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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송 Nov 16. 2019

구멍 난 구두

2년이란 시간

 비 오는 날이면 늘 같은 신발을 신는다. 2년 전, 캐나다에 갈 때 면접을 보려면 구두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정장 구두는 너무 발도 불편하고 평소에 신기 힘들 것 같아 컴포트화 하나를 구입했었다. 그런데 이 컴포트화가 기대 이상으로 편하고 좋았다. 가죽이라 눈비에 영향을 받지 않았고, 한국인의 발에 맞춰 만든 건지 발등이 높고 볼이 넓어 불편한 부분이 전혀 없었다. 캐나다(밴쿠버)는 연중 절반 가까운 날에 비가 오는 도시다. 어느 날은 눈이 왔다가, 어느 날은 비가 오는 도시에서 가죽신은 내 최고의 동반자였다.

 한국에 와서도 비가 오는 날이면 아무런 고민 없이 이 신발을 꺼내신곤 했는데 어제는 출근하고서 발에 이상한 감촉을 느꼈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신발을 벗어보니 왼발에 신은 양말에 검게 물 얼룩이 져 있었다. 하도 많이 신은 탓에 바닥에 구멍이 뚫린 것이었다.

 살면서 참 많은 신발을 구입했지만 그중 닳아서 제 기능을 못하게 되도록 신은 적은 없었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낡은 구두가 매스컴을 탔을 때, 내 구두도 오래오래 신으면 그렇게 나이를 먹어갈 거란 생각만 했지 이렇게 유명을 달리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그러고 보니 그 구두는 어떻게 굽이 다 닳도록 구멍도 안 났을까? 참 좋은 구두다.)

 사실은 얼마 전 새 구두를 살까 고민한 적이 있었다. 사흘 전인 수요일에 벨트 수선을 맡기러 아웃렛에 갔는데 진열된 새 구두를 보니 욕심이 났던 것이다. 그래서 다음날 인터넷으로 신을 만한 신발을 찾아보다가 이만큼 편해 보이는 신발이 없기도 하거니와 아직 멀쩡한 신발을 두고 새 것을 산다는 게 낭비 같아서 관둔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딱 구멍이 나버리다니, 어쩌면 이 구두가 내 마음을 알아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묘한 타이밍이다.

 버리면 누구의 것인지도, 어떤 일을 해왔는지도 모르게 사라질 구두지만 이렇게 전파를 통해서라도 흔적을 남기고 작별 인사를 해 주고 싶다. 그동안 한국, 캐나다 가리지 않고 험지에도 같이 가며 참 애 많이 썼다, 내 구두야.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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