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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송 Jan 28. 2016

그림자 속 시간강사의 초상

309동1201호,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독후감

시간강사에 대해 관심을 둔 적이 없었다. 수업을 들어오면 교수님이고, 나이에 따라 젊은 교수님과 늙은 교수님이 있을 뿐이었다.

작년 언젠가 오늘의유머에서 저자의 글을 접했다. 그 때는 아직 책이 나오기 전이었지만, 시간강사로 살아가는 게 어떠한지 담담하게 풀어놓는 저자의 목소리에 많은 사람들이 매료되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사실 시간강사가 얼마나 오랜 시간을 일하고 얼마의 월급을 받는지, 교수와는 어떤 관계인지 그런 내용들을 궁금해 하면서 일종의 포르노적 호기심으로 글을 읽었다. 그런데 글을 읽으며 점점 나와 나이가 비슷한 저자의 삶에 대해 공감과 연민이 일었다. 시간강사라는 게 말로 듣던 것보다 더욱 힘든 일이구나, 사대보험을 해 주는 면에서는 오히려 맥도날드 아르바이트가 더 낫구나 하며 나는 그의 글에 빠져들었다.


책으로 엮인 글을 다 읽고 나서 저자와 나에 대해 생각했다. 저자는 2008년에 석사과정을 시작했고, 나는 2008년에 대학교에 입학했다. 저자가 02학번이라고 가정하면 우리는 나이차가 크지 않고, 같은 세대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만약 저자가 우리 단과대에서 수업을 했다면 나는 본과 3학년쯤에는 그 수업을 들었을 지도 모르겠다(내가 들은 수업의 가장 젊은 교수님은 00학번이었던 것 같다).


결국, 동시대를 살아가는 동세대 청년의 이야기다.


그는 석사학위를 따고 박사수료를 했으며 몇 편의 논문을 썼고 대학교 강사라는 직함을 가졌다.

하지만 대학에서 사대보험을 들어주지 않아 월 60시간의 맥도날드 아르바이트를 통해 부모님을 건강보험에 등록시켰고, 최저시급에 한참 못 미치는 돈을 받으며 조교 생활을 했으며, 교수에게는 '잡일 돕는 아이'로 소개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목소리는 참 담담하다. 조용한 가을 산 속에서 물에 잠긴 바위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 같다. 내용적으로 시간강사의 절절한 아픔, 참혹한 현실이 잘 드러나기는 하지만 그것은 현실이 그러하기 때문에 사실적으로 쓰인 것일 뿐, 그 자신이 사회에 대해서 격렬한 분노와 억울함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이러한 자신의 성향을 두고 저자는 비겁한 성격이라고 비하하지만, 나는 그 안에서 절제된 고통을 느꼈다.


교수님은 지금 행복하신가요? 후회하지 않으시나요?


스무살 학생이 진로 상담을 하다가 저자에게 물었다. 저자는 후회한다고 답했다. 행복하냐고 물으면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다고도 말했다. 그러나 부끄럽지 않은 선택을 했기에 어떻게든 버텨나갈 수 있다고도 말했다.

나는 인문학을 전공한 사람의 삶이 어떠한지 잘 알지 못한다. 단지 저자의 책을 통해서 시간강사가 된 인문학 전공자 일부(이자 대다수)의 삶을 엿볼 수 있었을 뿐이다. 느낀 바, 경제적으로는 정말 할 일이 못 되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안에서 분명히 보람은 있는 것 같다. 저자가 석사논문을 쓰기 위해 도서관을 찾아가 관장과 대담을 하고, 힘들게 구한 책의 첫 페이지를 넘기며 '한 분야에 대한 선임연구자로서의 설렘'을 이야기할 때는 나도 설렜고 저자가 고생 끝에 완성한 논문을 아버지께 '그간의 믿음에 대해서 감사하다'고 드릴 때는 눈물이 핑 돌았다.


아쉽게도 현재 저자는 대학을 그만 둔 상태다.(2015년 12월 12일) 이러한 글을 썼다는 이유로 주변에서 책망을 받아서인지, 혹은 학교에서 압력을 받아서인지 그 이유가 명확하지는 않다. 하지만 외압에 떠 밀려났다기보다 스스로 현재를 바라보고 미래에 대한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그는 요즘 북콘서트나 인문학콘서트 등에 초청되어 왕래하고 있으며,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소식을 받아볼 수 있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위해 스스럼 없이 노력해 온 저자에게 무한한 애정과 응원을 보낸다.

저자의 페이스북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3091201lin/?fref=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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