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송 Jun 20. 2020

군대에서 시작된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

 며칠 전의 일이다. 한 입원환자가 추나치료를 받고 나가다 갑자기 내게 물었다.

 "선생님, 장요근 때문에 등이 아플 수도 있나요?"

 이 환자는 입원 당시 검사를 통해 내게 좌측 장요근 긴장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었다. 하지만 장요근 긴장이 등에 통증을 일으키는 일은 드물다. 그렇게 말하자 환자는 사실 오래전부터 가끔 등 한가운데 강한 통증이 와서 꼼짝도 못 할 때가 있다고 했다. 그건 더더욱 장요근으로 인한 통증 양상은 아니었다. 환자를 앉게 하고 병력을 묻는데 들으면 들을수록 기막힌 이야기들이 나왔다.

 환자가 처음에 호소한 건 등 통증이었지만 사실 그것만 있는 게 아니었다. 척추 전체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통증에는 강직성 척추염의 가능성이 있고 그건 검사를 따로 받아보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자 환자의 이야기는 발목으로 넘어갔다. 군대에서 우측 발목에 낙상을 입은 적이 있는데 골절은 아니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 이후로 통증이 계속해서 있다고 했다. 그것 자체는 골절이 아니더라도 결합조직의 손상으로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건, 골막, 근막, 근육 어디에나 손상이 생기고 염증이 존재할 수 있었다.

 그러자 환자는 우측 어깨도 사실 회전근개 파열이 있다고 했다. 회전근개 파열 역시 당연히 통증을 불러올 수 있다고 했다.

 그러자 환자는 군 전역을 앞두고서 좌측 무릎이 겨울마다 아프기 시작했다고 했다. 어떤 때는 붓고 열이 나서 옆사람이 만져보아도 뜨거움이 느껴질 정도라고 했다. 무릎 자체적으로 기억나는 손상을 입은 게 없다면 미세 손상에 의한 유리체가 있을 수도 있다고 했다. 이까지만 해도 벌써 허리, 등, 발목, 어깨, 무릎의 5 부위. 물론 허리는 자동차 사고, 발목은 군대에서의 낙상, 어깨는 회전근개 파열이라는 각기 다른 요인을 가지고 있고 등과 무릎만 원인이 불분명했다.

 이런 복합적인 통증에 대해서는 상급 병원, 그러니까 대학병원에 가서 검진을 받는 게 좋겠다고 하자 실은 대학병원도 가 보았다고 한다. 거기서도 제대로 원인을 찾아내지 못했고, 다만 발목의 경우 아킬레스건의 부분 파열이 심하니 수술을 받는 게 좋겠다고 했다고 한다.

 나는 혹시 정신과 진료를 받은 적이 있는지도 물었다. 만약 전신의 통증에서 중심이 되는 것이 우측 발목이라면 군대에서 발병하는 CRPS(복합부위 통증증후군)에 해당하는 것은 아닌지 알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정신과 진료도 받아보았다고 했다. 하지만 당시 병원에서는 불면증으로 인한 것이라며 거기에 관한 처방만 내려주었고 통증은 조금도 좋아지지 않았다고 했다.

 환자가 마지막에 덧붙이기로 본인이 가 본 병원만 50 군데가 넘을 거라고 하는데 그 말이 거짓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머리가 눈썹을 덮을 정도로 내려온 그의 얼굴은 피골이 상접해 있었다.


 복합부위 통증증후군은 진단을 내리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아직 진단기준 자체가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단 기준은 4개의 증상 및 징후로 구성되어 있으며 ① 감각 증상, ② 혈관운동(vasomotor), ③ 부종/땀샘 운동(edema/sudomotor) 그리고 ④ 운동/위축 증상으로 구분하였다.

 이런 진단 기준이 있긴 하지만 너무 모호해서 과진단의 우려가 있다.

 실제 환자들의 인터뷰를 보아도 통증의 강도가 대단히 다양하며 피부 변색이 일어나는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다. 운동 제한 역시 있는 사람이 있고 없는 사람이 있었다.

 서울대학교 병원,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아주대학교 병원 통증클리닉(마취통증의학과)에서 6개월 이상 치료를 받으면서 통증이 7 이상으로 지속된다거나 통증 부위가 붓는 부종현상, 바람이나 실처럼 통증을 유발할 수 없는 물체로 통증을 느끼는 등의 여러 가지 증상들을 주기적으로 확인하여 6~7가지 항목 이상에 해당되면 정식으로 CRPS 환자로 확진 판정을 받고

 그나마 나무위키에 따르면 세 군데의 통증클리닉에서 6개월 이상 치료를 받으면서도 강한 통증이 지속되면 확진 판정을 받을 수 있다고 하는데 통증이 7 이상 지속되는 것은 대단히 강한 통증이므로 실제로 여러 부위에 이유 없는 통증을 느끼는 환자가 있다 해도 이에 해당하는 비율이 그리 높지는 않을 것 같다.


 환자를 돌려보내고 나서 한참을 생각해 보아도 아쉽고 답답한 마음뿐이었다. 환자는 어느 병원의 어느 과에서 진료를 받아야 할지, 또 어느 병원의 말을 들어야 할 지에 대해서 많은 혼란을 겪고 있었다. 통증도 통증이지만 명확히 진단을 내리고 해결을 할 수 없다는 막막함에 정신적으로도 큰 고통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분명히 아픈 사람이긴 한데 의료의 사각지대에 있는 것 같은 사람, 이 사람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나는 다만 서울대, 가톨릭대, 아주대 통증클리닉에 가 보라는 말 밖에 할 수 없을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 인생의 첫 오마카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