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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송 May 01. 2020

자꾸 난관에 부닥치는 우리네 인생 영화로 들여다보기

영화 <시동>

 누구나 한 번쯤 인생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어떤 사람은 일주일에 한 번, 또 어떤 사람은 매일 그런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인생은 왜 호락호락하지 않을까? 자꾸만 예상치 못했던 난관이 닥쳐오는 우리네 인생은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일까?

<시동> 포스터

 우리의 택일(박정민)은 매일 엄마와 싸우느라 바쁘다. 엄마는 택일이 공부해서 대학에 가길 바라고, 택일은 공부하길 원치 않는다. 엄마가 준 학원비로 중고 오토바이를 샀다가 사고를 친 택일은 큰 다툼 끝에 결국 집을 나가버리고 만다.

 1만 원으로 갈 수 있는 곳을 찾다가 군산으로 가게 된 택일은 배고파서 들른 중국집에서 숙식제공 구인 글을 보게 되어 중국집 배달부가 된다. 그곳에는 트와이스를 좋아하는 괴력의 주방장 거석이형(마동석)이 기다리고 있다. 빠르게 일자리를 구한 택일은 중국집에서도 사건사고에 휘말린다. 빨간 머리의 복서 소경주(최성은)에게 얻어터지고, 미성년자 성매매를 하는 깡패들에게도 얻어맞는다.

 택일이 서울을 떠난 사이, 불알친구 상필(정해인)은 빨리 큰돈을 벌 생각에 아는 형을 통해 사채업체에 취직한다.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홀로 모시고 사는 상필은 처음 접한 사채업에도 큰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고 점점 깊이 빠져들게 된다.

 그리고 갈등이 폭발하기 시작한다. 돈을 갚기는커녕 자신을 두들겨 팬 채무자에게 이성을 잃고 칼을 들어 찌르려 한 상필, 잘 살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첫 월급을 주러 갔다가 되려 또 싸운 택일, 택일이 공부시키려고 가게를 열었다가 사기를 당한 택일 엄마, 그리고 과거에 발목 잡히는 거석이형까지 누구 하나도 성치 못한 삶을 살아간다. <시동>이 무겁게 느껴지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극 중 인물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싸워나간다. 그 속에서 모든 인물이 주고받는 화두는 "어울리는 일을 해."다.

 택일 엄마가 원하는 택일의 어울리는 일은 (나이에 맞는) 공부, 택일이 원하는 택일 엄마의 어울리는 일은 택일을 위해 희생하지 말고 원하는 일을 하며 살기, 둘 다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지만 그것이 서로에게 상처가 되는 모습을 보고 나는 이미 웹툰을 보면서도 느꼈던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시동>은 우리네 삶 속에서 개개인이 남에게 투영하는 욕망이 있고, 그 욕망의 투사 대상이 되는 상대가 원치 않을 때 갈등이 빚어지는 모습을 참 잘 그려냈다는 것을. 그 갈등이 가장 날카롭게 드러나는 곳은 택일과 택일 엄마의 대화다.

 택일 "아니, 뭘 하든 잘 살아보라며. (중략) 잘 살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그 얘기하러 온 거야."

 택일 엄마 "그만하고 집으로 와. 와서 학원 다녀."

 택일 "아, 하기 싫다니까. 왜 이렇게 하기 싫다는 걸 자꾸 하라 그래!"

 택일 엄마 "어른이 되면 하기 싫어도 해야 해. 검정고시 보고 대학 가."

 택일 "대학이 그렇게 중요해? 어디 가서 이상한 짓 안 하고 그냥 사람답게 살면 되는 거 아니야? 나 좀 믿어주면 안 돼?"

 택일 엄마 "어떻게 사람이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아. 너 그러다 사람대접도 못 받아."

 택일 "엄마도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아 좀~!"

 택일 엄마 "지금 이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이야."

 그래서 영화를 보다 보면 결국은 우리 자신에게 그 화두를 던지게 된다.

 내게 어울리는 자리는 어디인가?

 극 중 사채업자는 사채업의 폭력성에 두려움을 느끼게 된 상필에게 이렇게 말한다.

 "계속하다 보면 그게 뭐든 간에 그게 너한테 어울리는 일이 된다고."

 이 말을 철학적으로 바꾸면 이렇게 된다.

 -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말이 ㅏ 다르고 ㅓ 다르다지만 앞뒤를 바꾸니 참 다른 삶이 되지 않는가?

 워낙 원작 웹툰이 리얼리즘에 충실하고 영화도 그렇다 보니 갑자기 하늘에서 돈이 뚝 떨어져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택일 엄마는 결국 사기당해 가게를 철거당하고, 택일은 중국집을 그만두고, 상필도 사채업을 그만두고 다시 할머니를 모시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끝나지 않았고 누구도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지진 않았다. 그들은 단지 꿋꿋이 다시 살아가기로 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뿐이어서일 수도 있지만, 그것이 그들에게 어울리는 자리여서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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