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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송 Mar 26. 2020

빚은 400억이든 40억이든 4천만원이든 괴로운 것이다

유자와 쓰요시, <어느날 400억원의 빚을 진 남자> 독후감

이 책은 대기업에 다니며 장밋빛 인생을 누리던 어느 날,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으로 서른여섯 살에 난데없이 부도 직전의 가업과 400억 원의 빚을 떠안게 된 불운한 남자의 질척질척한 16년간의 기록이다.

 이 책의 제목만 보았다면 소설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소설이 아니다. 저자 유자와 쓰요시는 아버지의 돌연사로 가업을 잇게 되었는데 그 기업에는 무려 400억이라는 채무가 있었다.

주어진 조건이 다르다고 해도 40억 원이든, 4억 원이든, 4,000만 원이든, 빚이 있는 삶은 지옥 같은 고통이다. 나는 이 책에서 일이나 삶에서 죽고 싶을 만큼의 곤경에 처했을 때 탈출하는 방법과 사고방식의 사례를 전하려 한다.

 이 책에서 저자가 전하려는 것은 위와 같다. 말 그대로 '죽고 싶을 만큼의 곤경'을 이겨낸 사람이 있다. 누구나 궁금해 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군다나 누구나 빚을 지고 사는 시대다. 학자금대출을 끼지 않은 대학생이 드물고, 주택대출 없는 신혼부부가 없는 세상이다. 빚은 액수를 막론하고 무겁고 싫은 것이다. 그것을 대체 어떻게 이겨내면 좋을지, 저자의 이야기를 읽어보았다.

인생을 증오하지 않게 된 것은 겨우 작년쯤부터다. 그래서 허울 좋은 말은 못 하겠다. 허울뿐인 말은 못하지만 신념이 된 말은 있다.
‘아침이 오지 않는 밤은 없다.’

 엄청나게 특별한 이야기가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그의 노력은 특별하다. 부채 탕감을 위해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사장의 지위를 맡아서 기업의 구멍을 파악하고 어떻게든 고쳐 나가려고 노력한다. 400억원의 빚이라니 얼마나 마음이 무겁고 괴로웠을까. 보통 사람이었다면 그 날 당장 자살을 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하나의 문장만 제시한다. 아침이 오지 않는 밤은 없다. 오직 이 말 하나를 믿고 그렇게 고통을 견뎌왔다고 한다.

입으로는 “빚을 다 갚자.” “회사를 되살리자.” “열심히 해보자.”라고 말했지만 속으로는 단 1퍼센트도 그런 일이 실현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저자라고 해서 그 빚의 무게를 몰랐을 리 없다. 일년에 1억씩 갚아도 400년이고, 10억씩 갚아도 40년이 걸리는 채무다. 보통 직장인으로서는 열두번 죽었다 깨어나도 갚을 수 없는 거액이다. 저자도 사람이니 그런 생각을 했다. 말로는 갚아야지 하면서 속으로는 절대 안 될 거라 생각한 것이다.

아버지 회사를 물려받은 이후, 그렇게 좋아하던 여행은 두 번 다시 가지 못했다. 16년간 단 한 번도 말이다. 해외여행은커녕 국내여행도 제대로 간 적이 없다. 오사카 나들이조차 하지 못했다. 이틀 연속으로 회사를 쉰 적도 없다.

 그러나 그는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좋아하던 것을 모두 포기하고 오직 빚을 갚기 위해 인생을 바쳤다. 

괴롭고 굴욕적인 일이 있더라도 어쨌든 하루는 지나간다. 하루가 줄면 다시 늘어나는 법은 없다. 빚은 늘어날지도 모르고 상황이 나빠질 수도 있지만 날짜만은 반드시 줄어들었다. 그것이 정말 감사했다. 카운트다운의 효과는 절대적이었다.

 평생을 채무탕감으로 보낼 수는 없다 생각-그런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보통은 죽고 싶어진다-했기 때문에 5년치 달력을 모아서 붙이고 그것을 다 떼낼 때까지 최선을 다하는 전략을 짰다. 심리학적으로 아주 탁월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끝이 보이는 고통은 더 잘 참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아내와 똑같은 이야기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이야기한다.
“믿기지가 않아. 어떻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그렇게 최선을 다한 끝에 그는 결국 16년만에 400억이라는 말도 안 되는 채무탕감에 성공한다.

 인간승리란 말을 이 이야기 말고 어디에 붙여야 할까? 문득 10억대인가 1억의 빚을 지고서 그것을 갚기 위해 사우나에서 자고 하루에 몇 가지나 되는 일을 하며 살아가던 다큐멘터리 속의 아저씨가 생각난다. 그 분은 채무탕감을 결국 해내고 얼마 안 돼서 돌아가셨다고 들었다. 자신이 삶에서 가장 목표로 하던 것을 이뤄내고서, 아니 자신을 가장 괴롭게 하던 것에서 벗어났기에 만족하고 웃으며 돌아가셨을까? 나 역시 채무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부디 그 분이 만족하며 세상을 떠나셨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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