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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송 Apr 24. 2020

우연과 필연과 운명과 시작

 예전에 사람은 어떻게 인생에 방향을 갖고 살아가게 되는가 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택시운전수가 되고, 어떤 사람은 영어영문학과를 나와서 작가가 되는데 어떤 이유로 상업고등학교를 가고, 택시운전수가 되고, 영어영문학과를 택하고, 글을 쓰게 되는가 하는 방향의 문제 말이다. 다시 말해, 우리의 인생을 이끄는 결정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상업고등학교를 간 열 명의 사람 중 한 명은 부모님의 권유로 갔을 테고, 한 명은 친구가 가서 따라갔을 테고, 한 명은 상업에 관심이 있어 갔을 테고, 모두 각자의 이유를 따라갔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결정의 배경은 그 사람의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사람 가족의 경제적 사정, 그 사람의 지인, 그 사람이 태어난 시대, 그런 것들이 그 사람의 인생을 특정한 방향으로 이끄는 원인이 된 것이다. 내가 작가가 된 것도 어떤 특별한 동기나 커다란 사명감이 있어서 된 것은 아니었다.

 나에겐 두 살 터울의 누나가 한 명 있다. 다른 집의 두 살 터울 남매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열 살 즈음까지는 누나와 특별히 다른 점을 느끼지 못하고 자랐다. 보통 남자아이들은 로봇을 좋아하고 여자아이들은 인형을 좋아한다지만 나는 변신로봇이 나오는 만화보다 누나가 보는 예쁜 여자들이 나오는 만화를 더 좋아했다. 우리 둘 다 학교에서 제법 공부를 잘한단 이야길 들었고, 우리 둘 다 미술학원과 피아노 학원을 다니며 열심히 우뇌를 개발했다. 차이를 느끼게 된 것은 중학교 즈음부터였다.

 누나는 어릴 때와 마찬가지로 TV 보는 것을 좋아했다. 집에선 늘 누나가 TV 앞에 바짝 붙어 앉아 있는 걸 볼 수 있었는데 나는 어쩐지 그렇게 되질 않았다. 각양각색으로 화려하게 번쩍이는 화면을 보는 게 어지럽고 피곤하게 느껴졌고, 침대에 걸터앉아 책장을 넘기는 편이 훨씬 마음이 편했다. 내가 누나보다 더 문학소년의 자질이 있었다는 이야길 하려는 것은 아니다. 내가 TV를 자연스레 멀리하게 된 것인지, 아니면 TV를 좋아하는 누나를 나무라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고 혼나지 않으려는 이른바 ‘둘째의 본능’으로 책을 읽는 척 연기를 하게 된 것인지 그 선후관계는 분명하게 기억나지 않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그 선후가 어찌 되었든 간에 나는 TV와 멀어지고 책과 친해졌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무슨 공부에 도움이 되는 책만 주야장천 읽었던 것은 아니다. 으레 그 나이 아이들이 그러하듯 나 역시 교과서나 문제집을 보는 걸 지독히도 싫어했었다. 그러나 누나 옆에 앉아 TV를 보는 것도 싫고 교과서를 보는 것도 싫으니 어쩌겠는가. 재밌게 책을 읽는 방법은 역시 재밌는 책을 고르는 것뿐이었다. 나는 그렇게 무협과 판타지 소설에  빠져들었다.

 마침 같은 반에 무협소설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몇 있었고, 점심시간에 다른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열심히 피부를 그을리고 있을 때 교실에 틀어박혀 책만 보는 동류를 발견한 우리들은 빠르게 친해졌다. 나를 포함해 네 사람이 각각 하루에 한 권씩 소설책을 빌려왔고, 6교시가 끝나기 전에 우리는 모두 서로가 가져온 책을 읽어내곤 했다. 중학교 이학년 때부터 시작한 이 맹목적인 독서는 꼬박 일 년이 이어졌고, 삼 학년 일 학기가 끝날 때쯤 나의 ‘시작’이 찾아왔다.

 그날도 우리는 급식실 앞에 쪼르르 줄 선 채 오전에 읽은 소설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어느 책이 더 재밌느니, 어느 작가가 더 잘 쓰니 하는 이야기를 하다가 주제는 그 날 처음 읽게 된 소설의 전개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것으로 넘어갔다. 나는 그동안 읽은 천 권의 레퍼런스를 바탕으로 마치 내가 미래를 보기라도 한 양 주인공이 커다란 위기에 처할 것이고, 거기서 살아나 몇 배로 강해질 것이고, 그때부터 시원시원하게 복수를 해 나갈 거라고 확신에 차서 말했다. 재밌는 건 내 이야기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재밌는 건 그 일로 인해 나는 무협소설을 읽는 것에 크게 흥미를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앞으로 보게 될 모든 소설이 클리셰의 반복일 거라는 생각을 하자 우울증에 걸릴 지경이었다.

 그런 위기를 타파하게 한 것은 친구의 제안이었다. 우리가 이제 이렇게 많은 책을 읽고, 보지도 않고 다음 내용을 맞추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차라리 우리가 재밌는 소설을 써 보자는 놀라운 제안이었다. 우리 모임의 네 사람이 모두 그 제안에 선뜻 응했던 것을 보면 내가 특별한 게 아니라 우리 모두 같은 전개의 반복에 질려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모두 인터넷 소설 연재 사이트에서 각자의 작품을 쓰기 시작했고, 나는 하루하루 조회수와 구독자수가 늘어가는 기쁨에 흠뻑 빠져들었다. 이제는 1교시부터 6교시까지 무릎 위에 공책을 펼쳐놓고 줄거리만 주야장천 써대고 있었다. 집에 가서는 낮에 쓴 줄거리에 살을 붙여 타이핑하느라 바빴고, 어떤 날에는 일일 인기순위의 1~5위를 내가 독점을 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런 생활이 몇 주쯤 지속되던 중학교 3학년의 어느 날, 나는 한 출판사로부터 내 소설을 출판하고 싶다는 제의를 받게 되었고 당연하게도 그 제의를 수락함으로써 작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나는 어떻게 작가의 길을 걷게 된 것일까? 지금 생각해도 나에겐 그 당시 작가가 되는 이외의 길은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주어진 환경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하고 싶은 일을 했고, 내가 미리 알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게 마치 운명처럼 작가가 되는 길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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