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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송 May 30. 2019

뱃속의 아이를 남자로 바꿀 수 있다고요?

동의보감 전녀위남법에 대한 한의사의 소고

 조선시대 의서이자 한의학의 귀서인 <동의보감>에는 전녀위남법이라는 항목이 있다. 해석하자면 여자를 남자로 바꾸는 법이라는 뜻이다. 내용은 이러하다.

懷娠三月, 名曰始胎, 血脈不流, 象形而變. 是時男女未定, 故服藥方術, 轉令生男也. 《得效》임신 3개월을 '시태(始胎)'라고 하는데, 혈맥이 아직 흐르지 않고 형태를 본떠 변해 가는 시기이다. 아직 남녀가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약의 복용이나 방술(方術)로 남아로 바꿀 수 있다. 《득효》  

始覺有孕, 以斧置孕婦床下, 勿令知之. 若不信, 待雞抱卵, 以斧懸窠下, 則一窠盡是雄雞, 可驗. 《入門》임신한 것을 알기 시작 한때에 도끼를 임신부 모르게 침상 밑에 둔다. 믿지 못한다면 닭이 알을 품을 때 도끼를 둥지 아래에 매달아 보라. 그러면 둥지의 모든 닭이 수컷이 되니 이것으로 알 수 있다. 《입문》

 즉 3개월 전의 아이는 남녀가 정해지지 않았기에 성별을 정할 수 있고, 그 방법으로 도끼를 침상 밑에 두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두고 혹자는 한의학이 무당의 짓과 다를 게 뭐냐고 하는데, 단지 조선시대 책에 이런 말이 실려 있다고 현대 한의학이 무당의 짓이라고 하는 것은 의사 중에 마취시키고 성폭행하는 사람이 있다고 모든 의사가 잠재적 성범죄자라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러한 전녀위남법은 당연히 한의사들 사이에서도 조선시대였기 때문에 기록된 부분으로 보고 있으며, 방대한 자료를 수집해 정리한 백과사전적 특성상 어쩔 수 없었다는 게 중론이다. 그런 시각은 너무나 당연해서 사실 재론할 가치도 없으니 소설 <동의보감>에서도 허준의 이러한 인식이 나타난다.

 

소설 동의보감의 일부.

  예전에 내가 이 전녀위남법에 대해서 처음 듣고, 또 그것을 주로 하는 한의원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처음 한 생각이 바로 허준과 같았다.

  일단 아기의 성별을 바꾸는 건 불가능하지만 특정 성별의 아기를 낳고 싶은 사람은 있을 것이다. 소원대로 해주겠다고 하면서 돈을 얼마를 받아먹든 확률은 50%인 셈이고, 성공하면 그 돈을 그대로 받고 실패했을 때 환불을 해준다면 그야말로 남기만 하는 장사가 아닌가?

 물론 모두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누구나 돈을 남길 수 있는 장사지만 그것이 '의학적으로 불가능하며' '양심을 팔아먹는' 일이기에 아무나 하지는 않는 것이다. 더군다나 한 20년 전까지만 해도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꽤 있었을 때기 때문에 전녀위남법 같은 것이 허무맹랑한 것인 줄 알면서도 환자를 꾀어 돈을 뜯어낸 일부 한의사들이 도덕적으로 부패했다고 밖에 할 수 없다.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비양심적 행위를 하는 것에 늘 한숨이 난다. 얼마나 목구멍이 포도청이기에 그런 짓까지 할까 싶기도 하지만 때로는 살펴보면 그런 사람들일수록 이미 가진 게 많고 더 많은 돈을 벌고 있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처음부터 양심의 문제인 것이다. 돈과 양심, 한평생 양심적으로 산다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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