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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송 Apr 10. 2020

거친 삶 속에 피어난 철학이 궁금하신가요

에릭 호퍼, <길 위의 철학자> 독후감

 어떤 사람이 "책이란 읽었을 때 망치로 맞은 듯한 충격을 주는 것이어야 의미가 있다"고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모든 책이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철학에 대해선 그렇게 생각한다. 책이야 정보서도 있고 잡지도 있지만 철학은 오락성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삶에 대해 '진지충'이라는 말을 듣는 사람들의 열띤 강연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에릭 호퍼는 참 매력있는 철학자다.

 에릭 호퍼는 1900년대 초 미국에서 태어났고 7살 때 잠시 시력을 잃었다가 15살에 회복했으며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집을 떠나 길 위에서 살기 시작했고 서른 살이 되기 전에 자살을 시도했었고 환갑 쯤에는 유명한 철학자이자 작가가 되었다. 스무 살부터 환갑의 사이에 그는 말 그대로 길 위에 사는 노동자로서 미국 곳곳을 떠돌며 생을 영위했고 그러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남는 시간엔 책을 읽었다.

 철학 책을 읽었으니 당연히 에릭 호퍼의 철학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하겠지만 실은 내가 철학에 대해서 그다지 잘 알지 못하는 관계로 전문적인 설명을 할 수는 없다. 다만 망치로 맞은 듯한 충격을 주었던 그의 문장에 나의 생각을 덧붙여 설명을 대신하고자 한다.

자기기만이 없다면 희망은 존재할 수 없지만, 용기는 이성적이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본다. 희망은 소멸할 수 있지만 용기는 호흡이 길다.

 희망과 용기. 얼핏 보면 비슷하게 생각되는 두 단어지만 저자는 분명하게 이들을 구분한다. 희망은 자기기만에 기반하는 것으로 언제든 소멸할 수 있지만 용기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데서 생기는 이성적인 것으로 더욱 생명이 길다고 말한다. 잘 생각해보면 무슨 말인지 와 닿을 것이다. 

 사람들은 절망에 빠진 사람에게 희망을 가지라고 하지만 그야말로 의미없는 소리다. 당장 내가 돈이 없어 죽게 생겼는데 내일은 잘 될 거라는 희망을 가지면 돈이 생길까? 그런 희망을 갖기도 힘들 뿐더러 애써 가지게 된다 한들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자기를 속이는 데서 나온 허상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용기는 어떠한가? 용기를 가지라고 하는 말은 지금 이 상황을 인정하고 타개하려는 태도를 가지라는 것이다. 하늘에서 돈이 떨어지길 기다리는 게 아니라 지금 비록 배고프고 춥고 가난할 지언정 두 다리로 일어나 생을 이어갈 마음을 먹으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절망 속에 필요한 것은 희망이 아니라 용기다. 나는 그렇게 받아들였다.

 저자의 삶은 어떻게 봐도 특별하다. 노동자지만 여러 언어를 구사하면서 책을 많이 읽었고, 책을 많이 읽었지만 학위를 가진 전문가는 아니었다. 우리 삶의 곁에 있는 사람이면서도, 비슷한 사고방식을 가지지는 않았던 사람. 그래서 <길 위의 철학자>라는 말이 참 어울리는 사람이다.

 플라톤이나 니체의 이름만 들어도 철학이라면 질색이라고 경기를 일으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당장 먹고 살기 바쁜데 대체 그런 걸 왜 알아야 하냐고 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먹고 살기 바쁘고 팍팍한 삶인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철학 책 한 권쯤 읽어봐야 한다면 이 책을 권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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