷하다.

필자는 이 만화의 어떤 부분이 무심한 그들을 열광하게 만들었을까 생각해 보았는데, 모든 걸 내려놓음으로써 다시 한 번 인생을 시작하게 되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 아니었을까 싶다.

사토리 세대가 우리나라의 88만원 세대와 유사한 성장과정을 거쳤다면, 그들 역시 필히 어릴 때부터 과도한 경쟁에 시달렸을 것이다. 과도한 경쟁은 사람들에게 ‘포기는 실패’라는 관념을 심는다. 그래서 혼자서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 와도 괜찮은 척 버티는 연기를 하게 되는데, 그 와중에 또 가족 간 친구 간 유대감은 이전의 어느 세대보다도 떨어져 있는 상태이다.

무라카미 다케오 역시 홀로 과도한 업무와 고독을 견디고 있었다. 그가 유일하게 좋아한 것은 만화였고, 그림 그리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업무가 지나치게 많았지만 ‘내가 좋아서 시작한 일이니까 그만둘 수 없어’라는 생각으로 버틴다. 하지만 적은 수면, 불규칙한 식사, 운동 부족 등은 서서히 몸을 망가뜨렸고 그것이 당뇨와 빈혈 등으로 이어진 것이다. 저자의 담당 의사는 이를 두고 ‘느린 자살’이라고 할 정도였다.

그렇게 심정지를 겪은 후, 저자는 병원에서 차차 재활을 해 나간다. 처음에는 인지장애로 인해 글자도 못 읽고 사람과 대화도 못하지만 서서히 작은 것들을 할 수 있게 되고, 머잖아 앉기와 서기, 걷기 등의 기본적인 것도 해낸다. 이 과정에서 저자가 느낀 바가 또 한 번 심금을 울린다.

눈도 안 보이고 말도 못하고 의식도 없고 정신도 감정도 부서진 후 앉는 연습, 서는 연습을 다시 하고 있다니 이건 마치 인생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 같다.     


이 책에는 대단한 성공 스토리가 없다. 성공을 위한 조언도, 비결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토리 세대가 이 책을 보고 열광한 것은 전적으로 공감 때문이다.

경쟁과 과로에 시달려 쓰러진 한 청년이, 다시 인생을 시작하게 되는 것. 그 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가슴 한가득 안고 있던 온갖 일들과 그로 인한 부담, 가족에 대한 무미건조한 불신 따위를 모두 내려놓고 빈손이 되었다는 것. 그 가벼운 ‘빈 손’이야말로, 오늘날의 젊은이들이 가장 원하는 것 중 하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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