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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송 Sep 07. 2019

미드 체르노빌을 감상하는 자세

HBO 드라마 체르노빌

 오늘 아침 체르노빌 2화를 보다 시계를 보니 8시 10분이었다. 출근을 준비해야 할 시간이라 아쉽게 재생 중지를 누르고 집을 나와보니 여느 때와 달리 거센 바람이 불며 길거리에 쓰레기와 낙엽이 회오리치고 있었다. 오늘 태풍 링링이 온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다시 집으로 올라가 창문을 닫으며 재해에 대해 생각했다. 이론적으로는 '빠르고 강한 바람'에 불과한 태풍에도 이렇게 마음이 떨리는데, 원자력 발전소 사고라는 초유의 사태 앞에서 러시아 시민들은 어떻게 대처했을까? 심장이 쿵쿵 거렸다.

 (여기부터 약간의 스포가 있습니다)


 체르노빌 사고가 일어나고 한참이 지나서야 노심이 폭발해서 말도 안되는 수치의 방사선이 누출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수뇌부는 현장에 있는 물탱크가 폭발해 30km 반경을 날려버리는 일을 막기 위해 물을 빼낼 사람을 구한다. 이 때 매년 400루블을 줄 것이며 승진도 시켜주겠다고 하지만 노동자들은 답하지 않는다. 잠깐의 정적 후 노동자 한 명이 말한다.

 나는 현장에 있던 소방관이 실려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얼마나 위험한지 모두 알고 있는데 우리가 어째서 그 일을 해야 하죠?

 그 물음 앞에서 과학자는 입을 다문다. 틀림없이 죽게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 이상 할 말이 없었을 것이다. 그가 어떠한 보상을 제시할 수 있는 권력도 가지지 못했고 말이다.

 그러나 그 때 뒤에 앉아있던 부의장이 일어선다.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재난의 중심으로 들어갈 영웅이 나타난다. 이들은 국가를 위해서 그런 결심을 했을까? 나는 이들이 좁게는 이웃, 넓게는 국민, 더 크게는 결국 누군가의 생명 때문에 자신을 희생하기로 마음먹었다고 생각한다.

 평시에 국가라는 것은 우리에게 의식되지 않는 존재다. 매일같이 "나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국민이다."를 외우고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뜻이다. 그런 우리에게 사실 국가의 안전이란 보이지 않는 무형의 무엇 혹은 파주에서 제주도까지의 영토의 안전이 아니라 나와 내 가족, 내 이웃의 안전일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변호인>의 "국가란 국민입니다!"라는 대사가 참 명대사라고 생각한다. 내가 죽고, 내 가족이 죽고, 내 이웃이 죽으면 그 때 개인에게 국가는 어떠한 의미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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