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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송 Jul 04. 2019

인생은 계속 빡세지기만 하는 걸까?

나이 먹는 것과 인생의 난이도에 대한 고찰

 나는 개원을 앞두고 있는 한의사다. 사실 언제 개원할지 정하진 않았다. 어떤 컨셉으로, 어느 도시에서 할지도 모른다. 다만 언젠가 개원을 해야만 하는 운명이다. 이렇게 말하면 무슨 말인지 묻는 친구들이 많은데, 사정은 이러하다.

 한의사가 의사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안 좋은 점 중 하나는 일자리가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이다. 전국 어디를 가나 중소형급을 포함해 병원은 널려 있다. 반면 한방병원은 자생이나 모커리 정도를 제외하면 이름난 곳이 많지 않을 뿐더러 병원급 의료기관 자체가 그리 많지 않다. 게다가 어딜 가든 당연한 이야기지만 나이가 들수록 취업은 쉽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한의사는 언젠가는 개원을 해야한다는 부담감을 안고 살고 있다.

 그래서 개원을 고민하는 요즘, 갑자기 개원을 하고 나면 인생의 난이도가 더 올라가는 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겨났다. 지금 나는 한 한의원의 부원장으로서 일주일에 48시간을 일하는데,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일하면서 수요일만 격주로 쉬는 시스템이다. 평일에는 9시부터 7시까지 일하는데 아침에는 운동을 하고 저녁에는 드럼연습을 한다. 고로 아침 7시부터 밤 8시까지 하루를 밖에서 보내는데, 이 일과가 끝나고 나서 집에 돌아오면 아무것도 할 힘이 없다. 외국어 공부를 하려고 하지만 같은 문장을 몇 번이나 읽어도 머리에 들어오질 않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다보니 자기계발도 어렵지만 개원 준비를 하는 것은 더더욱 힘들다. 더 문제인 것은 나보다 적게 일하는 한의사도 별로 없고, 개원한 친구들은 더욱 바쁘게 지내고 있다는 것이다.

 적어도 나는 피고용인으로서 주어진 업무만 잘 해내면 퇴근 후에는 다른 걸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한의원 환자가 줄어들면 내 고용의 안정 상태에 불안감이 생길 순 있지만 그런다 한들 해고에는 한 달의 유예기간이 있어서 다른 직장을 알아볼 여유가 있다. 하지만 개원의(개업의라고도 한다)들의 일과는 한의원 문 닫는다고 끝나지 않는다. 그들은 직원의 근태를 신경써야 하고, 한의원 매출을 걱정해야 하고, 고객의 불만에 대응해야 하며, 한의원 전체의 물건 재고와 주문 따위를 관리해야 한다. 고용주와 피고용인의 노동량은 이토록 다른 것이다.

 이렇게 개원을 했을 때의 삶과 지금의 삶을 비교하면 반드시 개원을 해야 할까 하는 의문이 든다. 반드시 해야 할까? 평화롭게 공부만 하면 되는 초중고 시절을 지나, 스스로 생활비를 책임져야 하는 대학생 시절을 지나고, 취업의 문턱을 거쳐 한의사가 되었지만 어째서 나는 여기에 머물지 못하고 또다시 개원이라는 험지로 들어가야만 하는 걸까? 다른 사람의 인생을 보아도 그렇다. 초중고 끝나면 대학 가야해, 대학 끝나면 대학원 가야해, 대학원 끝나면 취업 해야해, 취업하면 결혼 해야해, 결혼하면 육아 해야해... 거기다 부모님 형제자매 봉양까지...

 어릴 때 부모님의 보호 아래 당연하게 누려오던 것들이 사실 당연한 것들이 아니었음을 깨닫고, 그 기나긴 시간 동안 노동을 통해 나를 먹이고 입혀주신 은혜가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또 깨닫는다. 

 하다보니 이야기가 딴데로 샜지만 오늘 내 결론은 그렇다. 

 2년 뒤 개원해야 하리라고 걱정하고 밤을 지새우고 열심히 발품 팔고 다니다가, 개원 전날 갑자기 교통사고로 죽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개원을 해야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갖되, 그 걱정에 짓눌려 쓰러지진 말자. 어차피 미래의 일은 정말 아무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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