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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송 May 12. 2019

반푼이 불교신자의 이른 석가탄신일 보내기

 사람들이 나에게 종교를 물으면 보통 나는 '무교'라고 답한다. 나는 절에도 안 가고 교회도 안 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밀히 따져 나에게 아무런 믿음(신앙이라는 말은 너무 거창하다)가 없는 것은 아니다. 나는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따르며, 불취외상 자심반조라는 경구를 좌우명으로 삼는다. 바깥의 상을 취하지 말고 내 마음을 돌아보라니, 이 얼마나 멋진 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무교임을 자처하는 이유는 정기적으로 사찰에 다니며 신앙 활동을 하지도 않고, 남에게 불교를 믿으라고 전도를 하지도 않으며, 집에다 불상을 모셔놓고 살지도 않기 때문이다. 나는 석가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지 그를 어떠한 초월적인 존재로 '신봉'하는 것은 아니다.

안산 영각사

 그래도 오늘은 이른 시간에 안산의 영각사에 다녀왔다. 원래 다니는 절이 없기 때문에 가장 가까운 곳을 택해서 간 것이다. 이사 온 지가 얼마 되지 않아 실은 이 동네에서 처음으로 절에 가 보는 것이기도 하다.

 석가탄신일은 일 년 중 불교에서 대중과 접하는 가장 큰 행사이며, 대중들도 '절에 가면 공짜로 비빔밥 먹는 날'로 생각하는 일종의 축제이지만 아침 7시는 그런 축제를 시작하기엔 조금 이른 시각이라 행사를 준비하는 보살님들과 스님은 있어도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게 바로 내가 이렇게 이른 시간을 택한 이유기도 하다.

안산 영각사

 색색의 연등이 줄 지어 달려있고 여기저기 모임에서 배송된 화환이 줄지어 있는 모습을 얼른 둘러보고 절을 나섰다. 앞서 말했듯 나는 석가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이지, 불교라는 종교의 일원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들의 행사요, 나는 주변인일 뿐이다.

안산 영각사

 잠시 뒷산(장군봉)에 올라갔다 오니 삼십여 분이 지났다. 상당히 멀리 있었는데도 절에서 왁자지껄하게 서로를 부르고 일을 시키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한 8시 무렵이면 사람이 들기 시작할 테고, 9시부턴 통제 불능의 수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나오는 길에 보니 차들이 속속들이 몰려들고 영각사로 들어오는 사거리 한가운데서 경찰이 서서 차량 진입을 지휘하고 있었다. 일찌기 절에 들어온 차 중에는 휠체어를 내리는 사람도 보였는데 아마도 아프신 노모를 모시고 절은 찾은 듯 했다. 그 노모의 불심일지 아들의 불심일지 몰라도 두 사람은 필히 서로의 건강과 무운을 빌고 따뜻한 비빔밥을 한 그릇 먹고 돌아가리라.

 나는 절밥을 먹을 이유도 없을 뿐더러, 왁자한 군중 속에서 혼자 눈칫밥을 먹다 체하고 싶지도 않아 서둘러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오이를 씻어 두부와 함께 썰어 접시에 올렸다. 담백하기 그지없는 이것들을 씹고 있자니 절로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정심(靜心)이 우러나는 듯 하다. 오늘은 법륜 스님의 금강경 해설을 읽으며 하루를 고요히 보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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